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관계맺기’의 두려움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21일 부부의날을 앞두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결혼을 주제로 올라온 글을 조사했다. 2만2095건 가운데 결혼을 행복하게 이야기한 글은 9.3%로 10건 중 1건도 되지 않았다. 결혼을 둘러싼 감정은 ‘두려움’(24.24%)이 가장 많았으며, ‘슬픔’ 비중은 최근 3년 새 9.5%에서 16.1%로 높아졌다. 혼인 건수 반등에 결혼 기피 흐름이 바뀐 것이라며 좋아하기엔, 결혼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불안’이 적잖다.
결혼을 막는 가장 큰 벽은 경제적 문제였다. 많은 젊은이가 월급은 쥐꼬리인데,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양육 부담 등에 짓눌려 결혼을 포기했다. 직장인들의 게시글 절반 이상이 직장·연봉·대출·주거 등 돈 문제인 것만 봐도, 결혼을 꺼리는 배경엔 여전히 경제적 부담이 자리한다. 그런데 이번 조사 결과 젊은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더 늘었다. 소개팅·매칭 앱 활용(9.7%)이나 이성 관계·연애 현황(9.4%) 같은 주제의 비중이 부쩍 높아졌다. 마음에 맞는 상대를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는 문제가 결혼을 앞둔 직장인들의 새로운 고민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어려서부터 무한 경쟁 속에서 홀로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웠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세상에서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갈등을 조율하는 ‘관계의 기술’을 배울 기회는 드물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현실은 <데니스는 통화 중>이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 뉴요커 7명은 직접 만나는 것보다 전화로 소통하는 것이 더 편하다. 스마트폰도 없던 1995년 영화인데, 휴대폰과 메신저로 소통하는 것이 대면보다 익숙한 현세를 예견한 듯해 놀라우면서도 씁쓸하다.
독신의 삶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도 불투명한 미래는 물론이고, 관계맺기에 대한 어려움으로 한탄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 대책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주거·자금 지원 말고도 서로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세밀한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청년들의 속마음도 헤아리지 않은 채 ‘왜 사람을 안 만나느냐’고 성화만 부려선 안 되겠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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