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우주의 생명 담은 사찰음식…내 몸 맞는 식재료가 진짜 약이죠” [이사람]

“부모님께 가장 큰 효도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가를 하게 됐습니다.”
사찰음식 명장으로 널리 알려진 선재 스님은 수행자의 길을 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뜻밖에도 ‘효(孝)’를 이야기했다. 흔히 세속의 고통과 좌절 끝에 출가를 결심했을 것이라는 통념과 달랐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경기도 양평군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선재 스님은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25세 때 출가
청소년들과 생활하며 음식 의미 깨달아
선재 스님은 1980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출가했다. 당시만 해도 적지 않은 나이였다.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생 때 친구 집에 갔는데 부모와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고등학교 3학년 때 경기도 수원 용주사에서 들은 ‘부모은중경’ 강의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았음을 깨달았다”는 그는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효도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스님이 효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하셨어요. 좋은 음식과 옷, 용돈을 드리는 것은 가장 낮은 효도이고, 부모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는 게 중간의 효도, 부모가 집착을 내려놓고 평화롭게 살도록 해드리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하셨죠. 그 말을 듣자마자 출가를 결심했어요.”
하지만 부모의 반대는 거셌다. 어머니는 “부모가 없니, 돈이 없니, 실연을 당했니, 왜 출가를 하느냐”고 만류했다. 그는 부모의 허락도 받지 못하고 떠나면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하겠냐는 생각에 5년을 기다렸다. 결국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출가를 했다.
선재 스님과 음식의 인연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궁중 수라간에서 궁녀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외할머니가 만들어준 궁중음식과 사찰음식을 어릴 때부터 접했고 음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들었다. 의술을 배워 동네 사람들을 치료해주던 아버지로부터는 민간요법과 음식으로 몸을 치유하는 방법을 배웠다.
출가 후에는 청소년 선도 활동에 뛰어들면서 음식의 의미를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했다. 선재 스님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이 절에서 생활하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소문이 나자 인근 학교는 물론 전국 교육청에서 학생들을 보내올 정도였다.
“떡볶이를 같이 만들면서 아이들에게 물었어요. 왜 우리는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떡을 먹을까. 쌀은 그대로 있으면 흩어지지만 떡으로 만들면 하나가 되잖아요.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라는 뜻에서 떡을 만든다고 설명했지요.”
갑작스런 간경화 판정 ‘1년 시한부’ 선고
간장 등 발효식품 통해 기적처럼 회복
밤낮 없는 돌봄은 결국 몸을 무너뜨렸다. 1990년대 초 그는 간경화 판정을 받았다. 손바닥과 발바닥이 노래지고 10분 거리도 세 번을 쉬면서 걸어야 했다. 의사로부터 1년밖에 못 산다는 말을 들었다. 선재 스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골로 들어갔다. 직접 농사를 짓고 기도하며 자신의 몸에 맞는 음식을 연구했다. 열이 많은 체질이라 인삼 같은 음식을 멀리하고 좋아하던 밀가루 음식과 아이스크림도 끊었다. 대신 간장과 된장·감식초·현미식초·조청 같은 발효된 전통 식품을 꾸준히 먹었다.
1년 뒤 그는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다. 이후 사찰음식 연구에 몰두했다. 선재 스님은 “그때 모든 음식은 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음식을 통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기 위해 사찰음식을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삼았다”고 말했다.
선재 스님이 강조하는 사찰음식의 핵심은 ‘발효’다. 김치·된장·간장 같은 발효 음식이 몸과 마음을 살린다는 것이다. 그가 간경화를 이겨낸 데도 큰스님이 전해준 오래된 간장을 물에 타 먹은 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서양 사람들은 채소를 날로 먹거나 식초에 절여 먹지만 우리는 장에 무치거나 발효를 해서 먹죠. 발효 과정에서 중금속과 독성도 중화시켜 줍니다. 우리 전통 장 문화에 담긴 지혜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선재 스님은 불교에서 음식은 ‘수행’이라고 했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는 매개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행복하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갖춰야 한다”며 “사찰음식은 그런 요소를 모두 담고 있는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사찰음식을 “온 우주의 생명을 담은 음식”이라고 표현했다. 음식 한 그릇에 땅과 물·바람·햇빛의 기운, 농부의 마음과 손길, 요리하는 이의 정성이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온 우주의 생명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사찰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사찰음식의 출발점은 자연이다. 그는 “좋은 음식은 좋은 식재료에서 시작되고, 좋은 식재료는 맑은 땅과 물·공기·햇빛에서 나온다”며 “오염된 환경에서 자란 식물은 병들 수밖에 없고 그것을 먹은 사람도 병들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아무 데서나 물을 마실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을 사 먹는다”며 “이제는 공기까지 사 먹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으로는 “음식을 배우러 온 사람이 인생을 배워간다고 했을 때”를 꼽았다. 특히 요리사들이 음식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한 요리사는 음식의 맛과 모양만 고민하다가 제 강의를 듣고 식재료와 자연·농부에게 감사하며 먹는 사람에게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며 미소 지었다.
설탕 대신 조청, 당근에도 천연의 단맛
김치국물에 밥만 먹더라도 아침밥 필수
요즘 젊은 세대의 식습관에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특히 지나치게 단맛을 선호하는 현상을 우려했다. 그는 “요즘은 모든 음식이 달다”며 “단맛은 빠르게 흡수되면서 사람을 더 조급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맛이 필요할 때는 설탕 대신 천연의 단맛을 찾으라고 권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단맛은 우리의 조청이라고 생각해요. 조청은 쌀이나 보리의 싹을 틔워 만든 엿기름을 발효시켜 만듭니다. 발효가 됐기 때문에 쌀도 삭혀주고 떡도 삭혀줘 소화가 잘 됩니다.”
그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감염됐을 때 영양 보충을 위해 만들어 먹은 당근 국수도 자연의 단맛을 끌어낸 음식이다. 그는 “당근을 많이 볶으면 설탕을 하나도 안 넣어도 달고 맛있는 국수를 만들 수 있다”며 “설탕을 먹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다른 천연의 단맛이 생각나게 된다”고 말했다. 요즘 산에 활짝 핀 아카시아꽃을 따서 전을 부쳐 먹어도 천연의 단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현대인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식습관으로는 ‘아침밥 먹기’를 꼽았다. 그는 평소 밥과 김치로 아침 식사를 한다고 했다. “요즘 바쁘다고 아침을 거르는 사람이 많은데 아침은 꼭 먹어야 해요. 김치 국물에 밥만 말아 먹어도 됩니다. 아침을 먹어야 뇌가 제대로 활동해요. 옛 스님들은 아침을 안 먹는 게으른 사람은 수행도 제대로 못 한다고 했어요.”
젊은세대 관심 커지고 편안함 느끼는 듯
선재 스님의 음식을 어디에서 먹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각자가 자신의 손으로 해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내 몸에 맞는 식재료와 양념을 알고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며 “요리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음식이 나에게 중요한지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면서도 평생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만드는 음식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생각한다”며 “진짜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고 먹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에 대해서는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매이는 것을 싫어한다”며 “불교는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깨닫는 종교이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She is… △1956년 수원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1999~2009년 동국대 사범대학 겸임교수 △2016년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음식 명장 1호’ 지정 △2018~2021년 한식진흥원 이사장 △2019년 보관문화훈장 수훈 △1995년~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장
이재용 선임기자 jy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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