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돌아온 ‘꽃청춘’ 반가움 뒤에 남은 질문



[뉴스엔 황지민 기자]
장수 예능 왕국의 2026년, 익숙함은 안정인가 한계인가꽃청춘 9년 만의 귀환… 여전한 완성도 속 '포맷 피로감' 논란케이블 1위 수성하는 나영석 사단, 그러나 OTT 시대의 숙제는 남았다
2026년 5월 3일 밤, tvN '꽃보다 청춘: 리미티드 에디션'이 첫 전파를 탔다. 정유미·박서준·최우식이 나영석 PD에게 '납치'당해 당혹스러워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9년 만의 귀환이었다. 수도권 최고 시청률 6.4%, 전국 평균 3.7%를 기록하며 케이블 및 종편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남녀 2049 시청률 역시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 동시간대 1위였다. 수치만 보면 여전히 나영석 PD 건재함을 확인하는 결과였다.
그러나 방송가 안팎에서는 두 가지 시선이 교차한다. 한쪽에서는 "역시 나영석"이라는 신뢰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또 같은 공식 아니냐"는 지적이 따라붙는다. 같은 숫자를 두고도 해석이 갈리는 것, 그것이 지금 나영석 예능이 놓인 자리를 가장 잘 보여준다.
■ 선형 TV 스코어를 넘어… ‘티빙’ 시대에도 유효한 편안함의 힘
먼저 성과부터 짚어야 한다. '꽃보다 청춘: 리미티드 에디션'은 론칭 방식부터 달랐다. 나영석 PD는 김대주 작가 데뷔 20주년 축하 자리를 빌미로 정유미·박서준·최우식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뒤, 채널 십오야 라이브 도중 갑작스럽게 촬영을 시작했다. 구독자 5,000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세 사람이 납치되는 장면은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박서준은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이라고 했고, 최우식은 "이게 어디서부터 짜인 거냐"며 황망해했다. 시청자를 '공범'으로 삼은 이 기발한 론칭은 방송 전부터 화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본 방송 완성도도 나영석 사단 특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KTX 푯값으로 용돈 절반을 날리고, 저렴한 숙소를 찾아 발품 팔고, 노포에서 가성비 만찬을 즐기는 장면들은 정겹고 편안하다. 무엇보다 세 사람의 케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윤스테이'와 '서진이네'를 거치며 쌓인 신뢰가 스크린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연출 리듬과 자막 감각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나영석 사단 강점이 이번 시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청률 이면 수치도 의미 있다. 첫 방송 이후 2회차 전국 시청률은 3.5%로 소폭 하락했지만, 동시간대 케이블 1위 자리는 유지했다. 티빙을 통한 동시 스트리밍까지 합산하면 실제 시청자 수는 단순 시청률 수치보다 더 크다는 것이 업계 공통된 분석이다. 선형 TV 시청률만으로 콘텐츠 성패를 판단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 제작자에겐 ‘치트키’, 시청자에겐 ‘예측 가능성’이라는 양날의 검
나영석 PD가 구축한 예능 문법 핵심은 단순하고도 강력하다. 출연진은 사전 고지 없이 낯선 공간으로 투입된다. 반드시 제약 조건이 주어진다. 돈이 없거나, 식재료가 제한되거나, 이동 수단이 묶인다. 그리고 고생 끝에 따뜻한 엔딩이 기다린다. '낯선 환경 + 제약 조건 + 출연진 반응 + 훈훈한 마무리.' 이 공식이 2012년 '1박 2일'부터 2023년 '서진이네'까지 관통한다.
