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민국] 구조적 도약인가 단기 버블인가… 8000선 터치한 코스피의 두 얼굴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2026. 5. 19.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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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와 불안 교차하는 증시
반년 만에 주가지수 2배로 뛰었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 일단 타” 재촉
제조업 실적 이어질 잠재력 있지만
신기술 등장시 반복된 거품일 수도
코스피가 장중 8000선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 과정을 다룬 신간 ‘1929’를 읽다 보면 “월스트리트는 더 이상 지역 시장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 시장에 진입했고, 이 거대한 상승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2026년 대한민국 증시 풍경도 이와 유사하다. 증권사 광고에는 “설명할 시간이 없어. 일단 타”라는 문구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주가 상승에 올라타지 못한 개인 투자자들의 조급함을 재촉한다.

4000에서 8000까지 6개월

6개월 전인 2025년 11월 14일 코스피는 4011을 기록했다. 4000을 돌파했다는 기쁨도 잠시, 11월 말까지 주가지수는 4000을 넘지 못했다. 12월 3일 다시 4000을 돌파한 코스피는 1월 27일 5000선, 4월 15일 6000, 5월 6일 7000을 뚫었다. 이후 10일도 지나지 않은 5월 15일 8046까지 상승했다. 종합주가지수를 추종하는 ETF에만 투자했어도 6개월 만에 2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주가 폭등과 맞물려 고객 예탁금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연말 87조원이던 투자 예탁금은 1월 말 100조원을 넘어섰고, 5월 13일 기준으로 137조원에 달했다.

AI 시대에 접어들며 반도체와 전력 관련 하드웨어 공급 부족이 뚜렷해지자 이 종목들이 폭등하면서 시장 상승을 이끌었다. 2025년 5월 15일 20만500원이던 SK하이닉스 주가는 올해 5월 14일에 197만원을 기록, 1년 만에 883% 올랐다. 같은 기간에 삼성전기는 12만2200원에서 102만4000원으로 739% 상승했다. 이에 비하면 삼성전자의 415%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그래픽=박상훈

주요국 중 최고 수익률 기록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시가총액 최상위권 기업들의 주가가 단기간에 몇 배씩 폭등하면서 코스피는 연초 대비 90% 올라 주요국 중 최고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만(44.15%), 튀르키예(30.04%), 일본(24.46%) 등 경쟁 시장을 크게 앞섰다.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코스닥도 28.7% 상승하면서 세계 4위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증시 호황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 안정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24년 말 1212조원이던 국민연금 자산 규모는 증시 활황 붐을 타고 2025년 1458조원으로 급증했고, 2026년 5월 현재 1800조원에 육박한다. 당분간 국민연금 고갈 우려는 적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영원히 상승하는 시장은 없다

이처럼 거침없이 상승하는 증시에 대해 조만간 꺼질 버블(거품)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경제의 실질적 성장을 반영한 것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긍정적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처럼 반도체, 전력, 기계, 방산,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정유 및 소비재에 이르는 균형 잡힌 제조업 생태계를 영위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긍정론자들은 AI 투자 확대로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서 획기적 실적을 냈고, 상법 개정과 같은 제도 개선 노력이 시장의 신뢰를 높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업들의 호실적과 투명한 시장 평가 기대감이 증시 상승을 견인하며 새로운 차원의 시장으로 도약했다는 주장도 매력적이다.

문제는 영원히 상승하는 시장은 없다는 점이다. 부정론자들은 신기술 등장 국면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과도한 낙관과 투기로 인한 버블 형성이 반복돼 왔다고 지적한다. 1920년대 라디오, 1990년대 말 인터넷 등 신기술 붐 후 내리막길을 걸은 사례들은 이번 상승에 대한 경계심을 높인다. 1929년 10월 24일 미국 주식시장의 대폭락은 나만 부자가 될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평범한 서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지금이 버블의 정점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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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으로 번 돈, 다시 부동산으로 흘러가나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대한민국은 언제나 변화가 빠르다. 자산시장의 판도도 단기간에 급격히 바뀌는 모습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2024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등 비금융 자산 비율은 64.5%에 달했다. 미국(32%), 일본(36.4%)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치다. 금융 자산도 5년 사이에 현금·예금 자산 의존도가 높아진 반면, 증권 등 투자 자산 비율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부동산 불패 신화’에 기반한 투자 심리가 주된 원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자산 배분 경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주택 담보 대출을 끼고 집을 구매하는 대신, 월세나 전세로 거주하며 남는 금액을 주식 시장에 투자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이는 더 유연한 주거 형태를 이용해 투자 기회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변화된 투자 패턴을 반영한다.

주식 시장의 급등에 따라 은행과 증권사의 위상도 변화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금융지주가 분기 순이익 약 1조원 시대를 열며, 전통적인 은행지주사들을 수익성 측면에서 앞지르고 있다. 이번 주식 시장 상승을 견인한 한 축은 ETF(상장지수펀드)다. ETF는 여러 주식이나 채권을 묶어 지수화한 상품으로, 투자자들의 다양한 수요에 즉각 대응하며 광범위한 관심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ETF가 경쟁적으로 출시되고 있다.

5월 27일부터는 개별 종목의 하루 수익률의 2배를 추종하는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가 새로 도입될 예정이다. 뒤늦은 투자로 인한 수익률 손실을 만회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해외 레버리지 ETF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쏠림 현상을 국내로 돌리기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이다.

문제는 주식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의 향방이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와 세제 강화로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는 주택 시장은 최근 중저가 시장을 중심으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는 대출 없이도 주식시장에서 벌어들인 소득으로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요층이 증가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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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3저 호황 이후

대규모 버블 3번 겪어

1989년 3월 31일 오후 5시코스피지수가 1000선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조선일보사 전광판에 송출되고 있다. /조선일보DB

한국 주식시장이 1956년 문을 연 이래 대규모 버블은 세 차례 발생했다.

첫 번째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3저 호황기였다. ‘묻지 마 투자’가 만연하며 주가가 폭등했다. 1980년 100포인트였던 종합주가지수는 1989년 4월 1000을 돌파했지만 그해 12월에는 20% 이상 급락했다. 당시 정부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무제한 동원해 주식시장을 떠받치겠다는 내용의 12·12 조치를 발표했다. 발표 당일 상한가 종목이 980여 개에 이르는 기록적 상승장이 전개되었지만, 1년 뒤 주가는 550선까지 하락했다. 이후 4년간 증시는 긴 침체기에 빠졌다.

두 번째는 1999~2000년의 닷컴 버블이다. 인터넷 보급과 밀레니엄 경제에 대한 맹목적 기대가 투자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수익 모델이 없는 벤처기업도 ‘닷컴’ ‘인터넷’이라는 이름만으로 주가가 폭등했다. 5개월 동안 150배 폭등한 새롬기술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2000년 나스닥 폭락과 함께 거품이 꺼졌다.

세 번째는 2020년 동학개미 버블이다. 코로나 대응을 위한 유동성 공급에 힘입어 개인 투자자가 급증하면서 한때 종합주가지수가 3000을 넘어섰다. 하지만 2021년 미국의 금리 인상 등 긴축이 시작되자 유동성이 급감하고 주가는 크게 조정받았다. 2026년의 주가 급등이 네 번째 버블인지, 새로운 경제 시대의 시작일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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