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How] 중고 반도체 장비·부품시장 최강자 ‘서플러스글로벌’
<르포> “매각 중인 장비·부품가치 1.5조”… 글로벌 레거시 반도체 공급망의 심장을 가다
온·습도 관리되는 1만3000평 클러스터… 포토·트랙 장비 등 수백 대 배치
장비 해체해 5000개 부품 추출 후 데이터화… 독보적인 기술 자산 아카이빙
파편화된 중고 유통 혁신한 김정웅 대표… 온라인 플랫폼 ‘세미마켓’으로 디지털 전환

[대한경제=이계풍 기자]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 속에 미세 공정과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시장이 뜨겁다. 하지만 최첨단 공정의 이면에는 자동차, 산업용 기기, 전력 제어 등에 필수적인 ‘레거시(성숙 공정) 반도체’라는 거대한 생태계가 버티고 있다. 첨단 공정 전환이 빨라질수록 기존 장비의 교체와 유지 보수 수요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19일 찾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서플러스글로벌 반도체 장비 클러스터는 전 세계 레거시 반도체 생산라인의 생명줄을 쥔 핵심 거점이었다.
◇ 항온·항습 클린룸에 1.5조 장비 2000대
클러스터 2층 전시장에 들어서자 거대한 반도체 장비 수백 대가 끝없이 줄지어 선 장관이 펼쳐졌다. 노광(포토), 도포·현상(트랙), 세정(웻) 등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전공정 핵심 장비들이 열을 맞춰 배치돼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중고 물품을 쌓아두는 물류창고가 아니었다. 미세 먼지와 습도 변화에 치명적인 반도체 장비 특성을 고려해, 전 공간이 정밀한 항온·항습 시스템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내부 환경은 실제 반도체 생산 공장(팹)과 다름없었다.

부지 면적 약 4만3000㎡(약 1만3000평) 규모의 클러스터에는 8대 전공정 장비부터 후공정 패키징 장비까지 약 2000대의 장비가 보관돼 있다. 유상현 서플러스글로벌 클러스터 팀장은 “장부상 재고 자산 규모만 약 2000억원이며, 향후 글로벌 시장에 공급될 때의 최종 판매가 기준으로는 무려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자산 가치”라고 귀띔했다. 대형 전시장 외에도 하이테크 클린룸, 리퍼비시(재정비) 전용 공간, 고객들이 장비 구동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데모 시설 등이 융합된 복합 테크니컬 센터 구조를 갖췄다.
전시장 한편에는 기존 생산라인에서 퇴역한 장비들로부터 분리해 낸 각종 반도체 핵심 부품들이 부품 랙(Rack)에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서플러스글로벌은 단순히 중고 장비를 중개하는 브로커가 아니다. 수명이 다했거나 사양이 밀린 장비를 정교하게 해체(Harvest)한 뒤, 그 안에서 재사용이 가능한 부품들을 완벽하게 선별해 낸다. 이후 분류 및 데이터 등록 작업을 거쳐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다시 공급하는 구조다.
유 팀장은 “반도체 장비 하나를 분해하면 약 5000개 수준의 부품이 나온다”며 “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데이터화하는 작업 자체가 서플러스글로벌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리퍼비시 작업장에서는 고객사의 주문에 맞춰 중고 장비를 재정비하고 사양을 변경하는 복원 공정이 한창이었다. 유통 현장에서는 원형 그대로의 장비를 원하는 고객도 있지만, 자신들의 독자적인 공정 환경에 맞춰 특수 개조를 요청하는 맞춤형 주문이 쇄도한다.
◇ 깜깜이 거래 혁신… 온라인 플랫폼 ‘세미마켓’
서플러스글로벌이 중고 반도체 장비와 부품 시장에 주목해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배경에는 레거시 반도체 시장 특유의 비효율성이 자리하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전력 반도체 기업들은 여전히 구형 레거시 공정 기반으로 공장을 가동하고 있지만, 메이저 장비 제조사들이 구형 부품 생산을 중단하면서 부품 조달에 고질적인 애로를 겪어왔다.
기존 레거시 팹들은 필요한 장비나 단종된 부품을 구하기 위해 사설 브로커를 통하거나 글로벌 이베이(Ebay) 쇼핑몰, 혹은 해외 네트워크를 직접 뒤져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비의 신뢰성을 보장받기 어려웠고, 부품의 이력 관리가 불가능해 거래마다 가치 평가가 제각각 이뤄지는 ‘깜깜이 거래’가 횡행했다. 코오롱상사 철강금속사업부 출신으로 글로벌 산업재 무역 현장을 누볐던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는 바로 이 파편화된 시장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서플러스글로벌은 장비 이력 관리와 품질 보증 시스템을 도입하며 전 세계 중고 장비 거래 분야의 압도적 선도 기업으로 성장했다.
서플러스글로벌은 장비와 부품,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는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세미마켓(SemiMarket)’을 지난해 론칭하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사업 확대에 나섰다.
세미마켓은 전 세계 바이어들이 온라인 비딩(입찰)과 견적 요청(RFQ), 데이터 기반 장비·부품 자동 매칭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플랫폼이다. 실제로 최근 진행한 첫 번째 온라인 장비 매각 입찰에는 글로벌 바이어 40여 개사가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치열한 입찰 경쟁이 붙으며 일부 장비의 매각 가격이 기존 오프라인 예상가 대비 약 70% 이상 뛰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서플러스글로벌의 중고 부품 및 장비 사업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라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I 중심 첨단 공정 투자가 전 세계 반도체 유동 자금을 흡수하는 동시에, 자동차와 전력반도체 등 하위 기반을 지탱할 레거시 공정의 수요 역시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특히 지리적 입지도 좋다. 서플러스글로벌 용인 클러스터는 글로벌 반도체 거점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약 20㎞,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와 약 38㎞ 거리에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 대기업과 50여개 차세대 소부장 기업들이 총집결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도 가깝다.
현재 가동 중인 A동에서는 장비 클러스터와 세미마켓의 오프라인 파츠몰이 유기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플러스글로벌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올8월 준공을 목표로 신규 B동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축 B동이 완공되면 세미마켓 오프라인 파츠몰의 규모를 확대 구축하고, 기존 A동과 신설 B동의 역할을 분담하여 명실상부한 ‘글로벌 레거시 반도체 공급망 허브’ 기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는 “레거시 반도체 시장은 거대한 규모에 비해 거래 구조는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다”라며 “장비와 부품, 데이터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플랫폼 구축을 통해 글로벌 레거시 공급망 생태계를 체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계풍 기자 kp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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