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일침 “코스피 활황? 한국, 너무 한가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공세가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그러나 2026년 5월 초 현재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은 충격에 굴복하지 않았다. 미국 경제는 인공지능(AI) 투자와 소비지출을 바탕으로 2% 안팎의 성장 경로를 유지하고 있으며, S&P500 등 주요 주가지수도 사상 최고치권에 있다. 관세가 자동차·기계 등 일부 산업의 비용과 수익성을 압박하지만, 빅테크와 AI 투자 붐이 그 충격을 덮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물가 지표가 다시 요동치고 소비자 심리도 약화되면서, 미국 경제의 호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장하준 런던 대학 아시아·아프리카대(SOAS) 교수를 만난 것은 미국 경제의 단기 추세에 대한 그의 추정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인터뷰는 트럼프의 야망인 ‘미국 제조업 부활’을 거쳐 한국의 주식시장 및 삼성전자 노동자와 주주 간 갈등으로 번져 나갔다.
트럼프의 ‘미국 제조업 부활’ 전략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제조업을 너무 경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 미국은 세계 제조업 제품의 60%를 생산했다. 역사적으로도 유례없이 높은 ‘글로벌 제조업 점유율’이다. 대영제국도 전성기(1870~1880년대)에 점유율 30%에 그쳤다. 요즘 거의 모든 제조업 제품을 만드는 것 같아 보이는 중국도 30% 정도다. 미국의 글로벌 제조업 점유율은 1980년대 중반의 30%를 거쳐 16~17%까지 하락한 상태다. 국가 경제의 핵심인 제조업이 흔들리면서 일자리와 상권,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두 차례에 걸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제조업 부활에 필요한 정책들을 시행할 의사가 전혀 없다.
트럼프는 제조업을 살린답시고 한국 등 동맹국들에게 천문학적 규모의 대미 투자를 강압했다.
지난해 9월, ‘ICE(이민세관단속국)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급습’은 미국 제조업 능력의 실상을 통렬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미국은 공장 건설 및 이에 필요한 숙련 인력도 스스로 조달하지 못할 만큼 제조업이 망가졌다. 대표적 사례인 조선산업은 상업용 대형 선박 기준으로 미국이 연간 건조할 수 있는 선박이 10척 안팎에 불과하지만 중국은 1700여 척에 달한다. 미국의 군사적 지배력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 미군기지 약 800곳을 해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역량이 미국 글로벌 패권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에 제안한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산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는 이에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엔 강력한 AI 산업이 있다. 구글, 애플 같은 빅테크들의 본거지도 미국이다. 최첨단 산업을 개척하는 미국의 역동성은 이 나라의 경제 제도와 규범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그래서 한국에서도 관련 제도들을 주주가치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이 ‘그나마’ 빅테크로 앞서간다지만, 한국과 타이완의 반도체 없이는 유지할 수 없다. 트럼프가 중국에 수십%에서 145%까지 관세를 물리겠다고 큰소리치다 매번 물러나고 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중국이 세계 희토류의 90% 이상을 정제하기 때문이다. 희토류 없이는 전기자동차 모터, 스텔스 전투기, 풍력발전기 등 거의 모든 첨단 제품 생산이 불가능하다. 뒤늦게 미국도 희토류 개발을 시도하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중국은 1990년대 덩샤오핑 이후 40년에 걸쳐 이 능력을 구축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인 AI 역량을 지렛대로 그런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AI는 생산성을 혁명적으로 높일 수단인 만큼 글로벌 경쟁의 규칙을 바꿔 미국의 활로를 열어줄지도 모른다.
일단 지금까지는 AI로 생산성이 상승했다는 증거가 거의 없다. 물론 앞으로 실현될 수도 있겠으나 그 수준이 혁명적일지는 두고 봐야 한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중국의 AI 역량이 미국의 턱밑까지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다만 AI 발전 전략에서 두 나라의 강조점이 다르다.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의 관심은 인간의 지능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뛰어넘는 범용 인공지능(AGI) 개발에 쏠려 있다. 이는 AI에 대한 투기적 수요를 일으켜 주가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중국은 주판이나 계산기처럼 인간의 정신노동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겠다는 쪽에 무게중심을 둔다. 어느 쪽이 더 효과를 낼지는, 가봐야 안다.
