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유근형]“스마트폰 끄고 센 강변 걸으며 내게 집중” 佛‘디지털 디톡스’ 클럽 확산
대화 없이 40분 산책… “침묵 후 더 깊은 소통”
파리 인근 센포르선… 공공장소 스마트폰 제한
노트북 금지 카페도 확산… 청소년 소셜미디어 제한 추진


16일 오후 6시(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에펠탑이 보이는 비르아켐 다리 위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자발적 디지털 디톡스를 지향하는 ‘디오프라인 클럽(The Offline Club)’의 참석자들이다. 20대 학생, 직장인, 중년 주부,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까지 다양한 인종과 직군이 섞여 있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했지만, 대부분 이날 처음 만난 사이라고 했다.
운영자 스테파니아 씨가 스마트폰을 끄라고 말하며 이를 수거할 검은색 가방을 나눠줬다. 한 참가자는 “잠깐만요. 엄마에게 약 2시간 연락이 안 된다고 말하는 걸 깜빡 잊었다”며 한 번 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미련 없이 스마트폰 전원을 끈 뒤 이 가방에 넣었다.》
●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현대인
스테파니아 씨는 스마트폰과 결별한다는 의미로 종을 두 번 쳤다. 그는 “앞으로 40분 동안 서로 대화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걷는 ‘침묵의 시간’을 갖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참가자들은 센 강변을 약 3km 걷기 시작했다. 지루할 법도 했지만 불평하는 참가자는 없었다. 꼭 필요한 의사소통은 보디랭귀지로 했다.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참가자에게는 아날로그식 필름 카메라가 제공됐다.
40분 후 오르세 미술관 부근의 한 공원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오랜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생 리나 씨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고 함께 걷는 게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금방 편안해졌다”며 “걷는 내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 집중했다”고 털어놨다. 미국인 참가자 벳 씨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이 오히려 새로운 사람과의 소통을 돕는 기분이 들었다”고 반겼다.

모임 형식은 매주 달라진다. 공원에서 책 읽기, 숲길 하이킹, 노을 바라보며 차 마시기, 퍼즐 맞추기, 박물관 함께 관람하기 등 다양하다. 인기가 많았던 차 마시기 행사에는 무려 약 300명이 모였다.
특히 이 클럽은 디지털 디톡스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1회 행사에 1개 언론사의 취재만 허용하고 있다. 이날 동아일보 또한 참가자들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주최 측이 허용하는 시간에 사진과 영상 취재를 진행했다.
스테파니아 씨는 “현대인은 혼자 걸으면서도 문자를 확인하고, 팟캐스트를 듣고, 지도를 찾는 등 무언가와 끊임없이 연결을 시도한다”며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센포르, 스마트폰 제한 정책 도입
최근에는 일부 프랑스 지방자치단체들도 스마트폰 중독 의제에 훨씬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
파리 인근 센포르 당국은 2024년 2월 주민투표를 통해 학교 공원 식당 카페 상점 등 공공장소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스마트폰에 대한 과한 의존이 대화를 줄이고 인간관계와 공동체 문화를 약화시킨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시 당국은 아동 청소년의 신체 및 정신 발달에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가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고 보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 등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스마트폰 제한 정책을 실제 도입한 건 센포르가 처음이다. 이에 따라 센포르에서는 길을 걸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공원 벤치에서 계속 화면을 보며 스크롤을 내리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시 당국은 길을 잃었을 때도 스마트폰 지도를 보는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쪽을 권장한다.
뱅상 폴프티 센포르 시장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스마트폰 사용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며 “학교에서도 교사들이 아이들이 단 1분도 집중하지 못한다고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화면 앞에 오래 있을수록 거대 기업들이 수익을 얻는 이 강력한 시스템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기자가 방문한 센포르 곳곳에는 다양한 모양의 스마트폰 사용 금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시청 카페 학교는 물론이고 상점과 정육점 등에도 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정육점 점원 스티브 씨는 “가게 안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온라인 결제가 불가능해져 장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 주민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센포르 시는 13일부터 ‘10일 동안 영상 보지 않기’ 챌린지를 진행해 도전에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수료증을 발부해 주고 있다. 시청에선 인형극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공연이 열린다. 두 딸과 함께 인형극을 관람한 시민 마니크 제시카 씨는 “집에선 아이들이 태블릿PC만 찾는데, 이렇게 함께 연극을 보거나 관련 책을 읽고 대화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고 말했다.
● 노트북-와이파이 금지 카페 확산

파리에 출장차 방문한 스위스인 다니엘 씨는 “스마트폰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커피 한잔에 집중할 시간이 정말 필요하다. 이 방침을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
적잖은 유럽 국가들이 스마트폰 중독을 정신건강의학적 문제로 판단하고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제한하는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의 수면 부족, 우울감, 집중력 저하, 사이버 괴롭힘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프랑스는 15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스페인은 16세 미만, 덴마크 그리스 폴란드 등은 15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접근 제한 논의를 시작했다.
유럽연합(EU) 차원의 공동 대응도 강화되고 있다. 최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소셜미디어의 중독성 설계(addictive designs)가 청소년 건강을 해친다”고 비판하며 미성년자 보호 관련 규제 입법을 예고했다.
다만 소셜미디어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개인정보 및 개개인의 선택권 침해, 인터넷 검열 강화 등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 가상사설망(VPN) 등 우회 접속 가능성이 열려 있어 규제의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근형 파리 특파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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