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 엘리트 테니스는 왜 문이 좁은가? ITF W35 고양대회 현장에서 본 한국 테니스의 구조적 과제

최준 기자 2026. 5. 20. 10:5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ITF W35 고양 대회 경기 모습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ITF W35 고양대회에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한국 테니스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현장에서 직접 선수와 대회 운영, 심판, 본부석, 관중, 후원 구조를 바라보는 경험은 책상 위의 분석과는 달랐다.

이번 대회는 ITF 월드테니스투어에 속한, 여자 W35 등급의 대회다. W35 대회는 총상금 3만 달러 규모의 대회이며, 이러한 대회는 프로 선수들이 세계 랭킹을 만들고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매우 현실적인 현장이다.

그 현장에서 한국 테니스의 수준이 나라의 국력에 비해 지나치게 낙후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은 이미 경제력, 문화적 영향력, 도시 인프라, 스포츠 소비력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라선 나라다. 케이팝, 영화, 드라마, 반도체, 자동차, e스포츠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테니스만 놓고 보면, 한국은 여전히 일본이나 미국과 비교할 때 선수층이나 대회 구조, 후원 문화, 선수 생애 설계에 있어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번 대회를 통해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국내대회 참가 구조였다. 국제대회는 ITF 아이핀(IPIN)을 등록하면 개인도 참가 신청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대회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내대회에 참여하려면 선수등록이 필요하고, 이 선수등록에는 소속팀이 요구된다. 즉 소속 팀이 없으면 국내대회에 참여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히 대한테니스협회(KTA)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 더 상위의 체육 행정 구조, 즉 대한체육회와 종목단체의 경기인 등록 체계가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보인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지원포털은 경기인을 선수, 지도자, 심판, 선수관리담당자 등으로 구분하고, 경기인 등록은 종목단체와 시도종목단체를 통해 이뤄진다고 안내하고 있다. 다른 종목의 경기인등록규정에도 선수는 학교운동부, 스포츠클럽, 체육동호인부 등 일정한 소속을 통해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는 행정적 필요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구조가 테니스 종목의 특성과 충돌한다는 데 있다. 테니스는 본질적으로 개인 종목이다. 팀에 소속되어야만 선수가 되는 종목이 아니라, 개인이 훈련하고, 개인이 대회에 참가하고, 개인이 랭킹을 쌓아가는 스포츠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내대회 구조는 여전히 '팀에 소속된 선수'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이는 개인 선수, 늦게 성장하는 선수, 대학 이후 다시 도전하려는 선수, 해외에서 훈련하다 국내대회에 나오려는 선수, 혹은 소속팀 없이 자비로 도전하는 선수에게 매우 높은 장벽이 된다.

대회에 참가했던 미국 선수, 재다 다니엘

테니스는 '참여 가능한 길'이어야 한다

미국테니스협회는 성인 대회와 오픈 토너먼트를 폭넓게 운영하고 있다. 오픈 대회는 미국테니스협회 회원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구조이며, 실력이 높은 선수들이 주로 참여하지만 원칙적으로 문호는 열려 있다. 이는 테니스가 엘리트 선수만의 종목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아마추어와 준 프로, 대학 선수, 재도전 선수까지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역시 일본테니스협회를 중심으로 제이핀(JPIN) 등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니어 선수의 개인 등록과 랭킹 시스템을 확대하려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이는 일본 테니스가 최소한 개인 단위의 등록과 대회 참가, 랭킹 관리 체계를 중요하게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미국과 일본의 제도가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각 나라마다 행정 구조와 스포츠 문화가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는 있다. 미국과 일본은 테니스를 '팀에 소속된 일부 선수만의 폐쇄적 경기'로만 보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학교, 실업팀, 시도협회, 공공기관, 종목단체의 구조 안에 들어와야만 국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형태가 강하다.

