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대신 ‘과정’을 그리다…수원 파란달 화실, 열여섯 해의 붓질이 만든 ‘다양한 시간’

장선 기자 2026. 5. 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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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 만석전시관서 오는 24일까지 전시
직장인·학생·주부 등 ‘삶의 궤적’ 담아낸 서양화 향연
▲ 수원 파단달 화실에서 묵묵히 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최경숙(오른쪽) 작가와 장철익 작가. /장선 기자 now482@incheonilbo.com

캔버스 위로 번지는 수채화의 투명함과 유화의 묵직한 마티에르 속에는 저마다 삶을 살아내는 이들의 '시간'이 녹아있다. 빠름과 효율만을 미덕으로 삼는 거친 세상에서, 오롯이 자신의 속도대로 연필을 깎고 붓을 드는 이들이 만들어낸 고요한 기적이 수원 만석전시관을 채우고 있다.

수원 지역에서 오랜 시간 묵묵히 예술의 씨앗을 뿌려온 최경숙·장철익 작가의 '파란달 화실' 전시회가 오는 24일까지 수원시립만석전시관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 파란달 전시회의 황연아 작가의 작품. /장선 기자 now482@incheonilbo.com

2010년 수원에 처음 둥지를 튼 파란달 화실은 '취미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어른들을 위한 공간'을 표방하며 출발했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을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은 단순한 기능의 학원을 넘어 일상에 지친 이들이 예술을 통해 숨을 쉬는 해방구 역할을 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 세월의 깊이를 증명하듯 다채롭고 풍성하다. 전시장 벽면을 채운 작품들은 드로잉, 수채화, 유화 등 서양화 전반을 아우른다.

전시된 그림들은 전문 작가의 매끄러운 기교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 이후 평생 붓을 잡아본 적 없던 30대,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시간을 쪼갠 주부와 직장인, 그리고 이곳에서 꿈을 키워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까지 각양각색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 파란달 전시회의 박영미 작가의 작품. /장선 기자 now482@incheonilbo.com

실제로 파란달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최경숙 작가와 장철익 작가의 지도 아래, 수강생들은 획일화된 입시 미술의 틀을 깨고 저마다의 개성을 자유롭게 발산했다. 거친 유화 터치 속에서 직장인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가 하면, 맑은 수채화의 번짐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가 피어나기도 한다.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체득한 미학적 깊이가 작품마다 은은하게 배어 나온다.

파란달 화실은 2015년 첫 수강생 정기전을 시작으로 2016년, 2018년, 그리고 최근 2024년과 2025년에 이어 올해까지 꾸준히 수원에서 대중과 호흡해 왔다. 전시를 거듭할수록 아마추어의 풋풋함은 성숙한 예술적 고뇌로 진화했고, 유학의 길을 떠나거나 진짜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들도 여럿 배출됐다.
▲ 수원시립 만석전시관 2층 전시실의 파란달 전시장 모습. /장선 기자 now482@incheonilbo.com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그림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오랜 시간 변함없이 붓을 쥐어온 이들의 '끈기'와 '진정성'이다. 속도보다는 과정과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화실의 철학처럼, 이번 전시는 보는 이들에게 "당신의 삶은 어떤 속도로 흐르고 있느냐"는 따뜻한 질문을 던진다.

지역 문화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것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이처럼 이웃들의 평범한 일상이 예술로 치환되고, 그것이 기록으로 쌓여 역사가 되는 과정 그 자체다. 

푸르름이 가득한 5월, 만석전시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서두르지 않고 자신만의 '다양한 시간'을 담아낸 파란달 화실 수강생들의 아름다운 붓질 속에서 깊은 위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장선 기자 now482@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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