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화물연대와 노동존중

지난 4월과 이달, 화물운송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 거리로 나설 때마다 우리 사회 반응은 차가웠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창에는 '이기적인 집단', '불법 파업' 같은 적대적인 언사가 도배됐다. 특히 화물연대의 투쟁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 2·3조)'을 두고 펼쳐지는 논의는 건설적인 대안을 찾기보다는 혐오와 조롱의 언어로 얼룩져 있다. 이 같은 풍경은 법과 제도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결국 '누가 노동자이고, 누가 사용자이며, 어디까지가 책임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향한다. 하지만, 정부와 경영계는 이 질문에 지극히 보수적이고 안일한 태도로 일관해왔다. 오늘날 노동 형태는 과거 공장형 제조업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자성이 배제된 노동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대표적인 예가 화물차 운전기사들이다. 정부는 이들이 실질적인 노동자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상의 사업자 신분을 근거로 노동 3권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용자가 노동 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 앞에서는 '계약 관계일뿐'이라며 뒤로 숨는 구조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노란봉투법 핵심은 △사용자 범위 확대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은 이 같은 책임 없는 권력에 경종을 울리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정부·경영계는 노란봉투법 개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거부권 행사와 원칙론만을 앞세우며 갈등을 키웠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단체행동을 하면 기업은 수십,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화답했다. 정부는 이를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했다. 비극의 근원은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그들을 보호해야 할 법 체계 공백, 즉 노란봉투법의 졸속성이다. 노동자성을 폭넓게 인정하지 않고 사용자 책임을 회피할 구멍을 열어둔 결과가 지금의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면 인명사고는 물론, 지금처럼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멈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부는 이제라도 '노동존중'이라는 기조를 단순히 구호에 그치지 않고 법과 제도에 실질적으로 녹여내야 한다. 노동자성과 사용자성을 시대 흐름에 맞게 폭넓게 인정하고, 쟁의행위를 향한 탄압보다는 대화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누군가 생존을 건 투쟁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지 않아야 한다.
/안지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