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내란 막을 책임 방기, '꽃길' 깔아준 최규하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대통령의 역사적 과오
박정희가 총리 기용한 이유 "순한 양 필요"
힌덴부르크와 에마누엘레 3세 비슷한 사례
12·12와 5·17, 광주진압 모두 승인하고 묵인
총칼에 굴복했더라도 심판 피할 수는 없어
증언 거부·눈 감을 때까지 함구, 책임 저버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1권을 펼쳤다. 최규하(崔圭夏, 1919~2006) 항목의 부제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전두환에게 꽃길 깔아준 무위와 무책임의 대통령."
무위(無爲). 아무것도 하지 않음.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아니, 때로 그것이 가장 치명적인 선택이다. 최규하는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하지 않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하지 않음'이 광주의 비극과 전두환의 내란을 가능하게 했다.
영국에서 이 인물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기록이 눈에 띈다. 당시 외무부에서 최규하의 업무 스타일을 이렇게 묘사했다고 한다.
"셋이서 돌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김동조(전 외무부 장관)는 뒤도 안 본 채 무턱대고 다리를 건넜다. 김용식(전 외무부 장관)은 돌다리를 두들겨본 후 조심조심 건넜다. 최규하는 돌다리를 두들겨보고도 건너지 않고 남이 먼저 건너기를 기다려 안전이 확인된 뒤에야 건넜다."

만주국 관료 출신, 영어실력 하나로 오른 자리
최규하는 1919년 7월 16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1941년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구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조선인임이 드러나자 학생들이 조롱하기 시작했고, 1년 반 만에 학교를 떠났다. 1942년 일제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만주국 지린성 행정과장으로 임용됐다. 친일관료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최규하는 생전에 이 고등문관시험 합격과 만주국 관리경력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공식약력 어디에도 이 사실은 기록되지 않았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전북 출신이라는 사실을 한동안 숨기다가 급할 때면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두 손 모아 외치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세계사 속의 동류, '무위'로 역사를 방조한 지도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인물이 떠오른다. 독일의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1847~1934)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1933년 1월 히틀러(1889~1945)를 총리로 임명했다.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경멸하면서도 정치적 계산 끝에 그를 선택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역사가 증명한다. 힌덴부르크가 1934년 사망하자 히틀러는 대통령직까지 흡수해 총통이 됐다. 순한 양을 찾던 자가 결국 이리에게 문을 열어준 것이다.

1979년 12월 12일 밤, 대통령이 있었지만 없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피살됐다. 최규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고, 12월 6일 유신헌법에 따라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12월 12일 밤, 보안사령관 전두환(1931~2021)이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에 도장을 찍다
이후 전두환은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했다. 최규하가 허용했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도 최규하가 승인했다. 정치인 체포와 국회 폐쇄도 최규하가 묵인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무력 진압, 최규하가 "국법 질서를 교란한 행위"라고 매도하며 승인했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을 찬탈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도 최규하가 승인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 목록을 냉정하게 나열한다. 최규하가 직접 명령하거나 지시한 것은 없었다. 그는 언제나 '승인'하거나 '묵인'했다. 그러나 헌법상 최고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승인과 묵인은, 그것이 총칼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법적·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끝내 열지 않은 입, 죽을 때까지 거부한 증언
1989년 국회 광주특별위원회가 동행 명령을 내렸다. 최규하는 거부했다. 1996년 전두환·노태우 재판 당시 법원이 강제구인을 집행했다. 최규하는 법정에 출석했지만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의 진상을 밝히는 증언을 거부했다. 전두환의 협박에는 아무 소리 못 하고 따라갔던 그가, 국민과 법원의 요청에는 완강히 버텼다. 2006년 10월 22일 사망할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는 힌덴부르크와 에마누엘레 3세의 사례가 역사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무위'와 '방조'가 어떻게 독재의 문을 열어주는지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권한을 가진 자가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 그것도 하나의 결정이며 하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나는 영국에서 생중계를 보며 최규하를 떠올렸다. 계엄군이 국회로 향하던 그 밤, 국회의원들이 몸으로 막아내던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1980년 봄, 누군가가 몸으로 막았더라면,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권한을 실제로 썼더라면.
최규하는 "돌다리를 두들겨보고도 건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자리는 돌다리를 건너야 하는 자리다. 국민이 그 자리에 앉혀놓은 이유가 무엇인가.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묻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역사 앞에서 책임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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