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버스로 힐링하고 서울달에 심쿵 [여담:旅談]

단돈 3000원으로 물살 가르는 한강버스 유람기 잠실 선착장 ‘치킨 토크’로 나눈 안전과 노선의 비화 파리 올림픽 성화대의 감동을 품은 130m 상공 서울달 하늘 위 달달한 생일 선물과 황홀한 도심 스카이라인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다. 구글 캘린더에 빨간색까지 쳐가며 초여름의 완벽한 하루를 계획했다. 바야흐로 신록이 푸르러지고 선선한 바람이 뺨을 스치는 5월. 평생을 ‘호모 세덴스(Homo Sedens, 누워 있거나 앉아만 있는 인간)’의 숭고한 철학으로 살아온 나에게 “밖으로 나가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졌다. 강으로 갈까, 하늘로 갈까. 짬뽕이냐 짜장면이냐. 물냉이냐 비냉이냐. 강으로 가자니 구름이 울고, 하늘로 가자니 물결이 눈에 밟혔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질문에는 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헤일메리호를 탄 그레이스 박사처럼, 나는 결국 가장 우아하고 역동적인 답안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내 무거운 엉덩이를 의탁한 채 한강과 스카이라인을 모두 지배할 수 있는 코스. 바로 한강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한강버스’와 여의도 상공 130m를 수직 상승하는 ‘서울달’이다. 그야말로 나와 같은 베짱이형 방랑자에게 최적화된 도심 정복 루트가 아닌가. 그렇게 나는 덜 닫힌 막걸리 병뚜껑처럼 실실 웃음을 흘려가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잠실로 향했다.

한강버스 선착장 2층에 가면 한강뷰를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들이 있다. 이미 뷰 맛집으로 소문난 곳들. BBQ 치킨, CU편의점, 불닭존, 스타벅스 등이 있는데, 나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닭다리를 손에 쥐었다. 치킨은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있지만 ‘한강뷰 치킨’의 맛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뜨거운 물을 부은 한강라면 용기를 들고 조심조심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저것도 정말 맛있지 않습니까.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잠실 선착장 BBQ 매장 테이블에서 한강 버스의 운행을 총괄하는 한상균 대표와 서울 관광의 매력을 진두지휘하는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를 만났다. 각자 왼손에 일회용 장갑을 끼고, 향긋한 치킨 내음을 즐기며 대화를 이어갔다.
“반갑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강버스는 두 번째 탑승인데요. 솔직히 저처럼 겁 많고 의심 많은 사람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한강버스가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상균 대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평일임에도 선착장 게이트에는 꽤 많은 사람이 긴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무엇보다 일반 유람선 요금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3000원이라는 가격이 참 매력적입니다. 청소년 1800원, 어린이는 1100원이라니, 이 정도면 김혜자 씨가 울고 가겠네요. 그런데 이 요금만으로 한강버스 운영이 되나요? 여기 직원만 해도 백 명이 넘는다고 들었는데요.”
나는 턱을 괴고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렸다. 은근한 압박의 신호다. 한 대표는 설명을 이어갔다.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현재 저희 직고용 인원이 102명에 달하니까요.” “그럼 역시 수지타산이 안 맞겠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승객분들께 제공하는 이 합리적인 3000원 요금만으로는 연료비나 수리비, 인건비 같은 변동비를 온전히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강버스는 일종의 장치산업이기에 서울시의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이지요. 다만 저희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선착장 주변 공간을 활용한 F&B 사업이나 브랜드 팝업, 다양한 광고 유치 등을 통해 자체적인 수익 모델을 다각화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가 끼어들었다. “사실 서울의 경우 남산이나 사대문 안 고궁 말고는 내세울 만한 시그니처 관광 콘텐츠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강버스는 교통수단을 넘어, 한강의 수려한 스카이라인을 밤낮으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낭만 콘텐츠이지요.”
“초기에는 노선이 지금보다 더 길었다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한 대표가 대답했다. “네, 초기에는 마곡에서 잠실까지 한 번에 쭉 가는 장거리 노선을 구상했었습니다.” “마곡에서 잠실까지요? 편도로만 가도 한참 걸렸겠는데요.” 머릿속으로 한강 지도를 그려보았다. 길 대표가 말했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편도 운항 시간만 두 시간이 넘어가더군요. 아무리 풍경이 아름다워도 승객분들이 지루함을 느끼실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하긴 두 시간 동안 배를 타면 뱃멀미를 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하하, 그렇지요. 그래서 제가 시장님께 ‘전 세계 시티투어나 페리의 성공 사례를 보아도 한 시간 안팎이 가장 몰입도가 높다’고 건의를 드렸습니다. 제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인지, 현재 한강버스는 여의도를 중심으로 노선을 과감히 분리하게 됐네요.”