이 구조는 결국 선수층을 얇게 만든다. 테니스는 넓게 뽑고, 오래 버티게 해야 하는 종목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릴 때부터 정해진 엘리트 코스에 들어가지 못하면 선수로 남기 어렵고, 소속팀이 없으면 국내대회 참가도 어렵고, 일정 나이가 지나면 다시 도전할 길도 좁다. 이는 선수 발굴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 생태계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국내대회가 닫혀 있다면 국제대회만 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이다. 국내에 대회가 존재하는데 그것을 건너뛰고 국제대회만 뛰는 것은 선수 육성 구조상 말이 되지 않는다. 국내대회는 선수들이 경험을 쌓고, 랭킹을 만들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기본 무대가 되어야 한다.

또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내대회를 모두 ITF 규정에 따른 국제대회로 전환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 선수들이 국내에서도 랭킹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방향 자체는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ITF 대회는 국제 규정, 심판 운영, 시설 기준, 상금, 행정 절차, 선수 엔트리 관리 등을 따라야 한다. 또한 국내대회가 가진 기존의 권한 구조, 시도연맹과 협회, 공공기관 소속팀, 실업팀, 학교팀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결국 문제는 단순히 대회를 국제대회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한국 테니스가 '소속팀 중심의 폐쇄적 구조'에서 '개인도 참여 가능한 개방형 구조'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있다.

대회 단식에서 최종 우승했던 박소현

자비 부담의 현실, 프로 테니스의 경제학

엘리트 테니스 유망주들에게 더 힘든 문제는 비용이다. ITF가 주관하는 국제대회는 국내에서 열리든 해외에서 열리든 대부분 선수 개인의 비용 부담이 크다. 항공료, 숙박비, 식비, 코치 비용, 스트링 비용, 트레이닝 비용, 치료비를 고려하면 하위 투어 선수에게 국제대회 출전은 거의 적자 구조에 가깝다.

W35 등급에서 여자 단식 우승은 4천달러 정도이며, 여기서 22%의 세금까지 공제하면 외국에서 온 선수들은 항공료와 숙박비를 모두 충당하기 어렵다. ITF 월드테니스투어는 전 세계 75개국 이상에서 1,250개 이상의 대회를 통해 약 1만1천명의 선수들이 경쟁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이 점에서 한국 선수들은 더욱 불리하다. 일본 선수들의 경우 지방 중소기업이나 지역 기업으로부터 작은 후원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아 보인다. 큰 대기업 후원이 아니더라도, 지역 회사가 선수의 이름 옆에 함께 서고, 선수는 그 브랜드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가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테니스 후원에 대단히 인색하다. 기업들은 세계 정상급 선수가 아니면 후원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되기 전까지 버틸 수 있는 구조가 없으면, 세계 정상급 선수는 나올 수 없다.

이것이 한국 테니스의 모순이다. 성공하면 후원하겠다고 하지만, 후원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스타가 나오면 투자하겠다고 하지만, 투자가 없으면 스타가 나오기 어렵다.

고양대회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선수는 미국의 애슐리 하베이다. 그는 2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복식에 출전했고, 스위스 선수와 파트너를 이뤘지만 초반에 탈락했다. 실력만 놓고 보면 세계 정상급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한국 엘리트 테니스 선수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코치 없이 한국에 왔고, 비용도 자비로 부담했다고 한다.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며 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를 마쳤고, 2년 동안 스스로 돈을 벌어 세계 여러 나라의 테니스 대회에 참가하면서 1년 이상 여행하듯 선수 생활을 해보려 한다고 했다. 그 여정이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가 정부기관에서 일할 계획이라고 했다.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그는 테니스로 반드시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테니스는 그에게 인생의 전부이면서 동시에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테니스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사람을 만나고, 자기 삶의 한 시기를 풍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장면은 한국 엘리트 테니스의 현실과 너무나 대비된다. 한국의 많은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테니스에 모든 것을 걸고 성장한다. 학교생활도, 일반 교육도, 다른 진로 탐색도 제한된 채 선수 생활에 집중한다. 그러나 테니스로 성공하기는 정말 어렵다. 세계 랭킹 상위권에 올라 상금과 후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많은 선수들은 중도에 탈락하고, 이후 선택지는 매우 좁아진다. 흔히 말하듯 지도자가 되는 길이 남지만, 그것은 대개 코치가 되는 길이다. 물론 코치는 중요한 직업이다. 그러나 모든 중도 탈락 선수가 코치가 되어야만 하는 구조라면, 그것은 건강한 스포츠 생태계라고 보기 어렵다.

