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의 도시 경쟁력

김진해 경성대 명예교수·영화의전당 전 대표이사 2026. 5. 20. 20:1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진해 경성대 명예교수·영화의전당 전 대표이사

부산의 미래를 가르는 것은 항만 물동량이나 제조업 지표만이 아니다. 도시는 이제 “얼마나 살고 싶은가”로 평가받는다. 그 기준의 핵심에 문화가 있다. 세계 유수 도시가 앞다퉈 오페라하우스 미술관 공연장을 짓는 이유다.

오페라하우스 완공을 1년여 앞두고 있다. 개관작 ‘라 보엠’은 단순한 공연 유치가 아니다. 이는 부산이 ‘서울 대체재’가 아니라 ‘독자적 세계도시’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럼에도 일부에서 예산을 이유로 이러한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겉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앞세운 합리적 판단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주장은 도시 발전 구조를 단순화한 시각이다. 문화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는 ‘마중물’ 성격을 지닌다. 물이 흐르지 않는 곳에 수로를 내는 일은 비용이 들지만, 그 흐름이 만들어내는 경제·사회적 파급력은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다.

세계적 공연과 전시는 ‘소비’가 아니라 ‘산업’이다. 오페라 한 편이 가져오는 효과는 티켓 판매에 그치지 않는다. 숙박, 외식, 교통, 관광, 연관 콘텐츠 소비까지 포함한 파급 효과는 지역 경제 전반을 자극한다. 유럽의 주요 문화도시는 오페라와 미술관을 통해 브랜드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관광과 창조 산업을 동시에 키웠다. 부산 역시 영화제를 통해 이미 그 가능성을 증명한 바 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축제는 일시적이지만, 공연장은 상시적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도시 이미지를 끌어올렸다면, 오페라하우스와 미술관은 그 이미지를 일상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문화 인프라는 인구 정책과도 직결된다. 청년과 전문 인력은 일자리만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의 질을 본다. 공연과 전시, 거리의 분위기, 도시의 감성적 밀도가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서울 인구 집중 역시 이러한 문화적 인프라의 차이가 크게 작용했다. 부산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거 정책이나 산업 유치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시 품격을 높이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퐁피두 센터 분관 유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미술관 건립이 아니라, 세계 문화 네트워크에 부산을 연결하는 작업이다. 세계적 기관과의 협업은 지역 예술 생태계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국내외 관람객을 동시에 견인하는 힘을 갖는다. 문화는 ‘자생’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외부와 연결 속에서 비약한다.

예산 문제를 이유로 이러한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하자는 주장은 마치 씨앗을 심는 비용이 아깝다며 숲을 포기하자는 것과 같다. 물론 재정 건전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디에 쓰느냐’다. 단순한 소모성 지출과 미래 수익을 창출하는 투자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오류다.

나아가 문화는 도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형성한다. 시민이 도시를 자랑스럽게 여길 때, 그 도시는 외부에도 매력적이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 유치와 기업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글로벌 기업과 인재는 문화적으로 풍부한 도시를 선호한다. 이는 이미 여러 국제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부산이 계속해서 ‘비교되는 도시’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선택되는 도시’로 도약할 것인가. 문화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그 분기점에 서 있다. 세계적 공연과 전시를 포기하는 것은 단순히 한두 개의 사업을 접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 방향성을 스스로 축소하는 결정이 될 수 있다.


부산은 잠재력을 갖춘 도시다. 바다와 항만, 영화와 축제라는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오페라와 현대미술이라는 축이 더해질 때, 비로소 균형 잡힌 글로벌 문화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후퇴가 아니라, 전략적 전진이다.

문화는 사치가 아니다. 도시의 생존 전략이다. 부산이 그 길 위에 서 있는 지금,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이다.

※외부 필자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