“주말에는 자리가 없어서 배가 미어터질 정도라면서요?” 사실이다. 한 대표가 대답했다. “주말에는 하루에 5000명 이상이 탑승하십니다. 승객 점유율이 70%에 육박합니다.” 물론 승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코스 전체에 걸쳐 배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선착장 중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은 접근성이 뛰어난 뚝섬과 여의도라고 한다.
“(승객 점유율이 높은 것은) 승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뚝섬이나 여의도 같은 중심지 선착장에서 승객들이 유기적으로 타고 내리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유명한 수변 도시들처럼 말이죠?”
이번엔 길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에 가면 페리가 대중교통으로 완벽히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한강도 그에 못지않은 잠재력이 있습니다.”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시는군요.” 나는 두 대표의 열정적인 목소리에 동화되어 깊은 공감의 눈빛을 보냈다. 한 대표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현재는 그 잠재력의 10% 정도만 발현된 상태라고 봅니다. 앞으로 나머지 90%의 시장이 더 활성화된다면 기존 유람선들과도 충분히 상생하며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매끈한 돌고래 같은 모습의 한강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부는 에어컨 바람으로 쾌적했고, 사방으로 뚫린 통창 너머로 푸른 강물이 시원하게 스쳐 지나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취재 메모를 정리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온화한 인상(그리고 시간이 많아 보이는)의 어르신이 말을 걸어왔다.