이 공식 강점은 안정성이다. 어떤 출연진을 넣어도, 어떤 지역에 던져놓아도 일정 수준 이상 콘텐츠가 나온다는 것은 제작자 입장에서 강력한 무기다. 실제로 이 공식은 시즌마다 새로운 출연진과 결합해 각기 다른 색깔을 만들어왔다. '꽃보다 할배' 고령 배우들이 만들어낸 감동, '삼시세끼' 손호준·차승원 조합이 빚어낸 슬로우 TV 매력, '신서유기' 예능 고수들이 채운 게임 버라이어티까지. 같은 뼈대에서 전혀 다른 살이 붙었다.
그러나 이 공식이 동시에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점인 안정성이 시청자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성'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꽃보다 청춘: 리미티드 에디션' 경우, 방영 전부터 SNS에 이동 경로가 노출됐다. 7호선 학동역, 서울역, 전주, 남원. 지역 주민들이 올린 인증 사진이 커뮤니티를 통해 퍼지며 시청 전에 여행 동선이 먼저 알려진 것이다. 포맷 익숙함과 사전 동선 노출이 맞물리면서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결말을 이미 아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2012년 '1박 2일', 2013년 '꽃보다 할배', 2014년 '꽃보다 청춘', 2015년 '삼시세끼', 2017년 '윤식당', 2019년 '강식당', 2023년 '서진이네'까지. 장르와 출연진은 바뀌었지만 구조가 반복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나영석 PD만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장수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피하기 어려운 공통 숙제이기도 하다.
■ 장소가 아닌 ‘사람’을 보게 하라… 날 것의 예능 본능이 던지는 힌트
같은 나영석 사단 안에서도 온도 차가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신서유기'와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여전히 화제성을 유지하고, '여자들의 역습'(이하 지락실)도 공개 당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무엇이 다른가.
업계에서는 그 차이를 '출연진 자체가 콘텐츠가 되느냐'에서 찾는다. '신서유기'와 '지구마불'은 강호동·이수근·은지원·규현 날 것 그대로 예능 본능이 매 회차를 독립적인 이벤트로 만든다. 강호동 폭발적 리액션, 이수근 능청스러운 눈치, 은지원 예측 불가능한 돌발 행동이 어떤 장소, 어떤 게임과 만나도 새로운 케미를 만들어낸다. 시청자들은 '어디 가는지'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기 위해 채널에 남는다. 지락실 역시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신서유기 포맷을 공유하지만, 패널들 예능 본능이 포맷 익숙함을 상쇄한다.
이 성공 사례들은 나영석 PD 제작 철학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동시에, 어떤 조건에서 공식이 잘 작동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포맷 힘보다 출연진 힘이 클 때, 나영석 공식은 빛난다. '꽃보다 청춘: 리미티드 에디션'이 직면한 과제는 이 맥락에서 읽힌다. 정유미·박서준·최우식 세 사람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서진이네'를 거치며 이미 소비된 케미이기도 하다. 검증된 안전패가 때로는 새로움 걸림돌이 된다.
■ 도파민과 서바이벌의 범람… 무한 선택지 앞에 선 ‘슬로우 TV’의 운명
나영석 PD 전성기는 선형 TV 전성기와 정확히 겹쳐 있었다. 채널을 틀면 예능이 흘러가고, 시청자는 수동적으로 편성표를 따라갔다. 그 환경에서 '편안하고 따뜻한 예능'은 강력한 무기였다. 지금은 넷플릭스·티빙·웨이브가 일상이 된 환경이다. 시청자는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선택하고, 무한한 선택지 앞에 놓여 있다.
