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는 부모나 쓰던 브랜드” 中 기술 혁신의 3가지 비결 [오늘의 대화]
“부모 세대가 쓰시던 브랜드죠.”
2000년대 이후 출생한 중국 신세대인 ‘링링허우(零零後)’와 ‘이링허우(一零後)’에게 삼성전자·현대자동차에 대해 물으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어린 시절 집에서 사용했던 세탁기와 TV, 아버지가 타던 차, 어머니가 쓰던 스마트폰이 ‘한씨(韓系·한국계)’였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국 기술 제품은 이제 낯설다. 스마트폰은 화웨이·비보·오포 중에서 고르고, 자동차는 BBA(벤츠·BMW·아우디)조차 ‘부모들의 로망’이라며 BYD·지리의 1억원대 프리미엄 전기차를 구매한다. 삼성전자가 이달 초 34년간 이어온 중국 생활가전·TV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불편한 진실은 이렇다. 중국 첨단 기술의 부상은 우리에게 최근의 일처럼 여겨지지만, 중국 젊은 세대에게는 10년 넘게 이어져 온 ‘오래된 이야기’다. 베이징의 기술 업계 관계자는 “중국 중장년층에게는 한국 기술에 대한 존중과 한국 제품에 대한 호감이 남아 있지만, 앞으로 중국을 이끌어 갈 중국 청년들은 한국을 기술 협력의 상대로 여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드론 85%, 전기차 64%… 링링허우에겐 일상이 된 ‘중국 굴기’
링링허우의 머릿속에서 중국은 언제나 ‘기술 강국’이었다. 이들이 십대에 접어들었을 때인 2013년, 중국 기업 DJI는 카메라가 달린 드론을 출시하며 세계 드론 대중화를 이끌었다. 2015년 본지 기사는 “IT 업계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첫 번째 중국 기업이 탄생했다”고 썼다. 오늘날 DJI는 세계 민간 드론 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있다.
2016년에는 유튜브에 대적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틱톡’이 중국에서 탄생했다. 비슷한 시기 화웨이·오포·비보(스마트폰), BYD·지리(전기차), 샤오미·TCL(가전) 등은 ‘국민 기술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외국산 제품을 시장에서 밀어냈다. 순수 전기차(중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 64%)와 배터리(70%) 산업에서 중국의 물량 공세는 기술 우위로 전환됐고, 지난해 1월에는 미국 기술 제재를 우회한 사건인 ‘딥시크 쇼크’가 실리콘밸리를 덮쳤다.
올해부터는 AI 모델 훈련과 서비스(추론)에 쓰이는 AI칩을 비롯한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엔비디아가 독점하던 중국 AI 칩 시장에서 화웨이를 필두로 한 중국산 칩의 비중은 41%까지 올라왔다. 지난달 공개된 딥시크의 최신 모델 ‘V4’는 GPT-5.5 대비 80~90% 수준의 성능을 내면서 가격은 3%(초기 할인가 기준)에 불과해 AI 모델 경쟁의 규칙을 흔들었다.

◇中 기술 굴기의 세 가지 비결 - 목적지·우회로·드라이버
그렇다면 중국이 지난 10여 년간 폭발적인 혁신을 이어 온 비결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울타리 밖에서 간과했던 ‘동력’과 ‘지속 가능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핵심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고 본다. 변치 않는 국가의 목표, 장애물을 뛰어넘는 우회로 전략, 그리고 비범한 실행자인 ‘베스트 드라이버’다.

첫째, 흔들리지 않는 ‘국가 목표’다. 중국에서는 외부 환경의 변화와 내부 혼란 속에서도 한 번 정한 기술 목표를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임금의 도리를 논하는 도덕경(道德經)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일과 같다(治大國如烹小鮮)’는 고사가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초기부터 치국 이념으로 언급한 말이다. 생선을 구울 때 자주 뒤집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니 진득하게 익기를 기다리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치국이 좌우로 흔들리듯(忽左忽右) 변덕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중국은 2017년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을 발표하며 ‘2025년 AI 핵심 기술 중대 돌파’ 목표를 세웠고, 딥시크의 AI 모델과 화웨이 AI 칩은 지난해 모습을 드러냈다. 2020년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 발전 계획’에서는 ‘2025년까지 신에너지차 판매량 비율 20%’를 목표로 삼았는데, 지난해 36%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국가 목표가 바뀌지 않으니 모든 기업과 연구기관, 인재가 한 방향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과감한 기술 실험과 과정의 실패도 용인된다. 한국에서 잊히는 국가 목표가 유독 많은 것과는 상반된다. 2019년 발표한 반도체·미래차 전략의 팹리스·파운드리·전기차 점유율 목표를 지금 누가 챙기고 있는가.