“내가 이 한강 줄기를 보고 산 지가 70년이 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뚝섬에서 살았어요. 뚝섬에서 수영도 하고 그랬지요. 그런데 이젠 마을버스 타듯 대중교통 카드로 찍고 들어와 에어컨 바람 쐬면서 한강을 돌아다니니 원… 진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 아니겠습니까. 단돈 3000원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말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어르신. 저도 걷는 거 참 싫어하는데, 이렇게 편하게 앉아서 한강 유람을 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요.” 나는 창가에 기대어 나른한 시선으로 물살을 감상했다.
“거기다가 6월부터는 일시적이긴 하지만 서울숲까지 가는 직항 노선도 생긴다지요? 내 친구들 데리고 정원박람회(서울국제정원박람회) 구경 가려고 해요. 좋아들 할 겁니다. 허허”
어르신의 웃음소리가 강바람을 타고 번졌다. 6월부터 성동구 서울숲 인근 선착장이 열리면 영등포에서 167개 정원이 펼쳐진 서울숲까지 곧장 이어진다니, 올여름 최고의 나들이 코스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다시 눈을 창밖으로 돌렸다. 일상의 찌든 스트레스가 푸른 강물 위로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한강에서 영혼을 정화했으니, 이제는 하늘을 지배할 차례다. 다음 목적지는 여의도공원 잔디마당. 이곳에는 지름이 무려 22m에 달하는 거대한 보름달 모양의 기구가 웅장하게 대지를 누르고 있었다. 이름하여 ‘서울달(SEOULDAL)’이다.
사실 고백할 게 하나 있다. 나는 평생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는 줄 알고 살았다. 산에 올라가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서면, 아찔해서 도무지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런데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전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출렁다리(심지어 발아래가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일지라도)가 대표적인 예. 그렇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아니라, 그냥 겁이 많은 거였다. 안전만 보장된다면 내 영혼은 하늘 끝까지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하,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많은 분이 오해하시는데, 서울달은 불을 피워 공기를 데우는 일반 열기구가 아닙니다.” “열기구가 아니면 정체가 뭔가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금 팀장은 기구 중심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헬륨가스의 부력을 이용한 ‘계류식 가스 기구’입니다. 초고강도 강철 케이블로 지상과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오직 수직으로만 안전하게 오르내리지요. 그 어떤 비행 수단보다 안전하니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안전하다니 다행인데, 얼마나 높이 올라갑니까?” 나는 곁눈질로 기구 아래 연결된 두꺼운 케이블을 보았다. 여전히 불안해 보였을 것이다.
“저 도넛 모양의 곤돌라를 타고 아파트 40층 높이인 상공 130m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다. 서울달은 수직으로 130m 상승하고, 승객들은 자신을 가로막는 유리창 없이 생으로 상공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말씀드리면, 이 기구는 프랑스 에어로필사(Aerophile)의 제품인데요. 지난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 때 튈르리 정원에 떠올랐던 올림픽 성화대 기구와 완벽히 동일한 모델입니다.” “오오, 정말 좋은데요? 파리 올림픽 성화대 기구를 여의도에서 타볼 수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금 팀장이 고개를 시원스레 끄덕여 보였다.
“그렇습니다. 파리 시민들이 열광했던 그 낭만을 여의도 한복판에서 그대로 느끼실 수 있는 셈이지요. 덕분에 외국인 관광객 비율도 눈에 띄게 늘어나 서울달은 글로벌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치는 주로 언제 보는 게 좋습니까?” 나는 벌써 상공에서 내려다볼 풍경을 상상하며 눈을 반짝였다. “한낮에는 탁 트인 여의도 빌딩 숲과 한강의 전경이 시원하게 보이고, 밤에는 화려한 도시 불빛이 가득한 야경이 펼쳐져 프러포즈 명소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누적 탑승객도 벌써 10만 명을 기록했고요.”
“그런데 바람이 너무 불거나 기상이 나빠서 기구가 못 뜨면 손님들이 발걸음을 그냥 돌려야 합니까? 멀리서 온 손님들은 참 허탈하겠어요.”
기구 특성상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안전을 위해 기상이 나쁘면 기구를 띄우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서울달 그라운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곤돌라 내부를 직접 탐방하고, 기구의 비행 원리를 교육하는 등 시민들이 지상에서도 충분히 아쉬움을 달래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마련해 놓고 있다고 한다.

곤돌라가 고도를 끝까지 높였다. 지상으로부터 정확히 130m 떨어진 곳이다. 내 시선에 한 젊은 커플이 들어왔다. 20대 후반이나 되었을까. 남자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들고 있었다.
오옷! 말로만 듣던 서울달 프러포즈 이벤트인가. 보는 나도 흥분이 되었지만, 알고 보니 그건 아니고 여자친구 생일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고 한다. 열린 상자 안에는 서울달처럼 동그란 목걸이가 담겨 있었다. 예상치 못한 하늘 위 깜짝선물에 기뻐하는 여자친구와 쑥스럽게 웃으며 ‘이벤트 성공’의 보람을 만끽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 서울달이 프러포즈의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가 단박에 실감 났다.
발밑으로 아름답게 나열된 국회의사당의 돔 지붕과 여의도의 고층 빌딩들, 거대한 한강의 줄기가 서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유유히 흐르는 장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서울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황홀한 15분이었다. 이제 서서히 하강이 시작된다. 아쉬움이 한숨이 되어 나왔다.
강 위를 가르는 시원함과 하늘을 누비는 짜릿함을 하루 만에 모두 맛보고 나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새삼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 곳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멀리 교외로 떠나 차 막히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도심 한복판에서 푸른 하늘과 넓은 강을 100배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어준 서울이다.
온종일 한강버스와 서울달을 만끽하느라 나름 열심히 움직여 준 내 소중한 육신을 위해, 이제 오늘 여정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선사할 시간. 여의도 근처의 숨은 맛집을 찾아 식도락으로 나에게 보상해 줄 요량이다. 초여름의 행복한 고민은 결국, ‘강으로 갈까 하늘로 갈까’에서 나아가 ‘오늘 저녁엔 어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울까’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인생 뭐 있나,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으면 그게 바로 최고의 인생이지.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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