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엄벌 마땅하지만… 1조 ‘과징금 철퇴’에 얼어붙은 기초식품망

김수연 2026. 5. 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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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탕이 진열되어 있다(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연합뉴스]


정부가 밥상 물가를 잡겠다며 설탕·밀가루 담합 기업들에 사상 최대 규모인 1조원대 '과징금 철퇴'를 가했지만, 과도한 징벌적 제재가 도리어 식품업계 생존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역효과 우려를 낳고 있다.

담합이라는 위법 행위에 대한 징벌은 불가피하더라도, 기업의 한 해 영업이익은 물론 시가총액마저 훌쩍 뛰어넘는 매질에 당장 제품 가격을 내리기는커녕 K-푸드 경쟁력에 필요한 투자마저 중단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후진적인 유통 구조 등 물가 상승의 근본적인 병폐는 방치한 채 맹목적인 '기업 혼내기'에만 의존하는 징벌적 규제가 서민 물가 안정이라는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20일 2019~2025년 6년에 걸쳐 밀가루 담합행위를 한 7개 제분사를 '빵플레이션'(빵 가격 인상)의 주범으로 지목,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앞서 공정위가 지난 3월 설탕 제조·판매 사업자 3곳(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의 담합에 부과한 약 3958억원의 과징금을 합하면 무려 1조원대에 달한다. 2010년 액화석유가스(LPG) 공급회사 6곳에 부과된 6689억원을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다. 설탕과 밀가루 등 기초 식품에 대한 담합은 장바구니 물가와 직결되는 만큼 이를 엄벌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조치로 해석된다.

하지만 각 기업의 영업이익에 비해 과도한 과징금이 부과돼 기업의 활력 자체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조동아원의 경우, 시가총액(약 1417억원)보다 큰 1831억원의 과징금을 맞았고, 대한제분에 부과된 과징금은 작년 영업이익(623억원)의 3배에 달하는 1793억원에 이른다. CJ제일제당의 경우, 밀가루값 담합 과징금(1317억원)에 설탕 담합 과징금(1383억원)까지 2700억원이 부과됐는데, 이는 이 회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2381억원)을 넘어선 금액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식품업계는 원래 영업이익률이 저조한데, 과징금까지 물게 된 기업들은 벌어서 과징금 물기도 빠듯해졌다"며 "K-푸드가 탄력받는 시점에 경쟁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진행해야 할 연구개발, 설비 투자, 인재 확보 등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내수 부진에 공정유지비, 인건비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원맥(통밀) 수입가가 내려가도 바로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게 식품업계가 처한 현실"이라며 "(원맥 수입가 인하에 맞춰) 가격을 내리면 제당·제분업계 출혈경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고, 비용절감 압박이 커져 결국 산업 활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규제가 서민물가 안정이라는 정부의 목적에 부합하려면, 산업 활력을 꺾지 않을 수준의 세밀한 과징금 산정과 함께, 식품 대기업들의 가격 인하 여력을 키워줄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담합이라는 잘못된 행태는 일벌백계하는 것이 맞지만, 과도한 과징금은 결과적으로 기업에 제품가격을 인하할 여력을 없애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정부 의도와는 달리, 서민물가 안정과는 더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가격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나 구조적인 문제 등을 해결할 지원책도 기업과 같이 마련해야 한다"며 "벌을 줘도 지원할 건 하면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식재료 가격 인상 요인으로 수년간 지적돼 온 중간유통 구조 등 유통 밸류체인에 대수술이 필요한데도 정작 정부가 이 부분은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물가대책이 언젠가부터 기업의 제품가격을 통제하는 것에 집중돼 있다"며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질적인 문제가 된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관세 리스크를 최대한 낮춰 원부자재 수입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부가 맡아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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