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도 ‘입덕’하는 마이클 잭슨, 왜 전설인가? 다섯가지 이유 [송원섭의 와칭]

송원섭 2026. 5. 2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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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미국 패서디나에서 공연중인 마이클 잭슨. 이 시절, 이미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연합뉴스

2009년 6월 25일. 이날부터 3일 동안 대표적인 K-POP 기획사 JYP의 공식 홈페이지는 닫혀 있었습니다.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JYP의 설립자 박진영이 존경과 추모의 의미로 홈페이지를 닫은 것입니다. “생전에 만나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는 말과 함께.

마이클 잭슨의 생애 전반기를 다룬 영화 〈마이클〉이 공개된 뒤로 온 세상이 다시 마이클 잭슨 붐에 휩쓸렸습니다. 영화는 바로 흥행 대박을 기록했고 그의 대표 앨범인 ‘Thriller’와 베스트 앨범 ‘Number Ones’가 다시 빌보드 앨범 차트에 등장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이 영화가 과연 그의 삶을 얼마나 충실히 다뤘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 덕분에 그를 몰랐던 Z세대들이 다시 그의 음악에 새로 ‘입덕’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다음 글은 그를 잘 몰랐거나, 큰 관심이 없었던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1970년대, 80년대, 90년대, 불멸의 신 같던 그의 전성기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마이클 잭슨이 대체 왜 그렇게 유명한 건데?’ 라는 질문을 가졌던 분들이라면 한 번쯤읽어보실 만 합니다.
영화 '마이클'에서 마이클 잭슨을 연기한 조카 자파 잭슨. 마이클과 함께 잭슨5로 활동했던 형 저메인 잭슨의 아들이다. 연합뉴스


공식 호칭이 ‘팝의 제왕’


그를 지칭하는 공식 별명은 ‘팝의 제왕(King of Pop)’. ‘팝의 황제’는 한국에서만 쓰이는 잘못된 호칭입니다.

참고로 그와 비교할 만한 사람은 ‘로큰롤의 제왕(King of Rock' n Roll)’, 엘비스 프레슬리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뮤지션이 특정 장르에서 ‘제왕’이라 불렸지만, 진정한 제왕은 이 두 사람 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음반 판매량이나 인기 차트에 따른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위대한 아티스트였기에 주어진 칭호입니다. 물론 이 두 사람과 비견될만한 존재로 비틀스가 있지만, 이들은 4인조였기 때문에 ‘유일자’를 가리키는 ‘제왕’이란 호칭을 얻지는 못했죠.


흑인 뮤지션의 격을 바꿨다


잭슨 이전의 흑인 아티스트들은 결코 오늘날의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흑인 음악이 우수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잭슨의 바로 전 세대, 모타운 레코드 소속의 마빈 게이, 스모키 로빈슨, 다이애나 로스 같은 슈퍼스타들은 이미 백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라디오 스타였고 ‘흑인 중에선 멋진’의 범주를 넘지는 못했습니다. 이들에 비해, 홀 앤 오츠나 비지스처럼 흑인의 음악을 소화하는 백인 아티스트들은 슈퍼스타 대접을 받았죠.

마이클 잭슨은 이런 인종의 벽을 넘어 전 세계가 최고로 인정한 최초의 아티스트입니다. 일례로, 영화 ‘마이클’에도 잠시 다뤄지지만, 마이클 잭슨 이전에는 어떤 흑인 가수의 뮤직비디오도 MTV에서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듯 MTV로 상징되는 메인 스테이지는 백인 아티스트들만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1983년 12월 2일, MTV가 14분짜리인 ‘Thriller’ 뮤직비디오를 방송한 이후, 세상이 달라진 겁니다. 그 이후,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흑인 음악’이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장악했죠.

마이클 잭슨이 'Smooth Criminal'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더 린(The Lean)' 자세. 중력을 초월한 이 자세처럼 그의 퍼포먼스는 시대를 초월했다. 사진 Smooth Criminal 뮤직비디오 캡처

듣는 가수에서 보는 가수로
뮤직비디오의 시대, 칼군무의 시대를 연 것도 마이클 잭슨입니다. 그는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단편영화(short film)’라고 부를 정도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스스로 기획한 최초의 대작 뮤직비디오인 ‘Thriller’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자기 돈을 투입할 정도였죠.

잭슨은 가창력도 완벽했지만, 화려한 춤과 영상을 통해 역사상 최초로 ‘비디오형 가수’의 표상을 정립했습니다. 잭슨이 없었다면 비욘세도,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어셔도, 서태지도, BTS도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는 잭슨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위 아 더 월드’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인 퀸시 존스,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왼쪽부터)의 모습. 넷플릭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을 통해 공개됐다. 사진 넷플릭스


세상을 바꾸려 직접 나서다


잭슨을 그저 댄스 가수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잭슨의 노래 중에는 강력한 사회 비판과 개혁 의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담은 것들이 많습니다. 전쟁과 기아에 희생되는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 ‘Heal the world’나 흑백 갈등을 조명한 ‘Black or White’, 빈부격차에 대한 비판인 'They Don't Care About Us' 같은 노래들은 모두 세계적으로 히트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메시지로만 그친 게 아니라는 점이죠. 그는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잭슨은 2000년 기네스북에 ‘가장 사회공헌이 큰 아티스트’로 등재될 정도의 활동을 했습니다. 전체 기부액은 약 5억 달러(한화 약 6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됩니다.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것은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 퀸시 존스가 주도한 1985년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캠페인일 겁니다. 이들을 따라 당대 최고 스타들이 모여 녹음한 이 노래는 총 6300만 달러의 모금을 기록했고 이 정신을 기린 2010년과 2020년, 후배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죠. 이런 사회 공헌의 기념비를 세운 뮤지션은 역사상 잭슨이 처음입니다.
그를 전설로 만든 앨범 'Thiller'의 표지. 소니뮤직 코리아 제공


압도적 성공: 음반과 수상


기록으로 보면 1982년 앨범 ‘Thriller’는 공식적으로 7000만장 이상이 팔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단일 앨범의 지위를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전 세계 판매량에는 누락 수치가 많아 대략 1억장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1984년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역대 최다인 8개 부문을 휩쓸었습니다(공동 역다 최다).

‘Thriller’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총 37주 동안 1위를 지켜 역시 역대 최다 기록, 그에 이은 ‘Bad’ 앨범에서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만 무려 5곡을 배출했습니다(공동 역대 최다). 아울러 단일 아티스트로서 통산 앨범 판매량은 역대 3위입니다. 비틀스(약 6억장), 엘비스 프레슬리(약 5억장)에 이어 대략 4억장 내외를 판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상 다섯 가지 면에서 잭슨의 놀라운 점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밖에도 공연, 무대 기술, 다양한 음악이 콜라보 등 현대 대중음악이 잭슨에게 빚진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가 51세로 요절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며 그에게 헌사를 바쳤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말 만큼 그를 잘 규정한 말은 없을 듯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또 다른 프레드 아스테어, 또 다른 척 베리, 또 다른 엘비스 프레슬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제2의 마이클 잭슨도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재능, 그의 경이로움, 그의 신비로움은 그대로 전설이 되었다.”

송원섭 song.weonseo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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