트럼프 시대 미국 정치풍자 퇴장?···‘더 레이트 쇼’ 막 내린다

백민정 기자 2026. 5. 2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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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에드 설리번 극장 앞에서 CBS/파라마운트가 스티븐 콜베어의 레이트 쇼 폐지를 발표한 후 사람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3년간 이어져 온 미국 CBS의 간판 심야 토크쇼 <더 레이트 쇼(The Late Show)>가 오는 21일(현지시간)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CBS는 “재정적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꾸준히 비판해온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의 정치 풍자가 결국 퇴출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폐지를 두고 “단순히 한 심야 토크쇼 진행자와 제작진의 퇴장을 넘어,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주의 제도를 해체하고 비판적 목소리를 침묵시키려는 흐름의 상징적 사례”라고 전했다.

“재정 문제”라지만…트럼프 비판 직후 폐지 발표
2019년 3월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36회 팰리페스트 “스티븐 콜베어와의 저녁”에 참석한 스티븐 콜베어. AP연합뉴스

앞서 지난해 7월 CBS는 “심야 방송 환경 변화에 따른 재정적 판단”이라며 <더 레이트 쇼> 폐지를 발표했다. 콜베어도 방송에서 “내가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폐지 발표 시점을 두고 정치적 해석이 이어졌다. 발표 직전 CBS 모회사인 파라마운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1600만달러(약 240억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파라마운트는 영화사 스카이댄스와의 대형 합병을 추진 중이었고 정부 승인 절차를 앞두고 있었다. 콜베어는 방송에서 이를 “노골적인 뇌물(big fat bribe)”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콜베어의 하차를 공개적으로 반겼다. 그는 트루스소셜에 “콜베어가 해고돼 정말 좋다”며 “그의 재능보다 시청률이 더 형편없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더 레이트 쇼>는 미국 심야 토크쇼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었다. 올해 평균 시청자는 약 270만명, 유튜브 구독자는 1000만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유일한 민주당 소속 위원인 애나 고메즈는 “정부 규제 권한이 언론과 미디어를 길들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조직적인 검열 시도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시대와 함께 커진 정치 풍자
미국 코미디언 겸 작가 스티븐 콜버트가 지난해 9월1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LA 라이브의 피콕 극장에서 열린 제77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로 최우수 토크 시리즈상을 수상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콜베어는 지난 10여년간 미국 정치 풍자의 대표적 얼굴로 자리 잡아 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허위와 과장, 권위주의의 상징처럼 묘사하며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온 방송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트럼프를 “진실보다 거짓을 선호하는 인물”이라고 표현했고, 때로는 직접적인 욕설까지 사용하며 조롱했다. 정치자금 문제를 풍자하기 위해 실제로 슈퍼팩(정치자금 모금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기업과 거액 후원자들이 사실상 무제한 정치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미국 선거 제도의 허점을 풍자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콜베어는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진행한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코미디언은 본질적으로 반권위주의적”이라며 “권위주의자들은 누군가 자신을 비웃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내가 문제 삼는 것은 특정 정당이 아니라, 트럼프가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나르시시스트라는 점”이라고 했다.

미국 방송계에서는 정치 풍자와 비판적 프로그램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방송사 ABC가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 암살 관련 발언 논란 이후 <지미 키멀 라이브> 방송을 일시 중단했다가 여론 반발 끝에 철회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미 키멀은 콜베어의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동료이자 친구인 스티븐 콜베어와 제작진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21일 방송을 하지 않겠다”며 “그들을 쫓아낸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탈진실 시대’ 예견한 콜베어

콜베어는 단순한 방송 진행자를 넘어 미국 정치 풍자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2005~2014년 코미디 풍자 프로그램 <더 콜베어 리포트(The Colbert Report)>를 진행하며 ‘트루시니스(truthines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트루시니스’는 사실과 논리보다 개인의 감정과 직감을 기준으로 무엇이 진실이라고 믿는 태도를 뜻하는 표현이다. 당시 콜베어가 미국 정치권과 보수 논객들의 선동적 수사를 풍자하기 위해 만든 말이었다. 이후 ‘탈진실(post-truth) 시대’를 설명하는 대표적 개념으로 사용됐다.

이 단어는 2005년 미국방언학회 ‘올해의 단어’, 2006년 메리엄웹스터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콜베어는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두 차례 이름을 올렸다.

콜베어는 현재 워너브러더스의 새 <반지의 제왕>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NYT에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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