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레터’ 이규형의 확신 [인터뷰]

한서율 기자 2026. 5. 2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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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

[티브이데일리 한서율 기자] 그의 시간은 무대 위에서 켜켜이 쌓여 하나의 역사가 됐다. 누군가는 그를 매체 속 화려한 스타로 기억하지만, 그가 서 있는 곳은 언제나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연습실과 뜨거운 조명이 내리쬐는 무대였다. 10년이라는 세월을 관통하며 한 작품을 지켜온 배우 이규형의 모습에는 여유와 확신이 묻어났다.

지난 2016년 첫 막을 올린 뒤 올해까지 명맥을 이어온 뮤지컬 ‘팬레터’(연출 김태형)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당대 문인들의 모임이었던 구인회의 실제 일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팩션 작품이다. 극은 천재 소설가 김해진, 작가 지망생 정세훈, 묘령의 여인 히카루를 주축으로 예술가들의 고뇌와 사랑을 그려냈다. 이 가운데 이규형은 다시금 김해진 역을 맡아 섬세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이규형에게 ‘팬레터’는 배우 인생의 변곡점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는 “사실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몰랐다”라며 “한창 바쁠 때도 드라마, 영화와 병행하며 놓지 않았던 극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신원호 감독님께서도 이 작품 속 제 모습을 보고 오디션에 불러주셨다. 저에게는 연기하는 즐거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같은 인물을 연기해 왔지만, 그에게 지루함이란 없었다. 이규형은 “초연 때는 대본에만 의존했다면, 인물의 과거사와 숨겨진 역사를 찾아보며 깊이를 더했다”라며 “요즘은 AI 기술 덕분에 당시 문인들의 복잡한 관계도 수월하게 찾을 수 있어 캐릭터 해석에 큰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매 시즌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규형


초연부터 다섯 번째 시즌까지 ‘팬레터’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이규형은 남다른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공연이 없는 기간에도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제작진에게 수시로 전달하며 극의 재미를 높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규형은 “관객분들이 이미 많은 정보를 알고 계시기에 새롭게 찾은 정보들을 녹여내면 또 다른 관계성으로 오는 색다름이 있지 않겠나”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한층 입체적으로 변했다. 때로는 죽기 전 세상에 작품을 남기겠다는 강렬한 의지에 집중했고, 어떤 날은 사랑에 목마른 인간적인 면모에 주안점을 두기도 했다. 이러한 탐구 끝에 이규형은 캐릭터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결국 천재 문인으로서 이름을 남기려는 절실함이 해진의 본질임을 깨달았다”라며 “이제는 내가 무대 위에서 하는 모든 표현이 곧 이 인물의 고민과 희로애락이라는 확신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10년의 역사를 쌓은 ‘팬레터’는 소극장에서 시작해 대극장까지 그 규모를 키워왔다. 다만 이규형은 무대의 크기는 달라졌을지라도 극의 고유한 감동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극장의 크기가 달라질수록 연기도 달라진다. 움직임, 눈빛 등 연기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대극장에서 놓치기 쉬운 사소한 표현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관객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는 지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라고 짚었다.

‘팬레터’는 단순히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라 해외로 판권이 수출되며 세계 무대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만에서 열린 공연은 2000석이라는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매진을 기록했으며, 일본에서는 한국의 아픈 역사를 다룬 내용임에도 라이선스 공연이 열릴 만큼 큰 관심을 받았다. 이규형은 “국적을 떠나 관객들이 극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라며 “해외 관객분들이 그 감동을 잊지 못해 다시 보러 오시는 것을 보며 ‘팬레터’가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이규형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팬레터’는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규형은 “‘팬레터’가 뮤지컬을 넘어 드라마 혹은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더라. 이 매력적인 시대를 시리즈물이나 뮤지컬 영화로 만든다면 정말 멋질 것 같지 않나”라면서도 “만약 제가 김해진 역으로 출연하지 않는다면 아쉬워서 못 볼 것 같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나의 캐릭터로 1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이규형에게 ‘팬레터’는 이제 몸에 꼭 맞는 옷과 같다. 그는 “이제 이 작품이 대중성까지 갖춘 작품이 된 것 같다”라며 “해외로 역수출되는 자랑스러운 우리 작품인 만큼 아직 못 보신 분들도 꼭 무대의 매력을 느껴보셨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팬레터'로 해외 시장의 가능성을 본 이규형은 한국 공연 시장의 확장에도 기대감을 품고 있다. 단순히 국내 공연의 판권을 해외에 수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외 관객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연스럽게 공연장을 찾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규형은 “여행객들이 단순히 유명한 장소만 구경하는 게 아니라 공연 예술만의 재미를 꼭 경험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티브이데일리 한서율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라이브]

이규형 | 팬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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