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대기업 중복상장, 사모펀드 엑시트 난항

신준혁 기자 2026. 5. 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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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LS그룹

정부의 중복상장 금지 기조와 자본시장 위축이 맞물리면서 대기업 계열사에 투자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의 자금 회수에 차질이 생겼다.

대기업은 자체 자금력과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정책 변화를 관망하며 버티기에 돌입했지만 펀드 청산 기한이 정해진 사모펀드들은 만기 압박에 직면해 지분 매각이나 상환 청구 등 대안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시장에선 금융당국이 주주 권익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상장 문턱을 높이면서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과 사모펀드의 자금 순환에 연쇄 충격을 촉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L자' 발언 후 중복상장 금지, 이어진 IPO 잔혹사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 계열사들은 소액주주 보호와 중복상장 규제에 가로막혀 줄줄이 기업공개(IPO)를 철회하거나 일정을 전면 수정했다.

대표적으로 LS그룹의 미국 권선 계열사이자 증손회사 에식스솔루션즈는 1월 말 한국거래소 코스피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 신청을 전격 철회했다. LS 주주들이 지분 가치 희석을 이유로 상장에 반발한 데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에식스솔루션은 지난해 1월 미래에셋자산운용 PE본부와 KCGI 컨소시엄으로부터 2억 달러 규모의 프리IPO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싱가포르투자청(GIC), 베인캐피탈, 골드만삭스, IMM 등 국내외 투자자들이 입찰 경쟁을 벌일 만큼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상장 무산 후에는 LS와 FI 간 셈법이 복잡해졌다. 대기업은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기업 경영을 유지하면서 규제 변화까지 버틸 수 있지만 펀드 청산 기한이 정해진 사모펀드는 상장 외 출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프리IPO 계약을 체결할 때 FI와 맺은 주주간계약(SHA)상 의무 상장 기한은 5년 안팎으로 다소 여유로운 상황이다. 다만 중복상장 금지 기조가 이어질 경우 자금 회수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화에너지 상장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이후 주주들의 반발과 함께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지며 사실상 멈춰 섰다.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말 1조1000억원의 프리IPO를 진행했고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은 각각 보유 지분 5%와 15%를 한국투자PE 컨소시엄에 넘겼다. 한국투자PE가 5000억원을, 한국투자증권과 대신증권이 6000억원 가량 구주를 인수했다. 이들은 20% 규모의 지분을 확보한 후 2031년 말까지 IPO를 완료해야 한다는 계약 조건을 달았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3월 16일 자본시장 체질개선 방안을 통해 상장 심사 시 중복상장 원칙 금지와 예외 허용이란 방침을 세웠다. 이르면 7월 중복상장 관련 가이드라인을 시행할 예정이다.
/ 사진 = 한화그룹
풋옵션 압박에 대주주 자금 부담 가중

투자 조건에 포함된 풋옵션이나 드래그얼롱(공동매도참여권) 조항은 대기업과 사모펀드 간 갈등 요인으로 부상했다. 기한 내 상장이 불발될 경우 원금에 약정 수익률을 더해 되사주어야 하는 조건 때문에 기업의 자금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만기를 한 차례 연장하더라도 당국의 기조가 유지된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일부 사모펀드들은 지분을 다른 펀드에 넘기는 '세컨더리 딜'을 타진하거나 대주주를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장 작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대기업이 직접 사모펀드에게 투자금을 돌려주고 자금 부담을 짊어지는 사례도 발생했다.

SK그룹 계열 SK에코플랜트는 지난달 말 지주사인 SK㈜와 함께 FI들의 출자금 상환을 위해 1조원이 넘는 자금 집행에 나섰다. 사모펀드 만기 도래와 중복상장 금지, 상장 연기 등이 맞물리면서 사모펀드들이 보유한 SK에코플랜트 지분을 되사기로 한 것이다.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프리IPO를 통해 1조원을 조달했다. 4000억원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6000억원은 전환우선주(CPS) 형태로 발행됐다. 이음PE, 큐캐피탈, 프리미어파트너스, KY PE는 CPS에, 글랜우드크레딧과 한국투자증권은 RCPS에 투자했다.

CPS에는 올해 7월까지 IPO를 완료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투자금 상환과 함께 이자와 패널티가 발생한다. 배당률 역시 최초 연 5%에서 매년 3%포인트씩 상승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IB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차기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버티는 전략을 펼 수 있지만 사모펀드는 만기로 인해 협상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중복상장 금지가 이어지면 대기업과 FI 간 지분 반환과 계약 이행을 둘러싼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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