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구겐하임상' 페글렌 "AI시대, 진짜를 찾는 방식이 달라졌다"

김연숙 2026. 5. 2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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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를 거르는 게 아니라 진짜를 찾는 시대"
"세상보는 방식 탐구하는 게 내 역할…미래 기술 전제로 작업"
"AI가 우리를 환각 상태 이끌어…겉모습만 통제하면 현실 자체도 통제"
2026년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인 미디어 아티스트 트레버 페글렌이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연합뉴스 등과 인터뷰하고 있다. [LG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태평양 바닷속 인터넷 케이블을 추적하고, 정체불명의 군사위성을 관측하며, 인공지능(AI)이 인간 얼굴에 붙이는 편향된 라벨을 해부해 온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트레버 페글렌(52).

페글렌은 기술을 단순히 도구로 보지 않는다. 기술은 인간이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재구성하는 권력 구조라고 그는 규정한다.

올해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인 그를 지난 14일(현지시간)과 18일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인터뷰와 강연 등을 통해 만났다.

페글렌은 자신을 '예술가'로 정의하지만, 그의 작업 방식은 끈질긴 '연구자'에 가깝다. UC버클리에서 지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미적 감각에 의존하기보다 철저한 조사와 데이터 분석, 현장 추적을 기반으로 작업을 설계해왔다. LG는 그를 수상자로 선정하며 "비판적 탐구와 공적 책임에 대한 헌신"을 강조했다.

페글렌은 예술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세상을 보는 법을 익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는 우리가 사는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배우는 일"이라며 "현재를 어떻게 보고, 어떤 대안적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지를 탐구하는 일"이라고 했다.

페글렌의 작업은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 영상, 글, 퍼포먼스, 강연을 넘나들며 동일한 질문을 반복한다.

19일엔 신간 '기계처럼 보는 법'(How to See Like a Machine)을 출간했다. 디지털카메라와 알고리즘이 인간의 시각을 어떻게 대체하고 지배하는지를 풀어낸 책이다.

그의 대표작인 '이미지넷의 얼굴들'(2019년)은 AI 학습 데이터 세트의 구조적 편향을 드러낸 프로젝트다. AI가 인간의 얼굴을 어떻게 분류하고 라벨링하는지 대중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온라인 앱과 전시를 선보였는데, 평범한 사람의 사진을 두고 AI는 '낙태론자', '악당', '이혼녀', '비밀경찰' 등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향된 라벨을 붙였다.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기술 발전을 쫓아가는 법을 묻자 그는 "어시스턴트들과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작업 방식을 공유하며 속도를 맞추고 있다"며 이 초고속 성장이 작업 방식마저 바꿨다고 답했다.

그는 "내년에 공개할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데, 머릿속 아이디어를 당장 오늘 기술로는 실행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6개월 뒤에는 기술이 그 수준까지 발전할 것'이라 확신하며 미래의 기술을 미리 상상하고 작품을 설계한다"고 답했다. 그는 "아티스트로서 참 기묘한(weird) 방식"이라며 웃었다.

페글렌은 자신의 작품을 언어로 풀어내는 데에도 상당히 신중하고 진지했다. 질문마다 명확한 언어로 설명을 이어가며 자신의 작업과 세계관을 집요하게 언어화하고자 했다.

2026년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인 미디어 아티스트 트레버 페글렌이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중강연 후 패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LG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최근 15년간 인류가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식에 두 번의 전환점을 거쳤다고 진단했다. 스스로 세계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컴퓨터 비전'과 생성형 AI의 등장이 그것이다.

특히 AI가 만들어내는 '환각'(hallucination)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제안했다. 단순히 AI가 허위 정보를 만들어내는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AI가 인간의 현실 인식 자체를 흔들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페글렌은 강연에서 "문제는 AI가 어떻게 환각을 일으키느냐가 아니라, AI가 어떻게 우리를 환각 상태로 이끄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이란전쟁 관련 정보를 소셜미디어로 따라가던 중, 자신 역시 정보 인식 방법이 달라졌음을 체감했다고 털어놨다.

과거에는 허위 정보나 조작된 콘텐츠를 '가려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무엇이 거짓인지보다 무엇이 '실재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그는 "현실이 점점 조작되고, 위조된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라며 "매우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페글렌은 인간이 이러한 기술적 환각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에 대해 "AI 시스템이 인간의 논리적 이성(대뇌피질)이 아니라 원초적인 '파충류 뇌'(lizard brain)를 공략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고리즘이 인간의 공포, 분노, 도파민 같은 원초적 본능을 자극해 이성적 판단을 무력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겉모습(이미지)만 통제할 수 있다면 현실 그 자체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래된 환상이 AI 기술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며 과거 군대의 은밀한 심리전 메커니즘이 이제는 기술을 통해 전 지구적 규모로 자동화됐다고 경고했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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