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장대비 뚫고, 가자 도청으로"

박건우 기자 2026. 5. 20. 18:1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일 ‘민주기사의 날’ 기념식
46년 전 5·18 차량 시위 재연
무등경기장~금남로 택시 행진
"불의에 맞선 오월정신 계승"
'5·18 차량 행진' 민주기사의 날제46주년 민주기사의날 기념식이 20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가운데 민주기사동지회 소속 택시기사들이 80년 5월 당시 차량시위 재현에 앞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장대비 속에서도 전조등은 꺼지지 않았다."

20일 오후 3시 30분 광주 북구 임동 무등경기장 일대. 장대비가 쏟아진 도로 위로 택시와 차량들이 하나둘 대열을 맞췄다. 젖은 아스팔트에는 전조등 불빛이 길게 번졌고, 빗소리 사이로 울린 경적은 46년 전 광주 도심을 흔들었던 차량 시위를 떠올리게 했다. 1980년 5월 20일 전남도청을 향해 달렸던 시민 차량 행렬이 이날 다시 금남로로 향했다.

제46주년 민주기사의 날 기념식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차량 시위에 나선 택시·버스 기사들의 연대와 저항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1980년 5월 20일은 계엄군의 폭력 진압에 맞선 시민 저항이 도심 곳곳으로 확산된 날이다. 당시 택시와 버스 등 시민 차량 200여대는 전조등을 밝힌 채 도청으로 향했고, 그 행렬은 항쟁의 흐름을 바꾼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행사는 국민의례와 경과보고, 기념사 등으로 시작됐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행사장에는 5월 단체 관계자와 시민들이 자리를 지켰다. 우산 아래 선 참석자들은 46년 전 택시·버스 기사들이 보여준 시민 연대의 의미를 되새겼다.

양재혁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46년이 지난 지금도 5월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5·18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진상 규명과 행방불명자 문제 등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택시와 버스는 침묵을 강요당한 시대의 움직이는 양심이었다"며 "민주주의는 기념식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침묵하지 않는 용기와 연대가 오늘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5·18 차량 행진' 민주기사의 날제46주년 민주기사의날 기념식이 20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가운데 민주기사동지회 소속 택시기사들이 80년 5월 당시 차량시위 재현에 앞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기념식이 끝나자 차량 행진이 시작됐다. 참가 차량들은 전조등을 켠 채 무등경기장 일대를 출발해 금남로 방향으로 이동했다. 차량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천천히 도심을 통과했고, 간간이 울린 경적은 행렬의 시작과 연대를 알리는 신호처럼 이어졌다.

도로 주변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일부 시민은 휴대전화로 행진 장면을 기록했고, 몇몇은 빗속에서도 한동안 차량 행렬을 바라봤다. 한 시민은 "그때는 목숨을 걸고 켰던 불빛이었을 것"이라며 "오늘 다시 보니 5월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행렬은 금남로를 지나 옛 전남도청 일대에서 마무리됐다. 옛 전남도청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최후 항쟁지이자 광주의 상징적 공간이다. 차량들이 도청 앞에 도착하자 참가자들은 46년 전 광주 시민들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새겼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재연을 넘어 세대가 함께 오월을 기억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1980년의 장면을 직접 겪은 세대에게는 기억의 확인이었고, 젊은 세대에게는 기록으로만 접했던 역사를 눈앞에서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행사 관계자는 "민주기사의 날은 평범한 시민들이 불의에 맞서 연대의 힘을 보여준 날"이라며 "그날의 용기와 오월정신을 오늘의 시민들과 함께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박건우 기자 pgw@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