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채금리 급등 부른 물가·금리 불안… 글로벌 경제 리스크 급부상
美 연내 금리인상 확률 56% 1주일새 20%p ↑
중동발 인플레로 금리 인상 예정된 수순 분석
기업·정부·가계 지출 축소 경기 후퇴 우려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금융위기 직전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긴장 국면에 들어섰다.
중동 전쟁발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재가속 우려가 맞물리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가 사실상 사라진 데 이어 오히려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영국·한국 등 주요국 국채 금리도 동반 상승하면서 글로벌 경제 전반에 차입 비용 부담과 성장 둔화 우려가 빠르게 확산하는 모습이다.
19일(현지시간) 미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한때 5.20%까지 치솟으며 2007년 7월 이후 약 19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채권시장의 기준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 역시 한때 4.69%까지 오르며 올해 1월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특히 지표 역할을 하는 10년물 금리가 지난 15일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4.5% 선을 돌파한 이후 상승 흐름이 가팔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날 대규모 블록 매도가 국채 가격 하락과 금리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금융시장에서는 한 시간 동안 10건 안팎의 대형 블록딜이 쏟아졌고, 10년물 현물 기준 약 23조원 규모 물량이 시장에 출회되면서 매도 압력이 증폭됐다는 평가다. 국채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만큼 투매 양상이 나타나며 장기 금리 급등세가 강화됐다는 분석이다.
국채 금리 급등은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18일 2.8%까지 오르며 약 30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영국 10년물 국채 금리 역시 5.18%까지 상승하며 수십 년 만의 고점을 나타냈다. 한국 국채 10년물 금리도 최근 4% 초반대를 유지하며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세계 주요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장기 금리가 치솟는 배경에는 물가 불안과 재정 확대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시장을 뒤흔든 핵심 변수는 중동발 고유가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국제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세계 원유·석유제품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충격이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에너지발 물가 상승이 단기 충격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4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8% 상승해 2023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상승률 2.4%와 비교하면 물가 압력이 급격히 확대된 셈이다.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 역시 2.8% 상승하며 연준 목표치인 2%를 여전히 크게 웃돌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다시 긴축 압박을 받을 가능성을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 시장은 오는 12월까지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상할 가능성을 41.4%로 반영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금리 인상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 수준이었다. 최근 일주일 사이 연내 금리 인상 확률이 약 20%p 급등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금리 인하 기대는 사실상 사라졌고, 금리 동결 전망도 약화되는 분위기다.
22일 취임하는 차기 연준 의장 케빈 워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워시는 인준 청문회에서 연준 독립성을 강조하며 정치권 요구가 아니라 연준의 판단에 따라 통화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소시에테제네랄 아메리카스의 수바드라 라자파 미국 리서치 총괄은 “워시 내정자는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하는 시기에 연준에 합류하게 됐다”며 “시장과 연준 내부 모두에서 비둘기파적 접근에 대한 도전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2021~2022년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오판했다가 뒤늦게 공격적 금리 인상에 나섰던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워시 역시 당시 연준 대응을 “정책 오류”라고 비판했던 인물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중동발 물가 상승을 연준이 다시 “일시적”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국채 금리 급등은 미국 정부와 기업, 가계 전반에 차입 비용 부담을 높이며 경제 성장 둔화 압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연방정부는 순이자 비용으로만 9700억달러를 지출했다. 장기 금리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최근 미국 증시를 이끌어온 빅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대를 위해 대규모 자본지출(CAPEX)을 이어가고 있는데, 상당 부분을 회사채 발행 등 외부 차입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 금리 상승은 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져 AI 투자 확대 흐름을 둔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사모대출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온 중소기업들은 금리 상승기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물경제 둔화 신호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4월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5% 증가하는 데 그쳐 3월 증가율 1.6%에서 크게 둔화했다. 같은 기간 CPI가 전월 대비 0.6% 상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 소비는 사실상 감소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국 경제의 핵심 축인 소비가 고유가와 금리 부담 속에 약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중국과 일본 등 주요 해외 투자자들의 미 국채 보유 축소 움직임도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최근 공개된 미국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은 3월 미 국채 보유 규모를 대폭 줄였으며, 시장에서는 환율 방어 목적의 달러 매도와 국채 처분이 동시에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국인의 미 국채 보유액은 한 달 새 약 209조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채권 수요 기반이 약화할 경우 미 국채 금리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경기 둔화가 본격화할 경우 연준이 결국 다시 통화완화 정책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성명을 통해 “지정학적 긴장과 전쟁, 에너지 가격 변동성, 무역 불확실성, 막대한 재정 적자, 자산 가격 상승 등 점점 더 복잡해지는 위험 요소들이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아직은 소비와 기업 지출 덕분에 회복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결국 시장은 지금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인플레이션 재확산과 경기 둔화 가능성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가능성까지 경계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장기금리 급등이 채권시장 변동성을 넘어 세계 경제 전반의 구조적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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