이 환경 변화가 나영석 공식에 유독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OTT 환경에서 주목받는 예능은 대체로 두 유형이다. '피지컬: 100'이나 '데블스 플랜'처럼 완전히 새로운 포맷으로 승부하거나, 대체 불가능한 출연진 화학반응으로 매 회차를 사건으로 만들거나. '편안하고 따뜻한' 콘텐츠가 설 자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 룰 자체가 달라졌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헌식은 "나영석 PD 제작 역량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콘텐츠 소비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며 "플랫폼이 다양해진 만큼, 각 플랫폼에서 어떤 다른 경험을 줄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나영석 PD는 채널 십오야를 통한 유튜브 콘텐츠에서 라이브 포맷, 토크 형식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 실험들이 아직 본 방송 포맷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메가 브랜드 PD’의 실종… 강력한 라이벌 없는 독주가 남긴 그늘
나영석 PD 포맷 현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구조적 맥락이 있다. 바로 경쟁자 상대적 부재다. 국내 예능 시장에서 나영석 PD에 필적하는 '브랜드 PD'는 많지 않다. 신원호 PD는 드라마로 무게중심이 넘어갔고, 김태호 PD는 MBC를 떠난 뒤 뚜렷한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 구도가 나영석 PD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강력한 경쟁자가 있을 때 혁신 압박이 생긴다. 맞서 싸울 상대가 없으면 현재 공식에 안주하기 쉬운 법이다. 장수 예능 프로그램 고질적 문제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오랜 포맷을 그대로 유지해도 일정 수요층이 존재한다는 안도감이 변화를 늦춘다.
물론 반론도 있다. 나영석 PD는 2023년 CJ ENM을 떠나 독립 제작사 에그이즈커밍으로 이적하며 스스로 변화를 택했다. 대형 방송사 편성 압박과 광고주 눈치를 벗어난 더 자유로운 실험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채널 십오야를 통한 다양한 유튜브 실험, 라이브 포맷 도입 등은 이 자유 산물이다. 에그이즈커밍 이적 이후 그가 내놓은 시도들을 단순히 "변화 없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실험들이 아직 본 방송 포맷에서 근본적인 변화로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업계 기대와 현실 사이 간극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 무해한 재미의 가치와 포맷 진화의 압박… 나영석이 마주한 균형점
결국 나영석 공식을 둘러싼 논쟁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검증된 안정성은 미덕인가, 아니면 혁신을 가로막는 저주인가.
긍정적 시각에서 보면, 나영석 PD가 만들어온 콘텐츠들은 여전히 시장에서 유효하다. 케이블 동시간대 1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편집 완성도와 연출 리듬은 업계 표준을 이끌고 있다. 무엇보다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예능'에 대한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자극적인 서바이벌과 경쟁 예능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나영석 PD 특유 따뜻하고 여유로운 톤은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포맷 반복이 지속될수록 시청자 기대치는 낮아지고, 신규 유입은 어려워진다. '꽃보다 청춘: 리미티드 에디션'이 케이블 1위를 지키고 있다 해도, 그 시청자 풀이 기존 나영석 팬덤 안에서 순환하는 것이라면 성장 여지는 제한적이다. 새 세대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생경한 경험을 줄 수 있는 포맷 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영석 PD 스스로도 이 균형점을 찾는 것이 지금의 과제임을 모를 리 없다. 2003년 단 한 편 파일럿으로 '1박 2일'을 만들어냈고, 2015년 '삼시세끼'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슬로우 TV 장르를 개척한 창작자다. 그 감각이 살아있는 한, 나영석 예능 다음 챕터를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일요일 밤을 마무리하는 '꽃보다 청춘: 리미티드 에디션'의 편집 리듬은 여전히 완벽하고 편안하다. 자극적인 도파민 예능이 범람하는 OTT 시대에, 이토록 무해하고 안정적인 재미를 꾸준히 공급할 수 있는 창작자는 단연코 나영석이 유일하다. 이번 시즌이 남긴 과제들은 결코 '정체'가 아닌, 더 큰 도약을 위한 '빌드업'에 가깝다. 유튜브와 라이브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세포 분열 중인 그의 실험 정신이 본 방송 포맷과 만나는 순간,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주하게 될까. 자신만의 굳건한 성(城)을 짓고도 늘 담장을 넓힐 고민을 멈추지 않는 나영석, 그의 예능 다음 챕터가 여전히 기다려지는 이유다.
뉴스엔 황지민 saeha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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