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그것만은 기억해도 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친한 가족의 초대로 뮤지컬 한 편을 보게 됐다. 한국과 미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이 뮤지컬(2025년 토니상에서 최우수 뮤지컬상 등을 포함해 6관왕)은 인간을 돕는 헬퍼 로봇들의 사랑 이야기다. 로봇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소재를 들었을 때만 해도 필자는 사실 작품에 대해 큰 기대와 호감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뒤 이 공연은 오래도록 필자의 마음에 깊은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이 작품은 단순히 로봇 이야기가 아니었다. 로봇이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 바로 인간의 존재와 삶(외로움, 기대, 실망, 만남, 동행, 삶의 여러 기억, 깨달음, 상실, 죽음)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이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와 동기가 궁금했다. 작가는 왜 이러한 작품을 쓰게 됐을까.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유한하고 우리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젠가 맞이할 상실까지도 끌어안는 일이다. 결국 인간의 가치는 이러한 현실을 알면서도 끝내 사랑하려는 노력에 있다. 그래서인지 이 뮤지컬의 여러 OST 가운데 다음의 OST 가사가 필자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그것만은 기억해도 돼/화분은 햇볕에 너무 오래 두지 마/밤에 외출할 땐/노란 비옷 꼭 안 입어도 돼/그건 기억해도 돼/그건 잊지 않아도 돼/그것만은 기억해도 돼/종이컵 전화길 사용하는 법/오래된 레코드/지직거리는 따뜻한 소리/그건 기억해도 돼/그건 잊지 않았음 해/다 잊기엔 너무 아까운/눈부시게 예쁜 기억들.”(‘그것만은 기억해도 돼’ OST 중).
‘다 잊기엔 너무 아까운 눈부시게 예쁜 기억들’은 결코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란 비옷, 종이컵 전화기, 오래된 레코드의 지직거리는 소리처럼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들이었다. 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되는 순간, 그것들은 더 이상 ‘나만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추억’으로 변화된다. 바로 그 추억들이 유한한 삶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이유가 돼 준다.
작가는 삶의 끝에서 “너와 함께했기에 꽤 괜찮은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속에는 사랑에 대한 작가의 깊은 신념과 가치가 담겨 있다. 사랑은 상대의 능력이나 조건 및 배경, 이로 인한 물질적인 안정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랑은 상대의 존재와 그 존재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나눴던 시간들, 곧 추억이 쌓여 사랑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가 너무 초라하고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그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한 평범한 일상의 추억들은 한 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내걸 만큼의 사랑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것을 공유하고 있는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무엇을 기억하며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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