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바나나, 라이프치히, 그리고 국립창원대학교
다양성 있어야 지속 가능한 사회

바나나가 멸종 위기라는 말 들어보셨는지요? 상품성 있는 한 품종만 집중해서 키우다 보니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자 모든 바나나가 고사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다양성을 잃은 생태계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효율성만 좇은 결과는 도시에서도 반복됩니다. 독일 라이프치히는 무역, 금융, 학문, 예술이 고루 발달한 복합도시였습니다. 바흐, 슈만, 괴테, 니체가 도시를 빛나게 했지요. 그러나 2차대전 이후 동독 체제에서 도시의 다양성은 훼손되었습니다. 정부가 라이프치히를 기계산업 도시로 바꾸면서 지식 문화가 쇠퇴하고 공장만 남았습니다. 독일 통일과 함께 시장 경쟁이 시작되자 제조업은 붕괴했고, 일자리가 없어지자 시민들은 떠났습니다.
하지만, 라이프치히는 회복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라이프치히 대학이 있었습니다. 오랜 문화적 자산과 저렴한 주거비, 대학 공동체가 결합하면서 지금은 인구 63만 명 중 30%가 청년인 젊은 도시로서 '핫한 치히(Hypezig)'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더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정부는 라이프치히 대학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992년 라이프치히 응용과학대학교를 추가 설립해 학문과 실용이 공존하게 했습니다. 다양성을 줄이지 않고 확장하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국립창원대를 방산, 원전 등 지역 산업 중심 연구기관으로 바꾸겠다는 박완수 도지사 후보의 공약이 바나나 단일 경작, 동독 시절 라이프치히와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은 강력한 성장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과거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특정 산업에만 의존했다가 쇠락한 도시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과거로부터 배울 수는 있습니다. 지금은 후기산업사회입니다. 다원성이 본질이자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대학(University)'의 의미는 '우주(Universe)'와 연결됩니다. 대학은 서로 다른 관점과 학문이 부딪히고 교류하며 예상치 못했던 혁신을 만들어 내는 공간입니다. 이를 특정 산업의 인력 공급 기지로만 규정하는 순간, 대학과 지역의 지적 생태계는 축소됩니다.
지금 경남 경제를 떠받치는 제조업 역시 영원히 호황일 수는 없습니다. 10여 년 전 조선업 위기를 떠올려 봅니다. 기후 위기, 에너지 전환, 국제 정세 등의 위기에서 특정 분야만 강한 지역은 적응력을 잃게 됩니다. 인문학적 상상력, 사회학적 통찰력이 부족한 도시는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정주 여건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실제 경남은 지난 10여 년 동안 전국 최대 청년 유출 지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습니다.
경남의 미래 설계는 획일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국립창원대는 지역 주력 산업 관련 연구도 수행해야 하지만,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상상할 인문·사회·기초과학도 함께 품어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동독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 관점이 소통하며 지속 가능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민주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몰빵'이 아닙니다. 다양성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할 생존 전략입니다. 과학기술 특화 기관이 꼭 필요하다면, 국립창원대를 해체할 것이 아니라 새로 설립하면 됩니다. 라이프치히가 그랬던 것처럼.
/권희경 국립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