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작업실] (37) 김성훈 회화작가

성승건 2026. 5. 20. 21:2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탐색하다

우연한 발견

우비서 떨어지는 빗물 영감
감각 유도장치로 ‘천’ 활용
평면서 공간으로 작업 확장
현실과 환상 등 ‘사이’ 주제
중첩·교차되는 감각 탐구

새로운 도전

독일 유학서 돌아온 후
창원 소답동에 작업실 마련
개인 넘어 지역 이야기 담아
경남 여성 이주展 준비 중
관객과 소통하는 게 목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 김성훈(45) 작가는 중첩되고 교차하는 ‘사이’를 사유하며 회화로 탐색해 나간다. 커튼처럼 흐르는 천을 따라 감각의 틈을 만들어가는 그를 창원 소답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김성훈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우연이 흐르는 작업실

-작업실 소개를 부탁드린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마련한 첫 작업실인데, 여기서 작업한 지는 6년 정도 됐다. 제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공간이자,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공간에 드로잉과 캔버스 작업이 나란히 걸려 있는데.

△보통 캔버스 작업이랑 드로잉 작업을 같이 시작한다. 캔버스 작업이 마르는 동안 남은 물감을 종이 작업으로 이어가기도 하고, 서로 찍어내면서 작업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화면 안에 생기는 중첩이나 레이어, 흘러내리는 흔적 같은 것들에 집중한다. 그런 느낌이 잘 나왔을 때 작업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드로잉 작업은 최근 작업이긴 하지만 초창기 드로잉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때의 기억을 계속 되뇌면서 작업하고 있는데, 물감을 사용하는 방식이 더해지면서 현재의 캔버스 작업과도 연결되고 있다. 항상 두 작업을 같이 가져가는 이유는 예전 작업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 역시 저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작업실에 붓이 보이지 않는데.

최소한의 의도로 최대한의 우연을 분배해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붓도 빠지게 됐다. 물감을 뿌리거나 흘리고, 찍어내는 최소한의 행위를 통해 최대한 우연에 가까운 방식,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가운데 생겨나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다.

작품 재료들.

◇흐르고 뿌리며 번지는 ‘사이’의 감각

-어떤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나.

△작업의 중심에는 늘 ‘사이’가 존재해 왔다. ‘사이’란 물리적인 간격이 아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환상, 지각과 감정 사이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저는 중첩되고 교차하는 사이를 시각적으로 사유하고 감각적으로 탐색해 나간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의존해 세계를 이해하지만,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경험하는 것은 기억과 관념 등 보이지 않는 것들의 작용을 통해 구성된다. 저는 이 점에 주목해 눈앞의 이미지가 어떻게 해체되고, 어떻게 다른 감각들과 충동해 다시 인식되는지를 회화적으로 질문한다.

김성훈 ‘먹물‘
김성훈 ‘무궁화‘

-‘사이’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풀어내고 있나.

△‘사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형태를 해체하고, 색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선과 선 사이의 틈을 확장한다. 순식간에 퍼붓는 소나기와 창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에 투영된 풍경처럼, 익숙했던 이미지들은 일그러지고 흘러내린다. 이것이 때로는 물감이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는 방식 그대로 표현되고, 때로는 뿌리거나 번지게 함으로써 통제 밖의 우연성과 물질성에 자신을 열어둔다.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 위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것이 다시 ‘사이’의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탐색하는 회화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제 작업은 감각과 인식의 경계 위에서 이뤄지는 사유라고 생각한다.

◇개인에서 외부로 향하는 시선

-천을 작업에 사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독일에 있을 때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지냈다. 늘 우비를 입고 다녔는데, 실기실에 들어오면 젖은 우비를 걸어두는 자리가 있었다. 어느 날 작업실에 앉아 바깥의 비 오는 풍경을 보고 있는데, 우비에서 떨어진 물이 아래로 길게 흘러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걸린 우비에서 물이 떨어져 바닥과 공간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이 상황을 천을 통해 평면에서 공간으로 확장해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작업의 출발이 됐다.

이후 다시 평면 작업으로 돌아오면서 캔버스에 천을 걸어봤는데 자연스럽게 부조식 형태처럼 화면이 만들어졌다. 천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바탕이 아니라 시선을 차단하고 감각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서 작동한다.

김성훈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김성훈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영감은 어디서 얻나.

△예전에는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비나 물웅덩이,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풍경들을 보면서 감각의 흔적에 집중하게 됐다. 독일에 있을 때는 돌풍이 심한 날이 많았는데, 실기실에 앉아 있으면 창밖의 이파리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같은 장면을 봐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감각과 해석은 모두 다르지 않나. 하나의 대상이 각자에게 다른 이미지와 감정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런 감각을 찾기 어려워 고민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계속 예전의 감각에 기대 작업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생겼다. 그 과정에서 시도하게 된 것이 지역의 이야기를 작업 안으로 끌어오는 일이었다. 그 첫 시도가 3·15의거였다. 지난해 김주열 열사를 모티브로 한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작업과 고민이 있다면.

△지금까지는 주로 제 이야기를 중심으로 추상 작업을 해 왔는데, 요즘 가장 많이 고민하는 건 제 바깥에 있는 이야기들, 그러니까 제가 살아가는 지역 이야기를 어떻게 저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기존의 작업 세계를 유지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갈 수 있을지 그 균형점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작업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기존에는 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관객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 그렇다면 ‘본래 제 작업의 의도는 뭘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관람객들이 작품 너머에 있는 대상을 눈으로 보기보다 자기 안의 감각으로 느껴 보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한 무언가를 발견했으면 한다. 정해진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분명한 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고, 타인이 말하는 것 역시 절대적인 답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런 경험들을 계속 마주하다 보니, 결국 제가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오는 11월께 창원지역 전시 공간인 무하유, 스페이스 목, 프로젝트 아이에서 열릴 경남 여성들의 이주와 노동을 주제로 한 전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글= 한유진 기자·사진=성승건 기자

Copyright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