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 포기않는 결점투성이 중년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5. 2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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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대, 이혼, 여성, 이런 웹툰 주인공은 없었다
엄마인가, 여자인가…날것 그대로 그린 사랑과 욕망

50대 이혼 여성은 오랫동안 한국 대중서사 안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억척스럽고 희화화된 중년 여성으로 소비되어왔다. 그런데 지금 네이버웹툰에는 그 ‘중년 여성’을 이야기의 한복판에 세워놓은 작품이 있다.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이혼한 지 한 달 된 여성 송이연. 변변한 경력도 없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지만, 동시에 사랑과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주눅 들고 흔들리면서도 무자비한 세상을 묵묵히 통과해나간다.

웹툰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의 인유유 작가는 자신이 거창한 문제의식을 내세우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그전에 없었기 때문에 자리가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빈자리 덕분에 한국 웹툰은 보기 드문 여성 서사를 만나게 됐다.

지난 4월 ‘올해의 여성만화가상’을 수상한 인유유 작가를 e메일로 만났다. 그는 “커피와 산책을 좋아하고 최근에는 뒤늦게 한자 공부를 하고 있다”며 담담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인터뷰 내내 “즐거운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그보다 훨씬 뜨겁다. “엄마를 처음으로 한 명의 여성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댓글부터 “송이연 때문에 혈압 오른다”는 반응까지, 매주 댓글창은 격렬하게 들끓는다.

작품 속 송이연은 흔한 ‘응원형 주인공’이 아니다.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손녀 돌보기를 소홀히 하고, 욕망 앞에서 비겁해지기도 한다. 독자들은 그를 답답해하고 때로는 “중년 남미새 같다”고 비난한다. 그런데도 작품을 떠나지 못한다. 송이연이 지나치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인유유 작가는 “이 만화를 중년 ‘연애’물로 보느냐, ‘중년’ 연애물로 보느냐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은 후자에 가깝다고 했다.

“스토리 전개상 주인공의 욕망, 사랑, 분노, 연민 같은 감정들이 들끓어야 이야기가 움직일 수 있어요. 그렇다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고요. 사회가 가진 편견이나 적나라한 시선도 같이 들고 가고 싶었습니다. 단맛만 있는 것보다 단짠이 맛있는 것처럼요. 조금 씁쓸해야 더 맛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중년 여성의 생활감과 수치심, 가족의 굴레와 뒤늦은 욕망까지 함께 끌어안는다. 작가는 “자아 회복이 마냥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이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은 말로 들으면 멋있지만, 이미 다친 사람은 이전처럼 기능할 수 없거든요. 더 실수하고 더 슬퍼하게 되죠. 특히 중년쯤 되면 가족, 직장, 인간관계처럼 물릴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자아를 찾아야 하니까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럼에도 또 나아가는 게 사람이죠.”

인생의 절반을 건너온 송이연은 완벽하게 성장하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는 비굴하고, 어떤 순간에는 욕망에 휩쓸린다. 독자 입장에서는 ‘지팔지꼰’처럼 보이는 장면도 많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한국 대중문화 속 여성 캐릭터는 오랫동안 성녀이거나 악녀여야 했다. 인유유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평범하고 복잡한 중년 여성을 그린다. 작가는 송이연에 대해 “주변에서 느끼는 ‘내 엄마’ 같은 이미지를 넣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웹툰 <송이연 30살, 이혼 한 달 차> 캡처

“엄마 하면 희생적이고 사랑 넘치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서툴고 소녀 같기도 하고 동시에 용감하지만 짜증 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 인간적인 부분이 좋았어요.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귀동냥도 많이 하고 인터넷 글도 자주 봅니다. 제 어머니나 살아오며 만난 중년 여성들에 대한 제 시선과 편견도 많이 녹아 있고요.”

작품 속에는 유독 ‘돈’과 ‘수치심’의 감각이 현실적으로 등장한다. 비싼 과일을 사본 적 없어 선뜻 집지 못하는 장면, 주식으로 돈을 벌고 “노동이 아니라 내가 똑똑해서 번 돈 같아 더 좋았다”고 느끼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특히 눈에 띄는 건 50대 여성의 욕망과 성애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중년 여성의 욕망은 종종 우스꽝스럽거나 민망한 것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작가는 욕망이 특정 세대의 특권은 아니라고 말했다.

“성애는 젊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세대에 존재하는 인간의 특성이잖아요.”

창원과 김해를 배경으로 한 지역성도 작품의 중요한 축이다. 사투리와 오래된 미용실 풍경, 콩잎장아찌 같은 음식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수도권 중심 콘텐츠에서는 보기 드문 생활감이다.

“웹툰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감각이라 나름의 킥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가 실제로 살아본 지역이라 익숙하기도 했고요.”

작가는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거창하게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몰라서 시도하지 못하는 감각”이라는 보편성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송이연은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고 영어를 어려워한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에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여성 캐릭터들의 밀도다. 딸들, 동창들, 미용실 손님들, 불륜 상대의 아내들까지 각자의 욕망과 결핍을 가진 여성들이 촘촘하게 등장한다. 특히 둘째 딸 유현은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냉정하고 거리감 있는 태도 때문에 “차녀의 현실 같다”는 반응도 많았다.

사실 처음부터 자식들 이야기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인유유 작가는 “원래는 송이연 단독 질주에 가까운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담당자의 제안으로 자식들의 서사를 확장했고, 결과적으로 작품은 훨씬 풍부해졌다. 그는 특히 2부 33화를 “꼭 그리고 싶었던 장면”으로 꼽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폭력성과 감정의 혼돈이 극대화되는 회차다.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나는 감각, 가해자와 피해자, 부모와 자식 사이에 곪아 있던 감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작가는 작품을 그리며 자주 운다고 했다.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은 1부 17화였다.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 캡처

“송이연이 자기 자신을 연민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객관화를 하는 장면인데요. 인간이 잘못된 굴레를 끊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그리다 보니 눈물이 많이 났어요.”

독자들도 작품에 깊게 감정 이입한다. 댓글창에는 자신의 상처와 가족사를 털어놓는 독자들이 많다. 작가는 “그 댓글들을 보며 사람들의 선의를 강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상처를 말하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에 위로를 남겨주는 건 더 어려운 일이잖아요. 정말 존경스러워요.”

<송이연 50살, 이혼 한 달 차>는 단순한 웹툰을 넘어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고 위로하는 공간처럼 기능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과거의 자신을 본다. 또 누군가는 송이연을 욕하면서도 끝내 작품을 떠나지 못한다.

독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으냐는 물음에 인유유 작가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저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독자들이 느낀 건 이미 그들 안에 있던 질문이겠죠. 저는 그저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만화일 뿐입니다.”

총 3부로 예정된 웹툰의 2부가 지난 14일 끝났다. 그 ‘우연히 지나가던 만화’는 지금 한국 대중문화에서 보기 드문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중년 여성의 욕망과 실패, 생존과 수치심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이야기.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제껏 주인공이 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던 50대 여성 송이연이 있다.

▼ 장회정 기자 longcut@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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