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野 회초리 들다가도 與 ‘공소취소’ 한다니 멈칫하지예”
● 안갯속 대구시장 선거 “누가 이길지 감 안 잡혀”
● “공천 위해 입 다물고, 선거철 박근혜 덕 보려고만”
● 끝없는 불황에 “김부겸 되면 살림 나아지려나”
● 김부겸 “대구 너무 열악…국민의힘 해놓은 게 없노”
● 추경호 “거대 여당과 이재명 정권 독주 견제해야”
● “대구시민 마음 왔다 갔다…누구 뽑아야 할지 몰라”

5월 14일 대구 수성구 수성시장에서 국거리를 파는 박모(65) 씨는 대구시장 선거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상인들 사이에선 "힘 있는 여당 사람이 대구시장이 되면 지역 살림이 더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없지 않단다. 박 씨도 가게 상황이 어렵긴 매한가지였지만 민주당 후보에 표를 주긴 망설여진다고 했다. 그는 "우리 같은 할매들은 공소취소라는 말을 이번에 처음 들었다"면서 "이 대통령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고 '대통령도 죄 지으면 감옥 가야 한다' 캐놓고, 이제 와서 이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구 유권자의 양가감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안갯속 대구시장 선거 "누가 이길지 감 안 잡혀"
‘보수정당 공천은 곧 당선'이던 대구시장 선거판이 유례없는 안갯속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가 후보 등록을 한 날이다. 당장 보름 뒤면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시점임에도 대구의 표심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흩어져 있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이번에는 누가 시장이 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는 신중론이 지배적이었다. 보수 우위의 대구 정치 지형에서는 이례적 풍경이다.거리에서 만난 대구시민 다수는 국민의힘에 해묵은 실망감을 보였다. 달서구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박모(77) 씨는 "이번 선거에서도 국민의힘 후보를 찍을 것"이라면서도 고개를 연신 가로저었다. 박 씨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때문에 지역에서도 말이 참 많았다"며 "선거가 코앞이라 좀 조용해진 것 같은데, 여전히 속 시끄럽다"고 토로했다.
성서산업단지에서 일하는 한모(43) 씨 역시 비슷한 불만을 토로했다. 평생을 국민의힘 후보만 찍어왔다는 그는 이번엔 생애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정도 믿고 지지해 줬으면 한번은 바뀌는 게 정상인데, 안 바뀌니 내가 바뀌련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도 비슷하지 않나. 편한 자리에 한번 몸담고 나면 이후엔 쉽게쉽게 살고 싶은 게 인간 심리다. 국민의힘 상황이 딱 그렇다. 다들 우째든 공천 한번 받아볼라고 눈치만 보고,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 한마디 못 하고 있다. 그러다가 선거철만 다가오면 박근혜 전 대통령 덕만 볼라꼬 매달린다. 저기 전라도는 민주당이 못하면 조국혁신당이든 국민의당이든 찍어주면서 견제라도 하지 않나. 그 선택이 옳고 그른 걸 떠나서 거기는 대안이라도 있는데, 대구 상황은 그렇지가 못하다. 정신 차리게 한번 물갈이가 필요하다."
흔들리는 표심의 밑바닥에는 '30년 연속 꼴찌'라는 대구 경제의 서글픈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대구는 30년째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꼴찌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대구 도심을 조금만 걸어도 빛바랜 '임대 문의' 스티커가 붙은 빈 상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날 김부겸 후보는 대구지역 보훈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이 자리의 핵심 주제 역시 '상가 공실' 문제였다. 보훈회관 건물마저 내부 공실이 심각해지면서 운영비를 조달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계에 직면한 탓이다. 몇몇 층이 통째로 비어 있어 취재차 방문한 기자가 '잘못 들어왔나' 싶어 나갔다 다시 들어왔을 정도였다.
