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북 화해"와 스포츠 정신 사이… 비 내린 수원에서 충돌한 두 개의 응원



【발리볼코리아닷컴=김정훈 스포츠평론가】비 내린 수원의 밤, 축구보다 더 뜨거웠던 것은 남북이라는 이름이었다.
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FC 위민과 북한 '내고향' 여자축구단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었다. 경기장 안에는 남북 관계와 통일 담론, 정치적 상징과 시민사회의 메시지가 한꺼번에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 스포츠가 오래도록 고민해온 불편한 질문 하나가 다시 떠올랐다. 스포츠는 어디까지 정치와 상징의 무대를 감당해야 하는가.





이날 경기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경기 결과보다 응원 문화였다. 수원FC 위민의 홈 경기였음에도 일부 공동응원 구역에서는 북한 팀의 공격과 득점에 더 큰 환호가 나왔고, 지소연의 페널티킥 실축 순간 박수와 환호까지 터져 나왔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반적인 스포츠 문화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물론 그 배경을 이해 못할 일만은 아니다. 이날 공동응원단의 상당수는 전통적인 클럽 축구 팬이라기보다 남북 교류와 평화 운동, 통일 담론에 공감하는 시민사회 성향 참가자들이었다. 이들에게 이날 경기는 단순한 여자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이 아니라, 12년 만에 방남한 북한 축구단과 남측 시민이 마주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북한 선수들이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야 남북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 감정이 스포츠의 기본 질서까지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 분위기는 "내고향이 잘해야 한다"를 넘어 "수원FC는 이번 무대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남북 화해를 위한 배경이어야 한다"는 흐름으로까지 번져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축구팬들의 불편함이 시작됐다.
축구팬들에게 홈팀은 정치적 상징을 위한 소모품이 아니다. 선수들의 노력과 팀의 역사, 팬들의 자부심이 응축된 존재다. 특히 이날 수원FC 위민 선수들은 비바람 속에서도 끝까지 치열하게 싸웠다. 골대를 세 차례나 맞히며 경기를 주도했고, 지소연 역시 한국 여자축구의 상징답게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진 채 뛰었다. 그런데 일부 관중은 그들의 투혼보다 북한 팀의 승리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결국 수원FC는 승부를 다투는 클럽이 아니라, 누군가의 메시지를 위한 조연처럼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 자체를 조롱할 필요는 없다. 실향민 세대에게 '내고향'이라는 이름이 주는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랜 단절 끝에 북한 선수단이 남측 땅에서 경기를 치르는 장면에 특별한 감정을 느낀 시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숭고한 명분이라도 홈팀 선수의 실수에 환호하는 순간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남북 화해의 가치가 한국 여자축구 선수들의 노력과 감정을 들러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결국 이날 수원에서 충돌한 것은 남한팀과 북한팀만이 아니었다. 한쪽은 축구를 스포츠 그 자체로 바라봤고, 다른 한쪽은 축구를 남북 관계와 정치적 상징의 매개로 바라봤다. 그리고 후자의 시선에서는 수원FC의 승리보다 "북한팀이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됐다.
그러나 스포츠가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를 위한 도구로만 소비되는 순간, 균형은 무너진다. 특히 프로와 클럽 스포츠는 선수들의 생업이며 팬들의 문화다.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홈팀이 희생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건강한 스포츠 문화라고 보기 어렵다.

수원의 비 내린 밤은 분명 남북 교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동시에 스포츠가 정치적 상징에 과도하게 종속될 때 어떤 기묘한 풍경이 만들어지는지도 보여줬다. 남북 화해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스포츠 본연의 가치와 선수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어제 수원종합운동장이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이 칼럼은 스포츠평론가 김정훈이 기고 한 글 입니다. 외부 칼럼의 경우 본지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도 있는 점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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