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바다로? 안 보여도 걷지 못해도 가능한 '무장애 여행' [요즘 여행]
편집자주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조개를 많이 캐지는 못했더라도 갯벌이 닿고 진흙이 닿고… 이런 느낌들이 상당히 좋았어요.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오감 중) 촉각이 가장 중요한데 갯벌을 만져보는 것은 처음이라.”
정부가 '바다 가는 달'로 지정한 5월을 맞아 동료 시각장애인들과 갯벌 여행에 나선 양형근(66)씨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날 함께한 동료들과 못해도 1년에 예닐곱 번은 여행을 다닌다는 양씨도 갯벌은 처음이었다. 시력 좋은 이도 거동이 불편한 갯벌, 흐릿한 형체만 겨우 식별할 수 있는 양씨에게는 거닐 수 없는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 가장 좋았던 여행지로 경남 통영의 백사장을 꼽을 정도로 바다를 사랑하지만 갯벌의 펄은 그 어떤 문턱보다 높았다.
그러던 양씨가 갯벌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은 ‘무장애 여행’ 덕분이다. 한국관광공사 경인지사가 무장애 여행 전문업체와 준비했다. 이르게 여름 햇살이 드리운 지난주, 경기 화성시 궁평항 일대로 바다여행을 떠난 서울시시각장애인연합회 금천구지회와 동행했다.
'바다 애호가'의 첫 갯벌체험


이번 바다여행의 주무대는 갯벌. 모든 일정의 관건은 물때다. 찰랑이던 해수면이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후퇴하자 이날의 관광객을 실은 전세 버스가 도착했다. 첫 갯벌 여행을 앞둔 시각장애인 단체 회원들이다.
지난해 5월 바다 가는 달을 맞아 경기 시흥시 갯골생태공원에서 무장애 여행을 처음 진행한 관광공사 경인지사는 좋은 반응에 힘입어 올해는 바다 4곳(인천 시흥 안산 화성)에서 총 6회에 걸쳐 확대 진행한다. 프로그램도 염전 체험에 국한됐던 지난해에 비해 갯벌체험, 해상 케이블카 탑승, 생태습지 탐방 등으로 다양화했다. 회차마다 지체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참가자 구성과 프로그램이 다른데, 기자가 동행한 회차는 시각장애인 대상 갯벌체험이었던 것.
간단한 교육 후 장화를 착용하고 갯벌로 내려갈 시간이지만 머뭇거리는 이들도 있다. 동행한 무장애 관광 인솔자가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무리해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며 안내한다. 대신 갯벌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덱 산책길이나 펄의 경계를 긋는 노두길을 추천했다. 경험하되 무리하지 않는 것이 여행을 즐기는 첫걸음이다.


새로운 경험에 목마른 이들은 벌써 저만치 갯벌로 나섰다. 눈이 되어줄 동행인과 꼭 붙어 다닌다. 금천구지회 회원은 대부분 전맹이나 미약한 시력만 남은 중증장애인이다.
바다를 눈으로 볼 수 없음에도 이들이 바다를 찾는 이유는 바로 촉감에 있다. 대중매체에서 시각장애인은 청각이 고도로 발달한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청각 이상으로 중요한 감각이 촉각이라고 한다.
양씨는 기자의 팔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우리는 서로 만나면 손을 먼저 잡는다”고 설명했다. “그런 것처럼 바다, 갯벌을 느낌(촉감)으로 경험해보고 싶었다”며 “펄을 만져보고 손발에 닿아보고 싶어서 오늘 여행에 왔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과거 지회 동료들과 통영 여행을 갔을 때도 고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갯벌을 마음껏 밟고 있자니 전문 인솔자가 ‘바다 휠체어’를 끌고 나타났다. 자력으로 갯벌을 걷기 어렵거나 도중에 지친 이들을 위한 장비다. 거동이 더 불편한 지체장애인의 경우 휠체어가 없다면 체험이 아예 불가할 수도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다행히 대부분 신체 거동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저마다 돌아가며 바다 휠체어도 체험했다.
휠체어는 무장애 바다 여행의 선두주자인 프랑스에서 개발된 비파마트(Vipamat)사의 ‘히포캠프(Hippocampe)’ 장비다. 마치 부표를 달아놓은 듯이 큰 바퀴 덕에 펄에 잠기지 않고 부드럽게 갯벌 위를 나아간다. 일반 휠체어보다 차체가 낮아 허리를 굽혀 해루질을 할 수도 있다. 바퀴를 바꿔 달면 수영 보조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낮은 차체 덕에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서 휠체어째로 입수해 그대로 수영을 시작할 수 있는 것.
갯벌을 느끼고, 해루질을 하고, 바다 휠체어 체험까지 마치면 이제 펄을 떠날 시간이다. 이날 계획된 무장애 관광지가 아직 두 곳 더 남았기 때문. 양씨는 “오늘은 처음이라 (갯벌이) 무서워서 제대로 체험을 못 한 회원들도 있는데, 막상 여행을 다녀오면 다들 좋았다고 한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모두가 같이 적극적으로 체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무장애 관광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15년부터 무장애 여행이 가능한 ‘열린관광지’를 선정하고 있다. 장애인은 물론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의 이동 편의성을 고려한다. 별도 프로그램을 신청하지 않고도 상시 여행 가능한 곳이 많다. 첫해 6곳에 불과했던 열린관광지는 올해 212개소로 늘어났다.
대표적인 이색 무장애 관광지는 강원 춘천시 의암호 ‘킹카누’다. 갯벌 체험 못지않게 신체적 제약이 있는 수상레저의 문턱을 낮췄다. 최대 12인까지 탑승 가능한 거대한 카누를 일반·전동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이런 휠체어 카누가 1대, 기타 장애인 배려 시설이 탑재된 카누가 3대 준비돼 있다. 일행이 레저를 즐기는 동안 선착장 한편에서 기다려야 했던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희소식이다. 인근 삼악산호수케이블카도 대표적인 열린관광지로 연계 여행하기에 좋다.
궁평항 무장애 여행을 인솔한 서영민 무빙트립 팀장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경험’에 대한 욕구는 같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무장애 여행을 실내 관람 위주 콘텐츠에 국한하지 않고 실외 관광지를 탐험하고 몸으로 체험하는 콘텐츠를 많이 준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 팀장은 “ 우리나라 장애인 인구 중 대부분은 선천적 장애인이 아니라 후천적 장애인”이라며 “누구나 나이를 먹듯 누구나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무장애 여행도 자연스러운 경험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세계적으로 고령층 및 장애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무장애 관광지 확대를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시장성 있는 산업 정책의 하나로 보고 있다. 문체부는 2024년 기준 국내 무장애 관광 시장 규모를 6조6,000억 원, 잠재 규모는 11조 원 상당으로 추정했다.
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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