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DB 감독 ‘형과의 낯선 동행’···“5년 대화보다 3일 동안 더 많이, 공사 구분 소통과 믿음으로”

양승남 기자 2026. 5. 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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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섭 DB 단장(왼쪽)이 20일 동생인 이규섭 감독과 악수하며 새 시즌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양승남 기자

인생은 때론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도 벌어진다. 그는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프로농구 부산 KCC의 수석코치로서 원주 DB의 심장을 겨누던 ‘적장’의 핵심 참모였다. KCC가 6위 팀 최초의 우승이라는 신화를 쓰며 정상에 오른 바로 다음 날, 그의 운명은 요동쳤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꺾었던 DB에서 감독 제의가 왔다. 친형이 단장으로 있는 팀이었다. 서울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늘 삼성 감독 1순위 후보로 거론됐던 이규섭의 첫 감독 무대는 뜻밖에 DB였다. 이규섭 DB 신임 감독(49)은 돌풍처럼 휘몰아친 인생의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10년간의 코치 생활 끝에 처음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을 20일 만났다. DB 본사 회의실에서 새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그는 “지난 며칠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다”라면서도, 눈빛만큼은 원주의 새로운 비상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 실패의 아픔 딛고 일군 우승, 그리고 운명 같은 DB행

이규섭 감독에게 2025-26시즌은 지도자 인생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삼성 시절부터 오랜 기간 ‘농구 명가’의 부활을 위해 호흡을 맞췄던 이상민 감독과 함께 KCC에서 마침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삼성에서 성적 부진으로 ‘실패한 조합’이라는 아픈 평가를 받기도 했던 이들은 올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완벽한 반전 시나리오를 쓰며 해피엔딩을 맞았다. 이 감독은 “삼성 코치를 그만두고 해설위원을 하면서 농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털어놓았다. 코트 밖에서 객관적인 눈으로 경기를 분석하고, 다양한 감독들의 인터뷰와 전술을 경청했던 경험이 이상민 감독의 리더십 속에 시너지 효과를 냈다. KCC에서 스타플레이어들의 심리를 아우르고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설명이다. “삼성 때는 어떤 틀을 갖고 선수들을 리드했다면 KCC 와서는 더 유연해졌어요. 삼성을 거쳐 KCC에서 함께 뛴 이호현이 DB 감독 부임 소식에 ‘감사하고 그리워할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이규섭 DB 감독이 스포츠경향 인터뷰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양승남 기자

KCC의 우승 축배가 채 마르기도 전, DB 구단은 그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정규리그 3위에 오르고도 플레이오프에서 6위 KCC에 무릎을 꿇었던 DB는 자신들의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무너뜨렸던 이 감독이야말로 팀 체질을 개선할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DB 감독이 된 그는 며칠간 자유계약선수(FA) 및 외국인선수 계약, 코치 선임, 선수단 파악 등으로 분주히 보내고 있다. 이 감독이 구상하는 ‘뉴 DB’의 핵심 키워드는 ‘소통’과 ‘믿음’, 그리고 ‘젊은 피의 성장’이다. 이 감독은 “이선 알바노와 강상재라는 리그 최고의 중심축이 건재한 것은 큰 축복”이라며 “여기에 이유진, 김보배, 그리고 박인웅 등 젊은 포워드진이 반드시 한 단계 더 성장해야만 한다. 이 선수들에게 더 많은 출전 시간과 명확한 롤을 부여해 DB의 뎁스를 단단하게 다지겠다”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밝혔다.

그가 지도자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믿음이다. “선수가 감독을 믿고 코트에서 모든 걸 쏟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전술은 그 다음이다.” 그 믿음은 준비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미국 G리그에서 코치 연수를 할 때 현지에서 들은 말을 아직 가슴에 품는다. “실수하지 말라. 그러면 선수들이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훈련지 하나도 철저히 준비하고, 선수 이름까지 적어놓는 미국 코치들의 방식을 보며 배웠다고 했다. “선수들은 준비된 사람의 말을 따르게 돼 있다”고 했다.

■ KBL 최초의 ‘형제 단장-감독’ 체제… 공사 구분은 확실하게

이번 인사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5년 터울의 형인 이흥섭 DB 단장과의 만남이다. 1997년 KBL 출범 이후 친형제가 한 클럽의 사령탑과 프런트 수장으로 뭉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구계 안팎에서 소통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목소리와 함께 폐쇄성을 우려하는 시선이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올 시즌 부산 KCC 수석코치로 우승을 이끈 이규섭이 원주 DB 감독으로 새 출발한다. KBL 제공

이 감독은 형과 같은 팀에서 뛰게 되는 걸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그동안 두 형제는 농구 얘기는 조심스러워 피했다. 형은 프런트, 동생은 다른 팀 코치였다. “사람들은 ‘DB 내부 이야기 다 알겠다’고 했지만 일부러 농구 얘기를 안했죠. 시즌 중에는 서로 바빴고 통화도 가족 행사에 관한 정도였어요.” 그러면서 웃으며 말했다. “최근 3일 동안 업무 파악 때문에 형과 한 대화가 지난 5년간 했던 것보다 많아요.” 그는 “호칭도 이젠 형이 아니라 단장님이라고 한다”며 “형은 공과 사가 누구보다 확실한 사람이다. 현장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프런트와 가장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모범적인 파트너십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이흥섭 단장 역시 선을 분명히 했다. 그는 “주위의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싫어 평소 동생은 물론, 농구를 하는 동생의 두 아들에게도 ‘우리 구단(에 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말라’고 말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단 고위층에서 이 감독이 현재 DB의 문제점을 해결할 가장 적합한 후보로 판단해 낙점한 것”이라며 “현장의 권한을 철저히 존중하고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일만 잘하면 된다”고 단호한 소신을 밝혔다.

■3년 전 원주 체육관의 예언… 운명처럼 뭉친 ‘삼각 편대’

이흥섭 단장은 휴대전화에 간직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3년 전 동생이 해설위원으로 코트를 누비던 시절 원주 DB프로미아레나 한복판에서 자신과 이선 알바노와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당시에는 해설위원, 구단 사무국장, 외국인 선수라는 서로 다른 신분으로 셔터 속에 담겼다. 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세 사람은 각각 DB의 수장(감독)과 운영 책임자(단장), 그리고 코트의 야전사령관(에이스)으로 뭉치게 됐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운명적 동행’의 서막이다. 알바노는 바로 전날 재계약을 확정한 뒤 이 감독에게 메시지를 보내 “감독 부임을 축하드리며 열심히 해보겠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3년 전 원주DB프로미 아레나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당시 이흥섭 DB 사무국장·이선 알바노·이규섭 해설위원.(왼쪽부터) 이들이 새 시즌 DB 단장과 에이스, 감독으로 뭉치게 됐다. 이흥섭 단장 제공

이규섭 감독은 “DB에서 준 소중한 감독이라는 자리다. 선수로 코치로 우승을 해봤으니 감독으로서도 최종 목표는 우승”이라며 “원주 팬들의 뜨거운 농구 열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위기가 오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팀을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현역 시절 명슈터로 활약한 그는 코치와 해설위원으로 많이 배우고 단단히 내공을 쌓았다. 형과 처음 농구를 함께 하는 낯선 환경에서 초보 감독으로 첫발을 뗀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준비된 지도자의 발걸음엔 힘이 있었다. ‘이규섭 DB호’가 새 시즌 프로농구에 어떤 바람을 일으키게 될지 궁금하다.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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