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스포츠 중계 공짜” 클릭했더니… 수조원 도박판이 열렸다

윤성우 기자 2026. 5.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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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시청 찾다가 도박의 늪으로
한 무료 스포츠 중계 사이트에 다양한 해외 스포츠 콘텐츠가 올라와 있다.

“김혜성 삼진 나이스! 다저스 제발 져라.”

20일 오전 11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경기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온라인 스포츠 중계 사이트.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경기가 중계되는 화면 좌측 채팅창에 ‘언더(기준 점수 미만)’, ‘오버(기준 점수 초과)’, ‘역배(역베팅)’ 같은 불법 스포츠 도박 은어가 초 단위로 쏟아졌다. 2회초 첫 타석에 선 LA 다저스 9번 타자 김혜성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채팅창은 아쉬움 대신 환호로 들끓었다. 이 사이트는 불법 무료 중계 사이트로 온라인 도박장에 가까웠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메이저리그 같은 주요 경기를 보려면 한 달에 2만원가량 구독료를 내야 한다. 반면 불법 중계 사이트에서는 무료로 국내외 주요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수 있다. 광고 영상도 없다. 대신 ‘첫 충전 50% 보너스’, ‘당일 손실 페이백’, ‘안전놀이터 보증’ 같은 사설 도박 광고 문구가 화면을 뒤덮고 있다. 무료 스포츠 중계 사이트가 사실상 온라인 도박장으로 유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무료 스포츠 중계 사이트가 도박장 유인책 역할을 하자 정부가 대대적인 차단 조치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음 달 12일 개막하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불법 스포츠 중계 사이트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고 최근 여러 불법 중계 사이트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문체부는 이르면 이달 중 일부 불법 사이트에 대해 긴급 차단 명령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박상훈

그동안 불법 중계 사이트를 차단하려면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했다. 정부가 불법 사이트를 적발해 차단하는 데 통상 2~4주가 걸렸다. 문체부 관계자는 “스포츠 경기는 대체로 몇 시간 만에 끝나 중계에 실시간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단속 효과가 없다”고 했다. 그동안 불법 사이트 차단 조치가 웹툰, 웹소설, 영화, 드라마 등 실시간 대응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콘텐츠에 한정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1일 시행된 개정 저작권법에 따라 이제는 문체부 장관이 긴급 차단을 명령할 수 있게 됐다. 문체부가 차단 대상 사이트를 적발해 문체부 산하 저작권보호심의위원회에 통지하면, 위원회는 5일 이내에 심의·의결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문체부 장관이 즉시 사이트를 차단할 수 있어, 일주일 안팎이면 접속 차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정부가 불법 스포츠 중계 사이트에 칼을 빼 든 것은 무료 중계를 보려다 도박에 빠지는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프로축구(쿠팡플레이)를 시작으로 2024년 프로야구·프로농구(티빙) 온라인 중계가 잇따라 유료 OTT 독점 체제로 전환됐다. 시청료가 부담스러운 10·20대 팬들 사이에선 무료 중계 사이트를 찾는 사람이 늘자 “언제든 무엇이든 무료 시청”을 내건 불법 사이트가 이들을 파고들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스포츠 도박 관련 신고 건수는 1895건(전체의 7%)이었다. 그러나 스포츠 온라인 중계 유료화가 확대된 2023년에는 신고 건수가 9444건으로 증가했고, 프로야구 유료 중계가 본격화한 2024년에는 2만1587건까지 늘었다. 2024년 불법 온라인 카지노(1만8106건)와 기타 온라인 도박(1만746건) 신고 건수를 모두 넘어선 수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모(28)씨는 무료 중계 사이트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를 보다가 도박에 손을 댔다. 중계 사이트가 추천한 사설 온라인 도박장에 80만원을 걸어 한때 220만원까지 불리기도 했지만, 올해 한국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자 며칠 만에 돈을 모두 잃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적발된 불법 스포츠 도박 규모는 4조8574억원이었다. OTT 스포츠 유료 중계가 본격화하기 전인 2020~2022년(3년간) 적발된 도박 규모(2조2857억원)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북중미 월드컵은 네이버에서 전체 경기를 생중계할 예정이지만, 한국 경기를 제외한 경기는 유료로 봐야 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월드컵 때도 무료 중계를 내건 불법 도박 사이트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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