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밥 맛없다고 전화… "이런 악성 민원부터 해소해야"

남병진 2026. 5. 2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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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안전요원 늘려 수학여행 재개"
학부모도 "외부 교육 활동 필요해"
교사 "안전요원 관리 등 행정 부담"
악성 민원·교권 침해 대책 요구도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1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구더기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장독을 없애버리면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소풍과 수학여행이 사라진 학교 현실을 지적한 이후, 현장체험학습 재개 여부를 두고 사회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안전 문제가 있다면 비용을 지원해 안전요원을 데려가면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교육부는 안전사고 발생 시 교사의 면책권 강화를 위한 법령 개정 등을 법무부와 협의 중이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 사이에선 여전히 우려가 크다. 안전 확충과 교사 책임 완화도 중요하지만 악성 민원, 교권 침해 같은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육 현장은 계속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학여행 필요하나 행정업무 부담 늘어

화창한 봄 날씨를 보인 12일 경기 수원시 화성행궁 앞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19일 한국일보가 만난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현장체험학습 필요성에 대해 대체적으로 공감했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최이진(42)씨는 “수학여행은 평소 앉아서 공부만 하던 아이들이 외부 활동을 하며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라며 반겼고, 고교 1학년생 학부모인 김모(46)씨도 “대통령 말대로 안전 관리가 미흡하다고 해서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사들도 수학여행의 교육적 기능을 긍정 평가했다. 한 고교 교사는 “경제적 이유로 가족여행을 못 가는 아이들에겐 수학여행이 청소년 시절 유일한 여행”이라며 “완벽한 대안이 나온 건 아니지만 수학여행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도 “요즘 아이들은 온라인에 많이 노출돼 있어 수학여행 같은 현실 체험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조언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시도교육청이 마련한 현장체험학습 매뉴얼은 무려 200쪽이 넘는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안전요원 보강도 도움은 되겠지만, 안전요원 선발과 계약, 성범죄 이력 조회, 사전 교육 등이 모두 교사에게 맡겨져 행정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 버스기사 음주 측정, 숙소 위생 점검도 교사 몫이다. 경기 수원시 소재 고교 교사 조모(53)씨는 “수학여행 중 안전요원 동선 관리도 해야 한다”며 “안전요원이 실수라도 하면 학부모 항의만 늘어날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악성 민원 막아야 자유로운 현장 교육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7일 서울 영등포구 TP타워에서 열린 '안전한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교육공동체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 현장에선 궁극적으로 악성 민원이 해소되지 않으면 자유로운 현장 학습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전사고는 인력 확충, 예산 지원으로 예방할 수 있으나 학부모의 부당한 요구와 압박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미비한 탓이다. 앞선 고교 교사 조씨는 “학생이 ‘밥이 맛없다’고 해서 학부모가 교장에게 민원 전화를 넣은 적이 있다”며 “교장이 강원도 여행지까지 와서 식단 점검을 하고 돌아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경기 화성시 고교에서 일하는 교사 A씨는 “지난해 수학여행에서 숙소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고 오후 7시에 학부모에게 항의 전화를 받았다”며 “와이파이가 터지는 것까지 확인해 직접 보고했다”고 말했다. 인천 한 고등학교 교사 김모(34)씨도 “민원이 안 통할 경우 학부모가 소송하겠다며 윽박지르는 건 부지기수”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달 초 교육부 간담회에 참석한 강석조 초등교사노조 위원장도 학부모로부터 ‘왜 체험학습을 멀리 가서 아이를 멀미 나게 하냐’ ‘사진 200장 중에 왜 우리 아이는 5장밖에 없냐’는 항의를 받았던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발언을 담은 영상은 1,125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교육계는 실질적인 교사 보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19일 기자회견에서 현장체험학습과 관련해 △민·형사 면책권 법제화 △행정 부담 완화 △민원으로부터 교사 보호 등을 촉구했다. 교권 보호 과제로 △학교생활기록부에 중대 교권 침해(폭행·상해·성폭력 등) 기재 △교권 소송 국가책임제 △악성 민원 맞고소제 의무화도 제시했다. 전국교직원노조도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안전사고 발생 시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남병진 기자 sou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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