투자금을 빨아들이려면, AGI 정도의 환상적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AI를 ‘성능이 아주 좋은 산업용 계산기’ 정도로 취급하며 제조업 생태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이 대중(對中) 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한 중국이 AI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미국이 (중국 기술 발전 억제를) 20년 전에 시작했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 빅테크들은 저렴한 ‘중국산(인력,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의 중간재, 희토류 등)’을 공급받는 데 취해서 중국을 찍어 누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중국이 AI에서는 미국 턱밑까지 쫓아왔다지만 재생에너지, 전기차 배터리, 풍력발전 등 오히려 앞선 분야도 많다.
그렇다면 미국 처지에선 제조업을 더 빨리 재건할 필요성이 절실하겠다.
트럼프가 바라는 속도로 제조업이 재건되기는 어렵다. 미국의 ‘글로벌 제조업 점유율’을, 하락한 속도보다 2배 빠르게 올린다 해도 지금(16~17%)의 2배 정도인 30%(1980년대 중반)까지 거의 20년이 걸린다. 다른 나라들의 팔을 비틀어 미국에 투자하라고 강압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까? 극도로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트럼프가 한국·독일·일본의 제조업 생산 가운데 3분의 1을 미국으로 옮긴다고 치자. 이 경우에도 미국의 글로벌 제조업 점유율은 4%포인트 정도 늘어나 20%를 약간 넘길 뿐이다.
트럼프의 ‘제조업 부활 전략’을 총평한다면.
미국은 경제 규모가 굉장히 크다. 무역으로 다른 나라를 쥐어짠다고 경제가 재건되지 않는다. 미국의 국내 제도(금융, 기업지배구조, 노동, 분배 등)를 바꿔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 정부가 보호주의 정책을 밀고 나간다 해도, 정작 기업들이 경제 재건의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을 지배(소유)하는 자’들이 실물 생산보다 렌트(rent·지대) 추구에 중독된 탓이라고 보나.
1980년대 이후 미국 주요 기업들은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교과서는 주식시장을 사람들의 돈을 모아 기업으로 넣어주는 장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기간 미국의 주식시장은 기업으로부터 돈을 빼가는 장치로 작동했다. 그 금액도 점점 더 불어났다. 기업들은 이익의 대부분을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느라 투자할 자원 자체가 없었다. 최근 미국 주요 기업들은 순이익 중 90~95%(주주환원율)를 주주들에게 지급한다. 투자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잘라 남긴 순이익만으론 부족해서 심지어 빌리거나 자산을 팔아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자사주를 매입했다. 어떻게 망하지 않을 수 있겠나. (발명왕 에디슨이 세운, 세계 최고의 복합 제조업체였던) 제너럴일렉트릭(GE)의 경우, 2010년대의 주주환원율이 313%에 이른다.
100원을 벌면 313원을 주주들에게 지급한 것인가. 그러나 주주는 ‘잔여재산청구권자’이며 ‘기업의 주인’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인’들의 결정이라면 회사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의견도 가능하다.
그 주장의 핵심은 ‘기업이 잘못되는 경우 주주들이 그 부담을 모두 짊어져야 하므로 기업의 장기적 미래에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자는 주주’라는 것이다. 다만 그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면 ‘주주만을 잔여재산청구권자로 볼 수 없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도 있다.
편집자 주 : ‘잔여재산청구권’에 대한 ‘주주행동주의’ 측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기업에는 주주, 노동자, 은행, 협력업체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있다. 기업이 실적을 내면 노동자는 약속된 임금, 은행은 정해진 이자, 협력업체는 납품 대가를 받는다. 주주는 이런 비용들이 모두 지급된 뒤 남는 몫, 즉 ‘잔여재산’만을 청구할 수 있다. 회사의 실적이 어떻든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약속된 돈을 받는데, 주주는 ‘남는 몫’에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주주는 회사의 실적이 양호할수록 큰 이익을 보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벼랑 끝으로 내몰려 ‘최종적 리스크’를 부담하는 최악의 피해자다.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회사가 적자를 내든 대박을 치든 상관없다. 그러므로 주주만이 자신의 손익과 회사의 손익이 일치하는 집단으로, 회사의 장기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회사가 주주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 공익인 이유다. 이상의 논리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으며 이는 기업 경영이 주주가치 중심으로 설계된 덕분이다.

