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무역 속국 된다”…EU, 중국 의존 줄이기 본격화
“사실상 中 의존도 줄이려는 조치“
EU의 거리두기로 ‘무역갈등’ 위험도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맞서 중국과 밀착하는 듯했던 유럽연합(EU)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완제품뿐 아니라 핵심 부품에서도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유럽 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29일(현지 시각) 대중국 전략회의를 열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70여 개국 네트워크를 활용해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핵심 원자재와 중간재 공급망을 우방국 중심으로 재편해 중국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지난 18일 EU 집행위원회가 화학·산업기계 등 일부 핵심 산업을 대상으로 특정 국가 및 특정 공급업체 의존도를 제한하는 신규 규제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EU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해 단일 공급처에서 조달할 수 있는 원자재와 부품 비중을 30~40% 수준으로 제한하고, 최소 3곳 이상의 공급처를 확보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유럽에서는 자국 시장이 중국에 잠식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유럽 시장 내 중국산 제품 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산 제품과 원료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산업도 적지 않다. 예컨대 향미 증진제와 의약품에 널리 사용되는 아미노산의 경우 유럽연합 수입 물량의 52%가 중국산이다. 중국 무역 감시 웹사이트 소프박스(Soapbox)는 플라스틱·화장품·페인트·부동액 등에 사용되는 ‘다가 알코올’의 경우 유럽연합 수입량의 약 96%가 중국산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 유럽상공회의소 회장이자 중국 전문가인 옌스 에스켈룬드는 “사람들은 중국 수입품이라고 하면 전기차 같은 완제품을 떠올리지만, 실제 문제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막대한 규모의 부품”이라며 “유럽은 중국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및 독일 기계·장비 제조업계 무역단체인 독일기계설비산업협회(VDMA)의 대외무역 책임자 올리버 리히트베르크는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 고민하는 상황에서 중국 공급업체가 유럽 제품과 비교해 품질은 95% 수준이면서 가격은 30~50% 저렴하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며 “바로 이런 상황이 유럽 산업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독일 기계 산업에서 2만2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중국의 대유럽연합 무역흑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중국 세관 자료를 인용해,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에서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로의 수입은 1180억 달러에 달한 반면 독일의 대중 수출은 930억 달러로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대독일 무역흑자는 2024년 120억 달러에서 2025년 25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EU의 중국 거리두기 정책은 올해 들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3월 발표한 산업가속화법(IAA)은 배터리·전기차·태양광·핵심 원자재 등 4대 전략 산업에서 ‘유럽 내 제조’를 공공조달과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중국 산업을 겨냥한 견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월에는 화웨이와 중싱통신장비(ZTE) 등 중국 기업을 ‘고위험 공급업체’로 규정하고 유럽 국가 통신망에서 단계적으로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사이버보안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EU가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하면서 양측 간 무역 갈등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EU-중국 무역 관계, 파트너십인가 침몰하는 배인가?’ 토론회에서는 유럽과 중국의 외교관·관료·전문가들이 심화되는 무역 갈등을 놓고 격렬하게 충돌했다. 중국 측은 유럽연합이 자국을 “괴롭히고 있다”며 유럽연합의 무역 정책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위한 “보호무역주의적 시도”라고 비판했다.
SCMP는 “이 같은 장면은 올해 초 유럽 정상들의 잇따른 중국 방문이 ‘중국으로의 선회’를 의미한다는 해석과는 크게 어긋난다”며 “유럽의 공격적인 산업정책이 속도를 내고 중국이 보복 가능성을 확대하는 가운데, 베이징에서 벌어진 충돌은 더 큰 무역 갈등의 전조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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