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유럽 말고 한국 가요!” [최지아의 미식코리아]

2026. 5. 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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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미식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온 한식. 20여 년간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맛을 알려온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가 한식과 K관광의 트렌드를 소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합니다.
지난달 3일 서울 중구 이마트24 'K-푸드랩 명동점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라면을 먹으며 라면 진열대를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엄마 아빠, 유럽 말고 한국 가요!”

최근 외국 가족 여행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졸업여행 어디 가고 싶니?”라는 질문에 예전 같으면 파리나 하와이, 로마 같은 도시 이름이 먼저 나왔을 텐데 요즘 외국의 10대들은 의외의 답을 내놓는다고 한다. “한국!”

20여 년 동안 방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미식투어와 한식 쿠킹클래스를 운영하며 지난해부터 가장 자주 목격한 장면 중 하나가 ‘10대 자녀 손에 이끌려 한국을 찾는 부모들’이다.

미국, 브라질, 유럽 등에서 온 가족 관광객들을 만나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부모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한국에 진심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초여름 미국에서 온 쌍둥이 자매 가족이 기억에 남는다. 부모와 남동생까지 다섯 식구가 2주 동안 서울·부산·제주를 여행한다고 했다. 여행 첫 일정으로 한식 쿠킹클래스를 예약했는데 가장 열심히 질문한 건 부모가 아니라 10대 쌍둥이 자매였다.

“김밥은 왜 이렇게 싸요?”

“한국 사람들은 정말 밤에 라면 먹어요?”

“떡볶이는 매운데 왜 자꾸 먹고 싶죠?”

자매는 휴대폰에 저장해둔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 음식들을 꼭 먹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모는 옆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분위기였고, 딸들이 한국 여행의 가이드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 이 여행은 쌍둥이 자매의 고등학교 졸업 기념 여행이었다. 부모는 이탈리아 남부나 일본을 추천했지만 자매는 강하게 한국행을 주장했다고 한다.

17일 강원 강릉시 오죽한옥마을에서 열린 '2026 강릉 차문화 축제'의 들차회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전통차를 맛보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때 외국인에게 한국은 ‘경유지’에 가까운 나라였다. 그런데 이제는 10대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됐다. 실제로 세대별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꽤 다르다.

40, 50대 이상에게 한국은 여전히 ‘짧은 시간에 경제 성장한 나라’ ‘분단 국가’ ‘한국전쟁의 기억’ 같은 이미지가 강한 반면 10대~30대 초반 세대에게 서울은 파리나 뉴욕처럼 ‘트렌드를 만드는 도시’이다. 음식도 맛있고, 화장품은 품질 대비 가격 경쟁력이 높고, 밤늦게 걸어도 비교적 안전하며, 어디서든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특히 K팝과 K드라마의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K드라마는 한 명이 보기 시작하면 결국 가족 전체가 보게 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정말 그렇다. 처음엔 관심 없던 부모들도 어느 순간 한국 라면을 먹고,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찌개용 김치는 어느 정도 숙성된 게 좋으냐”고 묻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더 흥미로운 장면도 있었다. 한 30대 부부는 아홉 살, 일곱 살 아이들을 쿠킹클래스에 데리고 와 “비빔밥 제대로 비비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젊은 왕자 부부는 다섯 살 쌍둥이 자녀에게 한식을 쉽게 설명해달라며 찾아와서는 가족 모두 함께 직접 음식을 만들고 맛봤다.

외국인 관광객들끼리 이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이젠 낯설지 않다.

“삼겹살엔 소주래.”

“막걸리엔 파전이지.”

이쯤 되면 단순히 한식을 먹는 수준이 아니다. 한국식 생활문화를 체험하는 단계에 가깝다.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코리아 씨푸드쇼에서 외국인이 직접 싼 김밥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음식 취향에서도 세대 차이가 드러난다. 젊은 층은 김밥·떡볶이·라면 같은 캐주얼한 음식을 선호한다. 대부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를 통해 익숙해진 메뉴들이다. 반면 부모 세대는 불고기·비빔밥·잡채처럼 전통적인 한식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관광 패턴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서울만 둘러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부산과 제주, 속초, 안동 등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지역까지 여행 동선이 넓어졌다. 그들은 “한국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고 말한다.

더 주목할 변화는 한국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보고 싶은 나라’로 바라보는 젊은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워케이션으로 몇 달씩 머무르거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신청하기도 한다. 서울을 ‘로맨틱한 도시’라고 표현하며 신혼여행지로 한국을 선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류가 시작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K드라마와 K팝으로 시작된 관심은 이제 한식과 메이크업, 패션,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제 한국을 설명하는 사람이 부모 세대가 아니라 10대 아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한국에 오는 시대가 아니다. 아이가 부모를 설득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시대다.

그렇게 한국을 경험한 아이들은 성장한 뒤 다시 자신의 아이들 손을 잡고 한국을 찾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문화의 힘이 세대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김구 선생의 이 말을 요즘 현장에서 매일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관광의 미래가 더 기대된다.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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