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없는 통합돌봄은 실패한다

의학신문 2026. 5. 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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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실패와 일본의 교훈, 그리고 한국의 선택
우봉식 한국회복기재활연구소 소장대한회복기재활학회 이사장

[의학신문·일간보사] 2026년 본격 시행에 들어간 「지역사회 통합돌봄 지원법」을 둘러싸고 의료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핵심은 통합돌봄에 의료가 없다는 것이다. 돌봄 서비스의 법적 틀은 갖추어졌지만, 방문재활·재택의료·지역 의료연계라는 의료의 핵심이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제도의 미비를 넘어서 구조적 오류다. 과거 영국이 이 오류를 겪었고, 일본은 영국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다른 길을 걸었다. 한국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 영국: 의료와 돌봄을 분리한 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영국은 1942년 출간된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라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근거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1944년 사회보장청을 설치하고 1946년 국민보험법(National Insurance Act)과 국민건강서비스법(NHS Act), 1948년 국민산업재해법, 국민부조법(National Assistance Act) 등을 제정하고 민간 소유의 병원, 구빈원(The poor house), 장기체류형 시설 등을 국가가 인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반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점점 늘어나게 되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신질환자, 고령자 등의 장기체류자 케어를 지방정부로 넘기면서 커뮤니티 기반의 서비스가 강조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영국은 1960년대 후반 생산성 하락과 함께 1970년대에 들어서 경제위기가 더욱 심각해지고 1973년 유가파동에 뒤이은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복지 다원주의(welfare pluralism)' 논쟁이 시작되었다. 복지 다원주의의 전개로 인해 영국의 사회복지는 민간이 서비스를 공급하고 정부는 관리 감독을 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11년에 영국 최대 요양시설 운영자인 Southern Cross(38,719병상)가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영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 이후 영국은 2012년 <Health and Social Care Act>, 2014년 <Care Act 2014>등을 제정하여 중앙정부의 'CQC(Care Quality Commission)'가 의료와 보건, 사회적 돌봄 전반을 감독하고 지방정부는 각 지역의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감독하는 등 돌봄 시장에 대한 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개혁을 단행하는 지금의 커뮤니티 케어 모형이 정립되었다. 전용호. <영국 성인돌봄서비스 시장에 대한 감독 개혁과 한국 장기요양의 시사점> Journal of Korea Academia-Industrial cooperation Society 2018, Vol. 19, No. 4 pp. 203-210.

■ 일본: 의료를 돌봄의 중심에 놓다

일본은 영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로 했다. 2003년 '고령자개호연구회 보고서'에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의 개념이 처음 제기된 이후, 일본은 10여 년에 걸친 법적·제도적 준비 끝에 2014년 「지역의료·개호의 종합적 확보 촉진에 관한 법률(의료개호일괄법)」을 제정했다. 이 하나의 법률 제정과 함께 의료법을 포함한 관련 19개 법률이 동시에 개정되었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은 의료·개호(개호-재활)·예방·주거·생활지원을 다섯 기둥으로 삼는다. 특히 '걸어서 30분 이내, 중학교 구역' 단위로 케어 서비스망을 촘촘하게 설계함으로써, 의료와 돌봄이 지리적으로도 통합되도록 했다. 지역케어회의(地域ケア会議)를 통해 의사·간호사·재활치료사·사회복지사가 한 테이블에 앉아 개인별 케어플랜을 수립한다.

이는 추상적 통합이 아니다. 수가 체계, 법적 의무, 지역 거버넌스가 맞물린 실질적 통합이다.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겪으면서도 지역사회 돌봄 체계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배경에는 이 통합적 설계가 있다.

■ 한국: 영국의 길로 가고 있는가

한국의 통합돌봄지원법은 불행히도 영국의 길로 가고 있다.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획일적 서비스에서 개인 맞춤 케어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방향이나, 문제는 이 법이 복지·요양 프레임으로 설계되면서 의료가 구조적으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첫째, 방문재활과 재택의료가 돌봄 전달 체계에 편입되어 있지 않다. 병원에서 퇴원한 뇌졸중·골절 환자가 지역사회로 돌아간 이후, 기능을 유지·향상시킬 재활 서비스가 법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둘째, 돌봄 대상자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제도적 수단이 없다. 케어플랜이 의료적 근거 없이 수립될 경우, 과소 개입과 재입원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셋째, 서비스 단위가 지나치게 광역적이다. 시·군·구 단위로는 의료-돌봄의 근접 통합이 불가능하다. 읍·면·동 또는 생활권 단위의 설계가 필요하다. 넷째, 질 관리 체계가 미흡하다. 영국 Southern Cross 사태가 보여주듯, 적절한 관리없는 돌봄 서비스 제공은 예산만 낭비하게 될 수 있다.

■ 통합돌봄의 핵심인 의료가 빠졌다

통합돌봄의 핵심은 의료 서비스를 집에서 받는 것이다. 2023년 보건복지부에서 전국 10,0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은 대부분 다중 만성질환에 노출되어 있다. 평균 2.2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3개 이상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도 35.9%에 이른다. 통합돌봄 대상자의 상당수가 "의료적 관리 없이는 일상 돌봄이 유지되기 어려운 집단"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의 통합돌봄은 의료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는 구조다. 우리가 매일 임상에서 목격하는 현실은 이렇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가 퇴원 이후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해 수개월 만에 기능이 퇴행하고 재입원하는 사례가 반복된다. 이것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제도의 실패다.

의료서비스는 퇴원 이후 지역사회에서도 계속 이어져야만 한다. 방문재활치료사와 방문간호사가 돌봄 코디네이터와 통합된 팀으로 작동하고, 각 주치의가 지역 케어플랜에서 의학적 판단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모니터링하는 구조가 반드시 갖추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다음 세 가지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통합돌봄지원법과 의료법·건강보험법이 연계되는 '의료돌봄일괄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지역 의료기관이 퇴원 후 방문재활·외래재활·케어 코디네이션의 지역 허브 기능을 수행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셋째, 읍·면·동 단위에서 주치의·방문간호사·재활치료사·사회복지사로 구성된 지역케어팀을 제도화해야 한다.<의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