둘째, 변칙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우회로 전략’이다. 미국의 제재나 선진국의 우위 같은 진입 장벽에 부딪히면 중국은 정면 돌파 대신 우회하거나 점프한다. 전기차 산업의 ‘중간 기술 발전 단계’로 여겨졌던 하이브리드 단계를 건너뛰고 순수 전기차로 직행했고, 첨단 반도체 장비를 구할 수 없자 구형 장비와 후공정 기술을 조합해 수율이 낮더라도 첨단 반도체를 만들어 냈다. 동시에 테슬라·애플 등 글로벌 1위 기업을 자국 시장에 들여와 판을 흔들고, 산업이 성숙하면 잔인한 ‘옥석 가리기’로 자국 기업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며 경쟁의 활기를 만들었다.
실제로 중국에서 만나는 실무 담당 정부 관료들은 “중국의 강점은 정책을 수시로 수정하는 유연성”이라고 자주 말한다. 당·정 관료들이 불변의 목표를 추구하는 지도자와 상반된 ‘국가 운영 레시피’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런 얘기다. 중국은 나아가는 큰 방향을 절대 틀지 않되, 장애물을 만나면 손쉽게 변칙 수단을 도입한다. 손자병법의 ‘전쟁에서는 정공으로 맞서되 변칙으로 이긴다(凡戰者,以正合,以奇勝)’는 말이 떠오른다.
◇중국은 천재를 ‘양식’한다
셋째, 귀재(鬼才)의 중용이다. 바뀌지 않는 목적지를 우회로로 향한다면, 베스트 드라이버가 필수 아닐까. 중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인재의 중요성을 높게 쳐준다. 기술의 병목을 뚫기 위해 규격에서는 벗어났지만 천재성이 탁월한 이공계 인재들에게 자금과 권한을 몰아준다. 중국에서 유독 젊은 천재들이 이끄는 첨단 기술 기업이 많고, 규칙을 비트는 혁신이 지속되는 이유다.

귀재의 중용은 역사가 깊다. 마오쩌둥이 ‘제1 귀빈(貴賓)’이라고 불렀던 이는 다름 아닌 1세대 미국 유학파 첸쉐썬이었다.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제트추진연구소를 이끌다가 미국 내 반공(反共)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1955년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평생 국가의 어른 대접을 받으며 첨단 기술 돌파에 생을 바쳤다.
그런데 중국의 귀재 전략에는 충격적인 포인트가 있다. 중국이 천재를 길러 내는 일을 ‘양식(養殖)’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인간 지능을 여러 유형의 능력으로 설명한 ‘다중지능이론’의 창시자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열정과 기질’에서 아인슈타인, 피카소, 간디 등 창조적 인물들의 생애를 분석하며, 천재성이 개인의 몰입뿐 아니라 비슷한 수준의 인물들과 교류하는 지적 환경에서 발현된다고 봤다. 중국은 바로 이런 ‘천재는 천재끼리’ 원칙에 근거해 어린 영재를 조기 발굴하고 집중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다. 높은 지능을 갖고 태어난 1%의 인구가 낙오되지 않고 재능을 꽃 피울 수 있도록 국가가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를 통해 인위적인 ‘천재 인큐베이터’를 운영하는 셈이다.

덕분에 중국은 매년 600만명에 달하는 이공계 대졸자라는 양적 토대와 별개로, 초·중학생 때부터 길러진 천재 군단을 거느리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전일제 영재 교육은 칭화대 야오싱퉁 석학이 이끄는 중고등학생 영재반의 확산으로 더욱 체계화되고 있고, 15세에 입학하는 학부 과정인 ‘소년반(少年班)’의 정원도 늘어나는 것으로 관찰된다. ‘너드(Nerd) 기업가’와 ‘일당백 연구자’를 양산하는 강력한 기반이다.

◇“중국을 어제의 잣대로 보면, 한국의 내일은 없다”
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 필연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술 경쟁력과 인적 자원으로 부(富)를 이룬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경쟁하고 협력하며 살아남을 것인가. 지금은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중국이 접근하지 못하는 시장을 공략하며 반사이익을 누리는 측면이 있다. 반도체 분야의 호황이 한국의 국력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중 구도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고, ‘사이클 산업’은 올라가는 시기가 있으면 내려가는 시기도 있다. ‘유통기한’이 끝나기 전에 중국의 기술 패러다임 전환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정교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을 어제의 잣대로 보면, 한국의 내일은 없다”는 경고가 베이징 현장에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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