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 “종이 신분증에도 뚫렸다”…대구 전자담배 무인매장, 청소년 접근 ‘무방비’

◆허술한 성인 인증
최근 개정된 담배 관련 법은 액상형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처럼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고 그림 및 문구 표시, 금연구역 규제, 담배 소매인 지정 등의 의무가 적용된다. 하지만 무인매장이라는 특수한 유통구조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다.
대구시내 번화가를 중심으로 운영 중인 일부 전자담배 무인매장에서는 성인 인증 절차가 사실상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판기 화면에는 신분증 스캔, 휴대전화 인증, 모바일 신분증, 간편 인증 앱 등 다양한 방식이 제시되지만, 실제 인증 과정은 허술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구일보 취재 결과, 일부 무인판매기는 신분증의 진위를 판별하는 기능이 미흡해 원본이 아닌 복사본이나 이미지 파일로도 인증이 통과되는 사례가 확인됐다. 종이에 출력한 신분증을 인식시키는 것만으로도 별다른 제약 없이 결제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 사실상 '기계만 통과하면 구매 가능'한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같은 허점은 청소년 접근 차단장치를 무력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타인의 신분증을 촬영한 이미지나 단순 복사본 만으로도 인증이 가능할 경우, 미성년자도 손쉽게 전자담배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모바일기기를 활용한 이미지 공유가 쉬워지면서 이러한 방식의 우회 구매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무인매장 특성상 상주하는 인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를 키운다. 일반 담배 판매점에서는 점주나 직원이 직접 신분증을 확인하고 의심 상황에 대응할 수 있지만, 무인매장에서는 모든 판단이 기계에 맡겨진다. 기술적 한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람의 개입이 완전히 배제되면 관리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대부분의 무인매장은 출입 자체를 제한하지 않아 청소년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무인매장 내부에 음료나 간편식 자판기가 함께 설치된 경우도 있어, 자연스럽게 청소년 유입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형성돼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환경이 청소년 흡연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자담배는 냄새와 연기가 적어 상대적으로 덜 해롭다는 인식이 퍼져 있고, 외형적으로도 기기 형태가 다양해 호기심을 자극하기 쉽다. 접근성이 높아지면 단순 호기심이 실제 사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는 설명이다.

◆기초지자체별 다른 허가 기준
전자담배 무인판매를 둘러싼 또 다른 문제는 기초자치단체별로 서로 다른 허가 기준이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구·군마다 판단이 달라 업주와 시민 모두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에서는 전자담배 무인매장이 중구에 가장 많이 밀집해 있고, 달서구에도 상당수 분포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동성로 등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무인점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접근성이 높은 입지 특성상 청소년 노출 가능성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이를 통제할 통일된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현재 대구지역 기초지자체 가운데 담배 무인판매를 명확히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조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담배 소매인 지정과 관련한 세부 기준 역시 자치단체별 판단에 맡겨져 있어 행정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가운데 달서구는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달서구는 청소년보호법을 근거로 전자담배 무인판매는 본질적으로 본인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관련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달서구 관계자는 "청소년 유해물질인 담배를 판매할 때는 반드시 나이와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무인자판기 형태로는 이를 충족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률 자문을 거쳐 내부적으로 전자담배 무인판매는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관련 신청은 모두 반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유인점포는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허가를 내주고 있지만, 무인점포는 구조적으로 관리가 어렵다"며 "청소년 보호 측면에서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러한 방침이 다른 지역과 충돌하면서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무인매장이 계속 운영되고 있어 "같은 대구인데, 왜 특정 구만 규제가 엄격하냐"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달서구에도 전자담배 무인매장이 존재하지만, 이들 점포는 정식으로 담배 소매인 지정을 받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달서구는 해당 점포들에 대해 관련 법 적용 여부와 위법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며, 필요 시 행정조치도 검토할 방침이다.
이처럼 동일한 법 체계 아래에서도 지자체별 해석과 적용이 달라지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정부 차원의 법 개정이 이뤄졌음에도, 무인판매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부족해 현장에서는 '지자체 재량'에 의존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규제 회피를 노린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규제가 느슨한 지역으로 업소가 몰리면서 특정 지역에만 부담이 집중되거나, 관리 사각지대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보건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면 단속과 관리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무인판매 허용 여부, 성인 인증기술 기준 등을 국가 차원에서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 보호라는 공통 목표를 고려하면, 최소한의 통일된 기준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현재와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제도는 존재하지만,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종민 기자 jmkwo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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