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취업도 못한 바퀴벌레같은 청년들” 발언에 ‘바퀴벌레국민당’ 세운 인도 청년[시스루피플]

최경윤 기자 2026. 5. 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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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바퀴벌레가 한곳에 모이면 어떻게 될까”

한 청년의 풍자적 SNS 발언에서 시작된 정치 운동이 인도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미취업 청년을 바퀴벌레에 빗댄 수리야 칸트 인도 대법원장의 발언에 분노한 인도 청년들은 너도나도 바퀴벌레가 되길 자처했다.

아비짓 딥케(30)가 만든 가상 정당 ‘바퀴벌레국민당’은 창당 일주일도 안 돼 SNS에서 약 1300만 팔로워를 모았다. 오랜 구직난과 경제적 불평등을 겪어 온 인도 청년들은 바퀴벌레국민당에 열광하고 있다.

딥케는 20일(현지시간) 현지 주간 인디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어떤 단체나 운동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 정도 규모의 팔로워를 얻은 적은 없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도 청년들은 스스로 이 운동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바퀴벌레국민당’ 대표 아비짓 딥케가 바퀴벌레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 딥케 인스타그램 갈무리

발단은 지난 15일 칸트 대법원장의 발언이었다. 그는 공개 재판에서 “취업도 못 하고 직종 내 발붙일 곳도 없는 바퀴벌레같은 청년들이 있다”며 “이들은 언론, SNS, 정보공개청구 등 활동가가 돼 모두를 공격한다”고 말했다. 인도국민당(BJP) 정권 아래 12년째 실업난과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구직에 어려움을 겪어 온 청년들은 분노했다.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홍보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고 있던 딥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대법원장이 나를 정확히 지칭했다”며 “내가 바로 바퀴벌레”라고 말했다. 그는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인물이 해당 발언을 한 점이 더 큰 충격이었다고 했다.

이튿날인 지난 16일 아침, 딥케는 BJP를 풍자한 정당 이름 CJP(Cockroach Janta Party·바퀴벌레국민당)를 떠올렸다. 그는 정당 슬로건을 “게으르고 실업 상태인 바퀴벌레들의 연합”으로 결정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바퀴벌레를 의인화한 이미지와 정당 로고를 만들었다. 이후 자격 제한이나 당비 없는 정당 가입 제도를 구축하고 웹사이트와 SNS 계정을 만들었다. 그는 ‘굿즈’로 “나는 바퀴벌레다”라는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도 제작했다. 창당 준비에 걸린 시간은 단 72시간이었다.

‘바퀴벌레국민당’ 지지자들이 제작한 이미지. 바퀴벌레국민당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 정당의 가입 조건은 간단했다. ‘실업 상태일 것, 육체적으로 게으를 것,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포함해 하루 11시간 이상 온라인에 접속해 있을 것, 전문적인 비판 능력을 갖출 것’ 등 4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됐다. 구글 설문지를 통한 당원 가입 신청자는 사흘 만에 35만명을 넘겼다. 마후아 모이트라 서벵골주 하원 의원과 키르티 아자드 전 비하르주 의원도 참여했다.

딥케는 “이 모든 일은 청년의 오랜 좌절감 때문에 일어났다”며 “청년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사회 구조에 매우 실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는 매년 800만명 이상의 대학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이 중 약 30%가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급격한 경제 성장 이면에 소수 자본가에게만 부가 집중되는 현상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딥케는 이날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권력자들은 바퀴벌레가 썩은 곳에서 번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인도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고 말했다.

딥케는 바퀴벌레국민당을 계기로 인도의 청년 정치가 발전해가길 기대한다. 그는 “인도에서는 너무 오랜 기간 사람들이 침묵을 지켜왔다”며 “이제는 이 순간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10~12년간 인도에서는 힌두교, 이슬람교 등 똑같은 (종교) 이야기만 반복됐다”며 AI, 반도체, 청정에너지 등 새로운 정치 담론을 제시할 때라고 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와 바퀴벌레 모습을 한 청년이 함께 그려진 풍자 이미지. ‘바퀴벌레국민당’ 인스타그램 갈무리

최경윤 기자 c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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