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파업은 없었다…삼성전자 교섭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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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사가 손을 맞잡았다. 파업 돌입을 1시간 반 앞둔 막판 타결이었다.
삼성전자를 지목한 거라는 해석이 많았지만, 노사는 요지부동이었다.
파업 D-13, 5월 8일 삼성전자 본사를 관할하는 경기지방고용노동청장이 노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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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사가 손을 맞잡았다. 파업 돌입을 1시간 반 앞둔 막판 타결이었다.
노사가 임금 교섭을 공식 개시한 건 지난해 12월 11일. 꼭 160일 만에 합의가 나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60일의 경과는 아래와 같다.

돌아보자. 지금까지 이런 파업이 있었을까. 대통령부터 개미 주주까지,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이렇게 관심이 집중된 노사 교섭은 없었다.
1. 하이닉스, 봉인을 해제하다
시작은 옆집이었다.
2025년 9월 1일, SK하이닉스 노사는 성과급 제도를 합의한다. 국내든 해외든 어디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이었다.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할당하고, 개인별 상한액 없이, 10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10%, 무제한, 10년'짜리 성과급이 등장한다.
법인세도 내기 전인 연간 영업이익에 성과급을 고정하는 방식. SK하이닉스가 일종의 봉인을 해제한 셈이었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자, 삼성전자 직원들도 들썩인다. "왜 하이닉스만큼 못 받느냐"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노조 가입에 봇물이 터진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삼성전자 초기업 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위원장 최승호)'가 특히 극적으로 몸집을 불린다. 지난해 9월 조합원은 6,300명. 올해 4월 7만 6,000여 명까지 는다. 삼성전자 국내 직원은 총 13만 명 정도다.
2. 성과급의 자릿수가 바뀌다.
마치 노를 저으려고 하니 물이 들어온 격이었다.
교섭이 본격화된 1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57조 2천억 원을 찍는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을 단숨에 넘는다. 반도체 초호황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모양새였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3대 원칙을 '투명화, 상한 폐지, 제도화'로 정한다.
연간 영업이익의 15%를(투명화), 개인별 상한액 없이 지급하고(상한 폐지), 이 규칙을 10년간 유지(제도화)하자는 최초요구안을 제시한다.
사측은 영업이익에 성과급을 연동시키는 방식을 받을 수 없다고 거부한다. 종전대로 '경제적부가가치(EVA)'에 일정 비율을 곱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노조의 불만은 경제적부가가치가 어떻게 계산되는 것인지 '비밀'이란 점이었다. 사측이 언제든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렸다 할 수 있다고 의심하고 비판했다.
3월 18일 조합원들은 찬성률 93.1%로 총파업을 가결한다. 합법 쟁의권을 확보한다.
3. 등돌린 한달 반, 치킨게임 시작
그래도 '설마, 파업까지 하겠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노조의 총파업 투표 이후 협상 테이블은 급격히 얼어붙는다. 공식 교섭은 물론 물밑 대화마저 사라진다.
4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등판한다. "일부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 부당한 요구를 해서 우리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면 해당 노조뿐만이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말한다.
삼성전자를 지목한 거라는 해석이 많았지만, 노사는 요지부동이었다.
5월에 접어들고, 파업 예고일이 2주 남은 5월 7일까지도 노사는 대화 재개의 계기를 못 찾는다. 장외 신경전만 이어갔다. 파업 현실화라는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4. 조정, 결렬, 또 조정, 또 결렬…
노사가 치킨게임에 열중하자, 보다 못한 정부가 개입에 나선다.
파업 D-13, 5월 8일 삼성전자 본사를 관할하는 경기지방고용노동청장이 노사를 만난다. 사후조정 신청을 강권한다.
D-10, 5월 11일 1차 사후조정이 열린다. 노사 대표와 중노위 공익위원이 함께 하는 '3자 회담' 식 조정이 사흘에 걸쳐 진행된다.
중노위가 문을 연 이래 최대 이벤트라고 표현될 정도로 마라톤 회의가 이어졌지만, 결렬로 끝난다.
D-5, 5월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해외 출장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노동조합 여러분, 삼성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입니다"라며 손을 내민다.