문제는 노동자나 협력업체 같은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주주에게 돌아가야 할 ‘잔여재산’을 요구한다고 여겨질 때 발생한다. 그런데 정작 잔여청구권의 논리를 적용하면 노동자도 잔여청구권자로 볼 수 있지 않은가.
현실에서 성과급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주주뿐 아니라 직원들의 소득 역시 기업의 실적에 따라 크게 바뀌는 것이다. 노동자들도 경영 리스크와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은 노동자들에게 ‘해당 업종의 해당 기업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는(firm-specific)’ 숙련 기술을 요구한다. 이런 숙련은 소속 업체의 생산 라인, 장비 조합, 조직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의 결과다. 그런데 만약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회사의 도산 때문에 다른 업종으로 이직하게 된다면? 낮은 임금밖에 못 받는다. 주주가 회사 실적에 따라 손익이 갈린다는 이유로 잔여청구권자라면,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주식 10주를 1년 보유하는 주주와 그 공장에서 10년 일한 숙련 노동자 중 회사와 관련된 리스크를 더 부담하는 쪽은 누구일까.
주주만이 회사의 장기 성장에 관심을 갖는지도 의문이다. 주식은 언제든 팔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금융상품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단기적으로 이윤을 낼 수 있는 제일 쉬운 방법은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연구개발(R&D) 등 최소 3~4년 뒤에야 대가가 돌아올지 모르는 장기 불확실 투자는 삼가는 것이 좋다. 그런데 미국, 영국 등에서는 주식 평균 보유 기간이 1년에도 미치지 못한다. ‘1년 동안 기업의 주인’인 사람이 그 업체의 장기 성장에 신경을 쓸까? 최대한 빨리, 많은 수익을 뽑아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다.
여러 리포트를 참조해보면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실질 보유 기간은 영국과 미국보다 짧은 것 같다. 개인사업자들은 자신이 ‘소유’한 회사가 큰 채무를 지면 그 업체가 망한 뒤에도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주주들은 회사가 채무 불이행으로 도산해도 자신이 투자한 금액을 날릴 뿐, 빚까지 대신 갚을 필요는 없다(유한책임). 이를 ‘진정한 소유’라고 할 수 있을까.
주식회사의 원리인 유한책임은 굉장히 중요하고 좋은 제도로, 현대 자본주의의 토대다. 주주가 사업으로 인한 빚까지 갚아야 하는 ‘무한책임’에서는 대규모 사업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가 유한책임제 아래서는 경영자들이 ‘남의 돈으로’ 사업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방만하게 운영할 것이라며 도입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회사 제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이 가능한 것이다. ‘기업은 주주의 소유물’이란 주장 역시 하나의 이론일 뿐 ‘뉴턴의 운동법칙’ 같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5월6일 코스피지수가 7384.56으로 마감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 ‘코스피 5000’이었는데, 정말 눈부신 성과다.
주식시장을 통한 ‘머니 무브’로 너무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 정말 돈이 부동산시장에서 주식시장으로 빠지며 집값이 안정될까. 주식으로 번 돈이 부동산으로 환류할 위험은 없을까. 주택문제는 주택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좋은 공공주택’ 건설로 이 문제를 해결한 나라들이 있다. 연금 역시 주식시장에서 해답을 찾으면 안 되는 문제다. 전 국민의 노후자금을 주식시장에 맡기면 그것이 안정적으로 불어나 돌아오리라고 믿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복지제도는 영속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설계돼야 하는데, 주식시장은 널뛰기를 한다. 대기업 지배구조의 경우에도 ‘장기적인 국가경제 발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주총회에서 어떻게 투표하느냐만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산업에 얼마나 투자하고 노동자는 어떤 식으로 훈련하며 다른 나라들과 어떻게 제휴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주주의 단기적 이익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
인터뷰 내내 중국 산업의 약진이 마음을 버겁게 했다.
무섭지만 사실이다. 심지어 전통적인 기계 강국인 독일이 중국과 기계 무역에서 적자를 내고 있다. 한국도 최첨단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등 몇 개 품목을 빼면 이미 중국에 따라잡혔다. 지금의 한국은 사실상 반도체와 자동차로 먹고사는 나라다. 어떤 산업 부문이라고 콕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지키든지 새로 만들든지 해야 하는 시기다. 중국에 완전히 추월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는 지금이 무척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들 한가하게 보시는 것 같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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