선수들의 미래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한국 테니스가 정말 생각해야 할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랭킹 높은 선수가 나와야 한국 테니스가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질문해야 한다. 세계적인 선수가 되지 못한 수많은 선수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테니스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 구조는 실패 이후의 삶을 충분히 설계해 주지 않는다.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운동에 모든 시간을 쏟지만, 그 결과가 세계 랭킹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갑자기 사회적 기반이 약한 상태로 남겨진다.

중도 탈락은 실패가 아니다. 스포츠에서 중도 탈락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문제는 중도 탈락 이후의 길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애슐리 하베이처럼 테니스를 통해 인생 경험을 확장하고, 이후 다른 직업 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면 테니스는 선수에게 상처가 아니라 자산이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테니스가 너무 일찍 인생 전체를 잠식하고, 실패했을 때 되돌아갈 길을 충분히 남겨두지 않는다.

한국 테니스가 발전하려면 유망주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중도 탈락한 선수들이 대학, 유학, 스포츠 행정, 피트니스, 스포츠 마케팅, 데이터 분석, 심판, 대회 운영, 국제 스포츠 행정, 기업 스포츠 비즈니스로 이동할 수 있는 진로 구조가 필요하다. 테니스 선수 출신이 반드시 코치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테니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국내대회의 개인 참가 문호를 넓혀야 한다. 소속팀이 없는 선수도 일정한 등록 요건과 실력 기준, 책임 규정을 충족하면 국내대회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 테니스는 개인 종목이며, 개인의 도전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둘째, 국내대회와 국제대회의 연결성을 강화해야 한다. 모든 대회를 국제대회로 만들 수는 없지만, 국내 주요 대회의 일부를 ITF 포인트와 연결하거나, 국내 랭킹이 국제대회 와일드카드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선수들이 국내에서 뛰는 것이 국제무대로 가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셋째, 국내 개최 국제대회를 늘려야 한다. 한국 선수들이 해외로 나가며 항공료와 숙박비를 부담하는 구조만으로는 선수층을 넓히기 어렵다. 국내에 ITF 대회가 많아지면 한국 선수들은 비용을 줄이고 국제 랭킹포인트를 얻을 기회를 늘릴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대회 유치가 아니라 선수 생태계에 대한 투자이다.

넷째, 지역 기업과 중소기업 후원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 선수들이 지방 기업의 작은 후원을 받으며 국제대회에 나서는 모습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후원은 반드시 대기업이 세계적 스타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 기업이 지역 출신 선수, 대학 선수, 재도전 선수, 복식 전문 선수, 여자 선수, 주니어 선수에게 소액 장기 후원을 제공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다섯째, 중도 탈락 선수를 위한 진로 설계가 필요하다. 한국 테니스는 이제 '세계적 선수 만들기'만 말해서는 안 된다. '세계적 선수가 되지 못한 선수도 존중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테니스가 약한 이유는 선수들에게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다. 부모들의 열정이 없어서도 아니고, 지도자들이 노력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에 있다. 개인에게 닫힌 국내대회, 소속팀 중심의 선수등록, 부족한 국제대회, 취약한 후원 문화, 중도 탈락 이후의 좁은 진로, 엘리트와 동호인의 단절이 한국 테니스를 작게 만들고 있다.

한국 테니스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우리는 이제 스타 한 명의 탄생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스타는 구조 속에서 나온다. 많은 선수가 참여할 수 있고, 오래 버틸 수 있으며, 실패해도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한국 테니스의 미래는 더 많은 국제대회, 더 열린 국내대회, 더 넓은 후원, 더 다양한 진로, 그리고 선수의 삶 전체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위에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글/최준(본지 객원 편집위원)

[기사제보 tennis@tennis.co.kr]

▶ 테니스코리아 쇼핑몰 바로가기

▶ 테니스 기술 단행본 3권 세트 특가 구매

Copyright © 테니스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