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철 칼럼] 삼성전자 파업전야에 드리운 ‘최태원 발 나비효과’
노조 1인당 6억원 요구에 민심은 이미 등 돌려
독립적 이사회에서 투명한 이익배분 원칙 세워야

| 서울=한스경제 최형철 대기자 |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초유의 총파업 위기에 내몰렸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성과급 수치를 둘러싼 노사 간의 줄다리기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재계 전반에 걸친 보상 체계의 균열과 이를 조율하지 못한 이사회의 기능 부재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발화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사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이 갈등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최태원 SK하이닉스 총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른바 '최태원 발(發)' 나비효과다. 나비효과는 대한민국 재계 전체의 보상 기준을 뒤흔들 폭발성을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해 SK하이닉스 노사는 영업이익의 10%를 임직원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최태원 회장 개인 송사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파격적인 수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실제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라는 더 높은 수치를 제시하며 성과급 상한 폐지까지 요구하는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SK하이닉스 노사의 전례 없는 합의문이 경쟁사 노사 협상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SK하이닉스의 합의가 매출과 이익이라는 '경영 원칙'에서 나온 결단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당시 최 회장은 개인 송사와 잇따른 구설수로 여론이 악화된 상태였다. 노조와의 정면충돌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용된 합의는, 기업의 장기 투자 계획이나 합리적 배분 원칙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제 전문가 이용우 21대 국회의원은 "총수의 개인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이 시장 전체의 기준을 바꿔놓았다"고 일갈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는 최태원발 나비효과가 불러일으킬 '태풍'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정작 태풍이 문 앞에 들이닥치자, 삼성전자 이사회는 "노사 모두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빈축을 샀다. 원칙을 제시하는 대신 결과를 걱정하는 방관자의 언어였다.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의 15%는 경제학적으로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영업이익은 이미 직원들의 급여와 복리후생비가 차감된 후의 숫자다. 자기 몫을 받은 후 채권자, 정부, 주주의 차례에 다시 손을 내미는 구조다. 요구 자체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배분 순서의 논리를 무시한 채 수치만 높이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부에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DS), 가전(DX), 휴대폰을 아우르는 복합체다. DS 부문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전사 성과급을 정률로 지급할 경우, 수익성이 낮은 부서 직원들과의 노노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DS 부문 이익에 치중하자 타 부문 조합원들이 이탈해 이같은 노노 갈등을 방증해주고 있다. 파업 전야에 노조 내부의 균열이 조직 결속력을 갉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사태는 또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사이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소액주주들은 파업이 기업 가치를 훼손한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시사하고, 노동 진영은 주주를 불로소득자로 규정하며 맞선다. 이분법적 전선이 팽팽할수록 기업의 미래는 좁아진다. 출구는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다.

하지만 노조는 현재 연봉의 50%로 묶인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을 300조원으로 가정하면 15%는 45조원이다. 1인당 6억 원에 육박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역대 이런 요구를 하는 노조를 본 적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일부 노동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 부당한 요구를 해서 우리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면 해당 노조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이 쏘아올린 공은 삼성전자의 하늘 위로 날아와 터졌다. 파편은 짙은 먹구름을 머금고 자유 낙하중이다. 영업이익 300조 시대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나눠 먹기식 소모적 싸움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설득과 합의의 큰 틀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사회의 존재 이유이고, '파업'이후 삼성전자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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