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악어의 시간, 골퍼의 시간

[골프한국] 우리는 악어를 떠올릴 때 대개 잔혹함과 광폭함을 먼저 생각한다. 수면에서 번뜩이는 눈, 순식간에 덮치는 턱, 회전하며 먹이를 제압하는 '데스 롤(death roll)'의 이미지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이라는 말은 위선과 냉혹함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자연 속의 악어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얼굴이 보인다. 그것은 놀라울 만큼의 정지(靜止)와 인내의 얼굴이다. 악어는 수면 위로 수정처럼 맑은 눈과 콧구멍만 내놓은 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심장 박동은 느려지고, 신진대사는 극도로 절약된다. 변온동물인 악어는 체온을 환경에 맡긴다. 그래서 쓸데없는 움직임을 삼가고, 필요할 때까지 에너지를 저장한다. 때로는 한 번의 식사로 한 달 가까이 버티기도 한다. 배고프지 않으면 사냥하지 않는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자연은 과잉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멈춘 듯한 악어의 기다림은 무기력이 아니라 집중이다. 수면 아래에서 악어는 이미 계산을 끝낸다. 거리, 각도, 물살의 흐름, 먹이의 경로. 그리고 결정적 순간 폭발하듯 튀어 오른다. 단 한 번의 추진으로 승부를 건다. 그러나 사냥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면 다시 정지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변명도, 흥분도 없이.
골프는 이 악어의 시간을 닮았다. 많은 골퍼가 샷을 '공격'으로만 이해한다. 멀리, 세게, 화려하게. 그러나 코스는 그런 성급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물과 벙커, 바람과 경사, 잔디의 결은 침착한 자에게만 길을 보여주고 열어준다. 진짜 승부는 스윙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전의 고요한 시간에 이미 결정된다.
어드레스에 들어가기 전의 멈춤, 호흡을 고르는 찰나, 목표를 정하고 마음을 비우는 짧은 침묵. 이것이 골퍼의 '수면 아래 시간'이다. 몸은 정지해 있어도 감각은 깨어 있다. 악어가 눈만 남기고 물에 잠겨 있듯, 골퍼도 불필요한 생각을 잠재우고 오직 한 지점만 바라본다.
그리고 스윙은 폭발하듯 이뤄진다. 그 폭발은 흥분이 아니라 준비된 에너지의 방출이다. 악어가 무작정 물을 튀기지 않듯, 골퍼도 매 순간 휘두르지 않는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신이 섰을 때, 망설임 없이 휘두른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 이후의 태도다. 악어의 사냥이 늘 성공하지 않듯, 골프 역시 매번 원하는 샷을 만들 수 없다. 공은 때로 벙커에 빠지고, 나무에 맞고, 짧게 멈춘다. 조급해지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소모한다. 하지만 악어는 실패한 뒤 분노하지 않는다. 다시 고요 속으로 돌아간다. 생존은 흥분이 아니라 지속성에 달려 있음을 아는 듯하다.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도 사실은 감정의 위선이 아니라 생리적 현상에 가깝다. 먹이를 먹을 때 눈가의 분비선이 자극되어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우리가 감정이라 부르는 많은 것 역시 실은 조건반사에 불과한 것일 때가 많다. 보기 하나에 무너지고, 더블보기에 분노하는 우리의 반응도 어쩌면 불필요한 과잉 분비일지 모른다.
진짜 강인함은 차가움이 아니라 절제다. 진짜 공격성은 난폭함이 아니라 선택이다. 악어는 2억 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남았다. 공룡이 사라진 뒤에도, 기후가 변한 뒤에도, 환경이 바뀐 뒤에도 그 자리를 지켰다. 그 비결은 속도가 아니라 적응과 인내였다. 에너지를 아끼고, 기회를 기다리고,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였다.
골퍼에게도 필요한 덕목은 바로 그것이다. 매 홀을 전쟁처럼 치르지 말고, 한 라운드를 긴 생태계처럼 바라보고 매 샷을 과시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로 접근해야 한다. 코스 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사자의 포효가 아니라 악어의 정지와 인내다. 고요 속에 힘을 모으고, 실패 속에 다시 잠기며, 기회가 올 때까지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 태도.
결국 골프란 힘의 게임이 아니라 시간의 게임이다. 그리고 시간을 지배하는 자는, 늘 가장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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