D-4, 5월 17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 나선다.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를 공식화한다. 1963년 제도를 도입한 이후 딱 4번만 썼고, 2005년 이후 21년 동안 활용한 적이 없는 '극약처방'까지 공언할 정도로 고강도 압박에 나선다.
D-3, 5월 18일 2차 사후조정이 열린다. 이번에도 사흘 간 마라톤 조정. 밤샘 회의가 일상이 된다. "한 가지 쟁점만 남았다"는 박수근 중앙노동위원장의 발언이 극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D-1, 5월 20일 오전. 결론은 기대와 달랐다. 중노위는 사후조정 불성립을 선언한다. 중노위가 조정안을 내놨지만, 사측이 거부했고, 노조는 총파업 돌입을 선언한다.
노조는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 집회 신고를 낸다. 파업이 기정사실화되는 듯 했다.
5. 최최최종 교섭, 수싸움 끝내다
벼랑 끝에 서야 비로소 아래가 보이는 법일까.
파업 돌입을 8시간 앞두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중재한다. 법에 정해지지 않은, 장관이 개별 회사 교섭 한복판에 직접 뛰어든, 전례를 찾기 힘든 조정이었다.
파업은 공멸이란 여론의 거센 압박, 노사는 타협점을 찾는다.
모두가 깜짝 놀랄 극적인 묘수는 없었다. 서로 자존심을 세워주면서도 실리를 챙기는, 흔한 '정치적 방정식'이 동원됐다.
노조는 영업이익에 성과급을 연동하고, 상한을 없애고, 성과급 규칙을 10년 간 유지하는 걸 얻어낸다.
회사는 연간 영업이익이 일정 실적을 넘길 때만 그렇게 한다는 단서를 달고, 현금 대신 주식을 주며, 매각에 제한 기간을 둔다.
노사가 절반씩 주고 받은 선에서 수싸움을 끝낸다. 전례없는 '성과급 전쟁'의 문을 연 SK하이닉스와 비교하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과급 규칙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올해 실적이 예상대로 300조 원 안팎으로 나온다면,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은 평균 5억 원이 넘는 자사주를 받게 된다.
6. 에필로그: 배고픔·배부름·배아픔
아직은 잠정 합의안이다. 노조의 조합원 투표에서 과반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만약 부결된다면, 노조 집행부는 공석이 될 수 있고, 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노조는 내일(22일)부터 27일까지 조합원 총투표에 부친다. 관건은 조합원의 내부 갈등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회사면서도 반도체 회사가 아니다. 현재 이익의 대부분을 반도체에서 버는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임에 분명하다. 동시에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도 하고 설계도 한다. 스마트폰도 만들고, TV·냉장고 등 생활 가전도 만든다.
잠정 합의안대로면, 직원들 온도차는 상당할 거로 보인다.
날씨로 비유하면, 반도체 부문의 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은 '맑음', 반도체 부문의 다른 사업부는 '구름 약간', 완제품 부문은 '흐림' 정도일 것이다.

삼성전자 내부의 방정식도 복잡하지만, 외부까지 시선을 넓히면 더 고차 방정식이 된다. 요란했고 유난했던 이번 교섭은 여러 화두를 던졌다.
기업이 돈을 풍성히 버는 건 좋은 일이다. 큰 돈을 어찌 나눌지 싸우는 건 어쩌면 '배부른' 고민이다. 동시에 '배고픔' 보다 '배아픔'을 못 견디는 게 인간이다. 불편한 진실이다.
인공지능(AI) 시대 글로벌 기업의 천문학적 이윤은 오롯이 기업만의 몫일까.
천문학적 이윤은 누가 더 많이, 가져야 할까. 순서를 정하면 누가 더 먼저여야 할까.
기업 안에서는 직원 간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고 보상해야 할까. 성과급은 정말 생산성을 끌어올릴까.
좋건 싫건 게임의 규칙은 바뀌기 시작했다. ‘영업이익의 n%’를 나눠 달라는 요구는 산업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그 문고리를 잡은 건 SK하이닉스였고, 문을 연 건 삼성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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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기자 (jb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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