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퍼주기’ 제동 건 하버드대… A학점 비율 20%로 묶는다
‘만점 졸업생만 55명’… 성적 신뢰도 위기에 칼 빼 들어
교수진 “전국적 웃음거리 끝내야” vs 학생 94% “이기주의 조장”
2027학년도 본격 도입… 미국 대학가 ‘학점 거품’ 개혁 신호탄

미국 최고 명문 하버드대학교가 고질적인 성적 부풀리기 현상인 ‘학점 인플레이션’을 근절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학부 과정에서 남발되던 A학점 비율을 강제로 제한하는 강력한 규제책을 전격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하버드대 교수진은 최근 투표를 통해 학부 강의의 A학점 부여 비율을 제한하는 안건을 찬성 458표, 반대 201표로 통과시켰다.
이번 개혁안의 핵심은 이른바 ‘20%+4’ 규정이다. 앞으로 모든 학부 강좌에서 일반 A학점(A- 제외)은 전체 수강생의 20%까지만 줄 수 있다. 다만 수강 인원이 적은 소규모 강의나 우수 학생이 집중되는 특수성을 감안해 최대 4명까지는 예외적으로 A학점을 추가 유예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뒀다.
하버드대가 이처럼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배경에는 성적 변별력 상실과 학위 신뢰도 하락이라는 내부적인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하버드대 자체 조사 결과 2024~2025학년도 기준 학부생이 취득한 성적 중 A계열(A, A-) 학점 비중은 60%를 넘어섰다. 2012~2013학년도 당시 35%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여 년 만에 두 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최고 평점(GPA)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소피아 프로인트’ 상의 전말은 학점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단 1~2명에 불과했던 이 상의 수상자는 지난 학년도에 무려 55명이 만점으로 동점을 기록하며 공동 수상하는 촌극을 빚었다. 학계에서는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이 이 같은 현상을 부채질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AI 활용이 활발한 수업을 맡은 교수들의 강좌에서 A학점 배출 비율이 약 30%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학 본부와 교수 사회는 이번 조치를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아만다 클레이보 하버드대 학부 교육학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투표는 매우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하버드는 학문적 문화를 강화할 것이라 믿으며, 다른 대학들도 동일한 수준의 엄격함과 용기를 갖고 유사한 문제를 마주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평소 학점 거품을 비판해 온 스티븐 핑커 심리학과 교수도 이메일에서 “학점 인플레이션은 교수들에게 바닥을 향한 경쟁을 강요해왔고, 대학들을 전국적인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며 개혁안에 힘을 실었다.
반면 당사자인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학내 설문조사 결과 학부생의 94%가량이 해당 정책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하버드대 학생회 소속 이현수씨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이 정책은 학생들을 이기적이 되도록 유도한다”며 “우리는 세계 최고의 학생들과 서로에게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하버드대의 새로운 성적 평가 정책은 오는 2027학년도부터 본격 시행되며, 대학 측은 도입 3년 후 정책의 실효성을 재평가할 방침이다. 학점 인플레이션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레이 페어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조치가 하버드라는 상징성을 넘어 대학가 전반에 광범위한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라며 ‘올바른 방향’의 한 걸음이라고 진단했다.
권순욱 기자 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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