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후 첫 선고서 갈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허란 2026. 5. 2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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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重 사내하청 노조 상고 기각
8대 4로 찬반 의견 '팽팽'
다수의견 "원청 교섭의무 없다"
반대의견 “노동3권 침해 소지”
구 노조법 사건엔 기존 법리 유지
향후 사건선 새 법리 적용 가능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단체교섭 청구 소송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따른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원청 단체교섭 요구를 8대4로 기각했다. 2016년에 발생한 구 노동조합법 적용 사건에서는 종전 판례 법리를 유지한다는 판단이지만, 4명의 대법관이 강하게 반대의견을 낸 만큼 노란봉투법이 적용되는 향후 사건에서의 법리 변화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 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1일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단체교섭 응낙을 구한 사건에서 원고의 상고를 8대4로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016년 교섭 거부, 구법이 적용되는 이유

이 사건은 노동조합이 2016년 4월부터 5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HD현대중공업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면서 시작됐다. HD현대중공업은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절했고, 노조는 소송으로 맞섰다.

이 사건에 적용되는 법은 2016년 당시의 구 노동조합법이다. 노동조합법은 2025년 9월 개정(이른바 노란봉투법)되면서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조항이 추가돼 올해 3월10일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개정법에 경과규정이 없는 이상 2016년경의 단체교섭 거부를 원인으로 한 이 사건에는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된다는 게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다. 

 다수의견 "구법 사건엔 종전 법리 그대로"

다수의견은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안인 이상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란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라는 1986년 이래의 종전 법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이 가장 강하게 내세운 논거는 노란봉투법 개정 경위 자체다. 개정 이유에 "실질적 지배·결정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에 포함한다"고 명시된 것은, 입법자가 대법원의 종전 법리를 전제로 사용자 개념을 새로 확대하는 입법적 결단을 한 것이 분명하다는 논리다.

다수의견은 "2016년경의 단체교섭 사안에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종전 법리를 변경해 개정 노동조합법과 유사한 법리를 창설·적용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경과규정도 두지 않은 입법자의 의사를 존중해, 법원이 구법 사건에서 굳이 신법과 유사한 법리를 만들어 적용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다수의견은 단체교섭의 성격도 근거로 들었다. 단체교섭은 단체협약 체결을 전제로 하는 만큼 사용자 범위가 근로계약관계 존재 여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단체교섭 거부는 2년 이하 징역의 형사처벌 대상인 부당노동행위인 만큼, 죄형법정주의상 구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 상고심 선고 등을 위해 입장해 있다. 연합뉴스

  반대의견 "종전 법리, 논리·헌법 정신 모두 상실"

이흥구·오경미·신숙희·마용주 대법관 4인은 다수의견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반대의견은 노란봉투법이 "완전히 새로운 입법을 한 것이 아니라, 노동위원회와 하급심이 구 노동조합법을 헌법 정신에 맞게 해석해 온 것을 반영해 명확히 규정한 것"이라고 봤다. 구법 하에서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원청에 단체교섭의무를 부담시킬 수 있었고, 2016년 당시에도 그렇게 해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이 노란봉투법 개정을 종전 법리의 부재를 전제로 한 새로운 입법으로 본 것과 정반대의 해석이다.

반대의견은 "종전 법리는 논리적 정합성이나 헌법 정신에 맞는 구체적 타당성을 모두 상실했다"고 직격했다. 1990년대 이후 간접고용이 급격히 확산된 산업 현실에서,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사실상 지배하면서도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단체교섭의무를 면탈하는 구조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헌법 제33조가 보장하는 단체교섭권의 핵심을 공동화한다는 것이다.

반대의견은 "수급근로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근로조건을 직접 결정하는 도급인과 단체교섭을 할 수 없다면 노동3권은 실효성을 잃는다"고 강조했다.

다수의견이 죄형법정주의를 근거로 든 것에 대해서도, 구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을 헌법 정신의 범위 안에서 합헌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확장이 아니라 정당한 법률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향후 단체교섭 사건엔 '실질적 지배력' 적용

이 사건에서 원심은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가 소속 근로자들에 대해 독자적인 지휘·감독권을 행사했고, HD현대중공업 소속 근로자들과 혼재해 근무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부정했다. 대법원 다수의견도 이를 수긍해 원고 패소를 확정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구법 적용 사건에 국한된 것이다. 올해 3월 10일부터 시행 중인 노란봉투법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명문화했고, 경과규정도 두지 않았다. 대법원 다수의견도 "향후 개정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는 입법목적에 맞게 '실질적 지배·결정 지위에 있는 자'의 개념을 해석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노란봉투법 적용 사건에서는 원청의 단체교섭의무가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한 셈이다.

한편 대법원은 이날 문신 시술 관련 두 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해 온 1992년 판례를 전원일치로 뒤집었다. 문신사법이 2027년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먼저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사회적 인식 변화, 문신 시술자의 직업의 자유, 시술을 받는 사람의 행복추구권 등을 근거로 구 의료법 해석을 바꾼 것이다.

HD현대중공업 사건에서는 노란봉투법이 이미 시행 중임에도 구법 사건에서는 종전 법리를 고수한 반면, 문신 사건에서는 관련 법률 시행 전임에도 사회 변화를 이유로 법리를 먼저 전환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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