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강자 굳히기’ 차세대 모델 쏟아낸 구글, 오픈AI·앤스로픽 정조준
오픈AI·앤스로픽 겨냥한 ‘물량 공세’
영상 편집 ‘옴니’·스마트 글라스 첫선
‘스파크’로 AI 에이전트 경쟁 가열

“이 영상들을 보라. 모두 지난해 내가 한 일들이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쇼어라인 엠피시어터에서 열린 구글의 연례 개발자 회의 ‘I/O 2026’ 기조연설 무대에 오른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우주복을 입거나, 기타를 연주하거나, 험준한 산을 타거나, 낙타를 타고 사막을 탐험하는 자신의 영상을 분할 스크린에 띄웠다. 행사장을 가득 채운 8,000여 명의 개발자와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차분한 이미지의 그에게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인 까닭이다. 영상은 모두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콘텐츠다.
3년여 전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며 AI 패권 경쟁의 판을 흔들자 절치부심하듯 ‘코드 레드(Code red·중대경보)’를 발령했던 구글은 이날 작심한 듯 ‘제미나이 3.5 플래시’와 음성으로도 영상을 편집·생성해주는 차세대 멀티모달 모델 ‘제미나이 옴니’, 음성 기반 AI 협업 도구 ‘독스 라이브’ 등을 한꺼번에 공개하며 ‘AI 강자 지위’ 굳히기에 나섰다. 이날 공개된 기술들은 단순히 신제품 발표를 넘어, AI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혁신의 집합으로 평가받는다. AI가 영상 편집·음성 협업·자율 업무 수행까지 아우르는 ‘만능 비서’로 진화했음을 선언한 셈이다.
구글이 새로 내놓은 초고속 AI 모델 ‘제미나이 3.5 플래시’가 대표적이다. 처리 속도는 압도적으로 빠르면서도 최고급 모델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기존 AI들이 단순히 글을 쓰는 '도구'에 가까웠다면, 이 모델은 스스로 생각하고 여러 단계의 작업을 연달아 수행하는 '에이전트(자율 실행 AI)' 성격이 크게 강화됐다.

특히 구글은 이날 삼성전자, 젠틀몬스터, 와비파커와 협업한 안드로이드 확장현실(XR·가상·증강현실을 아우르는 기술) 기반 스마트 글라스도 공개했다. 앞서 스마트 글라스를 공개한 메타, 이르면 다음 달 공개 예정인 애플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일반 안경과 똑같은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내장된 카메라와 제미나이를 통해 귀로 실시간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구글이 이날 미디어를 대상으로 스마트 안경 시연을 해 직접 착용해보니, 안경다리를 누른 뒤 제미나이와 실시간 대화하거나 눈에 보이는 이미지·음악 등을 검색할 수 있었다. 아직 출시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시제품(프로토타입)으로, 이날 공개한 스마트 글라스와 똑같진 않지만 구글의 스마트 글라스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지난해 ‘나노 바나나’ 이어 멀티모달 영상 위한 ‘제미나이 옴니’ 공개

지난해 ‘나노 바나나’를 내놓으며 제미나이의 영역을 이미지 생성과 편집으로 확장한 구글은 이날 영상 생성 AI 경쟁에서도 공세를 강화했다. ‘제미나이 옴니’는 텍스트·이미지·음성·동영상을 모두 이해하고 생성할 수 있는 통합형 AI 모델이다. 지난해 말 코드 레드를 발령하고 최근 동영상 생성 서비스 ‘소라’를 축소·정리한 오픈AI의 빈자리를 정조준한 것으로 읽힌다.
피차이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은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겸 CEO는 영상 속 배경을 자유자재로 바꿀 뿐 아니라, 피사체인 자신의 모습을 스케치나 분자 형태처럼 보이게 하는 특수 기술도 적용해보였다. 허사비스는 이 모든 작업을 자연어(사람이 일상에서 쓰는 말)를 이용해 대화하듯 편집해 보였다.
사용자를 대신해 복잡한 업무를 알아서 처리하는 AI 에이전트 시대의 서막도 열었다. 제미나이 앱 안에서 이용자의 디지털 생활을 탐색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개인 AI 에이전트 ‘제미나이 스파크’가 그 주인공이다. 제미나이 스파크는 이용자의 지시에 따라 이메일 작성, 일정 조율, 데이터 분석 등 반복적이고 복잡한 작업을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비서 역할을 한다. 피차이는 “스파크는 구글 클라우드에서 24시간 가동된다”며 “이제 여러분은 노트북을 덮으셔도 된다”고 말해 좌중을 웃게 했다.
AI 생성 콘텐츠 감지기술 동맹군도 확대

생성형 AI가 고도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인 감지기술도 대폭 강화됐다. 현재 수백만 명의 사용자가 제미나이 앱에서 '신스ID(SynthID·AI 생성 콘텐츠에 디지털 흔적을 남기는 기술)'를 사용해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구별한다고 말한 피차이는 “이제 제품 전반에 ‘콘텐츠 자격 증명’ 확인 기능을 추가한다”며 “콘텐츠의 출처가 AI인지, 카메라인지, 콘텐츠가 생성형 AI 툴로 편집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AI 생성 콘텐츠를 감지하는 구글의 ‘신스ID’를 지난해 도입한 엔비디아에 이어, 오픈AI와 카카오, 일레븐랩스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플랫폼들과 손잡고 기술 표준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도 앤스로픽과 정면 승부를 선언했다. 피차이는 앤스로픽의 보안 모델 ‘클로드 미소스’에 대해 “모델의 크기를 키우는 게 보안 영역에서 가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긍정 평가하면서도 “구형 모델인 제미나이 3.1 프로만으로도 취약점의 80~90%를 탐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구글은 AI 보안 에이전트 ‘코드멘더’를 일부 전문가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뒤 확대 출시할 계획이다.
실리콘밸리= 박지연 특파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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