간담회를 마치고 수행원들과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던 김 후보는 한숨을 내쉬며 "너무 열악하다. 야 진짜 뭐 (보수정당에서) 해놓은 게 없노. 곳곳에 가보니 참 너무하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김 후보는 기자에게 "대구시민들 가슴속에는 대구가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팽배해 있다"며 "만나는 분들마다 '제발 대구 경제 좀 살려주이소' 말씀하셔서, '저를 써먹으시라'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끝없는 불황에 "김부겸 되면 살림 나아지려나"
끝없는 불황은 대구 시민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수성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장사는 죽을 맛인데 임대료는 자꾸만 오른다"며 울상을 지었다. 기자를 붙잡고 "진짜로 김부겸이가 되면 중앙 예산을 많이 들고 와 대구 살림이 나아지겠느냐"며 되묻는 이도 적지 않았다. "지역 경기가 워낙 바닥을 치고 있으니, 이번만큼은 실리를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장기 불황에 지친 탓인지 정치권을 향해 체념과 분노가 뒤엉킨 목소리를 내는 이도 있었다. 달서구에 거주하는 허모(63) 씨의 토로다."솔직히 김부겸이 되든 추경호가 되든 대구 경제에 무슨 큰 변화가 있겠나 싶다. 다만 그간 대구시민들이 항상 보수정당 정치인들을 지지해 줬는데, 이들이 대구가 처한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대구시민들은 고향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데, 대구 정치인들은 맨날 딴생각만 하고 있다 아이가. 뉴스를 보면 매번 밥그릇 문제로 난리도 아니다. 지지자가 정당을 걱정하고 있는 판인데, 이게 맞는 방향인가 싶다."
지역 민심을 겨냥한 듯 이재명 대통령의 측면 지원도 나타났다. 이 대통령이 김부겸 후보의 후보 등록 다음 날 대구 군위군과 경북 의성군 일원의 대구·경북(TK)통합신공항 건설 예정 부지를 시찰한 것이다. 선거 개입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행보다. 김부겸 후보는 즉각 "제가 대구시장이 돼 이재명 정부와 함께 공항 문제 깔끔하게 해결하겠다"고 응답한 반면 추경호 후보는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논란이 재현된다면 이번 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에서 대통령 심판 선거로 전환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거여(巨輿)라는 정치 지형은 대구시장 선거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당 시장을 만들어 지역 경제를 살려보자"는 실리론과 "비대해진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견제론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이모(46) 씨 역시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물음에 "국민의힘이 마음에 안 들지만, 민주당에 힘을 더 실어주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조작기소 특검, 이른바 공소취소 논란이 이러한 민심에 불을 붙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 권한을 특검에 부여하는 특검법을 민주당이 추진하자 보수층이 결집했기 때문이다. 역풍이 거세지면서 민주당은 특검법 처리를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둔 상태다.
요동치는 표심은 여론조사에서도 관측된다. 한국갤럽이 뉴스1 의뢰로 5월 9~10일 시행한 대구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부겸 후보가 44%, 추경호 후보가 41%로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펼쳤다. 한국갤럽이 세계일보 의뢰로 불과 한 달 전(4월 10~11일) 시행한 양자 대결 조사에서 김 후보(53%)가 추 후보(36%)를 17%포인트 차로 앞질렀던 것과 비교하면 판세가 급변했다(양 조사 모두 만 18세 이상 대구시민 805명을 대상으로 실시, 무선 전화 인터뷰 방식,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5%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변화의 주된 원인은 공소취소 논란으로 풀이된다. 5월 조사에서 응답자의 54%가 특검에 공소취소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대구시민 마음 왔다 갔다…누구 뽑아야 할지 몰라"
이날 추경호 후보는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선거사무소 1층에서 장애인협회·노동조합·대학교수모임 등과 만남을 가지며 세를 과시했다. 지지자들은 추 후보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며 "공소취소는 말이 안 된다" "대구마저 넘어가면 안 된다" 등의 대화를 나눴다. 추 후보 역시 '신동아'에 "여권이 입법권과 행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이제는 사법 시스템까지 쥐고 흔들려 한다는 국민적 우려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추 후보 측은 연일 김부겸 후보를 향해 "공소취소 문제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상식이 흔들리는 느낌을 자꾸 받는다. 특히 이 대통령 재판 문제에 대한 여권 행보를 보면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령의 아버지는 민생회복 지원금 영향인지 민주당에 조금씩 마음을 푸시더라. 그런데 30대 아들은 '아빠, 월급명세서 보면 이것저것 빠져나가는 게 자꾸 오른다' 이러니 마음이 복잡하다. 요즘 장사가 워낙 어려워 '김부겸이 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하지만 지금처럼 권력이 과도하게 쏠린 상황에서는 견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대구라도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언제까지 국민의힘을 도와줘야 하느냐"고 불만을 표한 이도 상당수였다. 곳곳에서 만난 대구시민들은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택시기사 이모(67) 씨는 "바닥 민심이 예전하고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대구 정서'라는 게 있어가꼬 민주당 대구시장이 나오는 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대구시민들은 마음이 왔다 갔다 하고 있을 것"이라며 "솔직히 나도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대구=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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