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40명의 호흡 하나로… ‘믿고 보는’ 인천시립무용단 박성식 부안무자
박수받던 무용수, 이제 무대를 그린다
정년 보장 내려놓고 ‘훈련장’ 새 여정
2008년 ‘호두까기 인형’ 첫 주역의 전율
윤성주 감독 호통·아내의 한마디에 용기
‘도시 상징’ 시그니처 브랜드 작품 포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삶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지우기 위해 모두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남부러울 것 없는 견고한 안정을 스스로 내려놓고 과감한 도전에 나서는 이들도 때로는 있다. 그럴 때면 마음 한편으로는 ‘분명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 걱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운 시선으로 응원하며 그들을 지켜보게 된다. 인천시립무용단에도 어찌 보면 무모한 모험처럼 보이는 도전에 나선 이가 있다. 바로 박성식 인천시립무용단 부안무자다. 그는 정년이 보장된 평단원 자리를 과감히 내려놓고, 이제 막 새로운 여정에 나서고 있다.
지난 15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박성식 부안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단원에서 처음 훈련장이 됐을 때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퇴근 시간’이었어요. 평단원일 때는 내 할 일이나, 연습 분량이 끝나면 바로 퇴근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훈련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나서부터는 출퇴근이 제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퇴근 시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박 부안무자는 “결국 저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40명 단원의 방향성을 한데 모아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 ‘나는 (편히) 쉴 수 없겠구나’하는 뜻으로 다가왔다”며 “아무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부여하는 책임감, 스트레스 그런 것들을 느꼈다”고 말했다.
불과 2년 사이에 그는 큰 변화를 두 차례나 겪었다. 2년 전에는 18년 단원 생활을 정리하고 공모를 거쳐 무용단 훈련장으로, 그리고 지난 3월에는 훈련장 직을 마치고 다시 부안무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부안무자가 되고 나서는 그 스트레스가 한층 더 커졌다고 했다. 훈련장과 비슷한 맥락의 책임감이지만 거기에 여러 가지 무게가 더 얹어졌다.
“부안무자는 단원 훈련뿐 아니라 무대 위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물론 예술감독님이 큰 그림을 그리고 가시지만, 감독님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사소한 부분을 부안무자가 책임지고 찾아내 보완해야 하거든요. 때로 감독님이 부재하면 전적으로 제가 그림을 다 그려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단원들은 정해진 스케줄대로 연습하면 그만이지만, 부안무자는 스케줄을 미리 짜고 만드는 입장입니다. 한 작품을 단원들이 대략 2~3개월 연습할 분량이라면, 예술감독님과 부안무자는 5~6개월 이전부터 큰 그림을 머릿속으로 계속 그리며 바라봐야 합니다. 그 지점에서의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웃음)

박 부안무자가 인천시립무용단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지난 2006년이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여러 차례의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또래보다 늦게 대학을 마쳤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이었기에 졸업을 앞둔 그에게 ‘취업’이라는 무게는 여느 무용 전공자들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사실 무용계에서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은 직업 무용단 외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대학교수를 제외하면 강사 자리는 늘 위태롭고, 예고나 고등학교의 무용 교직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입니다. 체육을 복수 전공해 체육 교사로 진로를 바꾸는 이들을 제외하면 갈 수 있는 곳은 직업 무용단뿐인데, 워낙 자리가 귀해 정원이 적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기업 취업을 꿈꾸는 것이 일반적이듯 그도 국립무용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인천시립무용단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이 들렸고 “노느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시험이나 쳐보자”며 지원했는데, 운 좋게도 합격으로 이어졌다.
처음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박 부안무자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과연 내가 취업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늘 품고 살았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출근하고 난 후 들뜬 기분은 싹 사라졌다.
“제가 대학에서 경험한 것과는 시스템이 전혀 달랐어요. 진짜 ‘프로페셔널’의 세계를 처음 경험해 본 거죠. 객원으로 경험할 때는 겉핥기였던 겁니다. 모든 단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너무 대단해 보였습니다. ‘내가 저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여기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자신의 실력에 확신이 없던 신참 단원 박성식의 인생을 바꾼 전환점은 입단 후 2년이 조금 지난 2008년이다. 당시 홍경희 예술감독은 갓 입단한 그에게 주역인 ‘호두까기 인형’ 역을 과감히 맡겼다. 그때 마지막 커튼콜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늘 군무진으로만 무대에 서다 처음으로 주인공으로서 단독 인사를 하는 순간이었다.
“무대 위에 모든 선·후배들이 도열해 있고 제가 걸어나가는데, 대단한 선배님들이 저를 향해 미소를 보내며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주고 계셨어요. 객석에서 들리는 박수 소리에서도 ‘너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무대에 선 사람의 행복함이 무엇인지 그때 그 순간 처음 느꼈고, 그 감동을 계기로 무대에 임하는 자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박성식은 그 이후로도 인천시립무용단의 작품 속에 개성이 강한 배역을 주로 맡아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는 ‘박수무당’ 역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윤성주 예술감독의 ‘만찬-진오귀’속 캐릭터다. 치열하게 연구했기에 지금도 누군가 “가장 잘했던 배역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배역이다. 정년이 보장된 단원에서 임기제 훈련장으로, 그리고 다시 부안무자로 직책을 바꾸는 과정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실제로 그는 2024년 훈련장 모집 공고가 뜨고 나서도 지원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훈련장은 보통 최고참 선배들이 도전하는 자리였다.

그의 등을 떠민 것은 당시 예술감독이었던 윤성주 감독의 호통이었다. 윤 감독은 “너 여기서 안주할 거냐? 도전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책했다. 지원서 마감을 고작 3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고민에 빠진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은 동료 인천시립무용단원이기도 한 아내의 한마디였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무용수다. 제도적으로는 ‘피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늙어가며 기량도 쇠퇴해갈 텐데 그런 자신의 모습을 무용수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겠느냐는 요지였다. 그가 내린 결론은 ‘고우(Go)!’. 그는 “오히려 고민의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정이었던 것 같다”며 “잘 내린 결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예술감독과 단원 사이에서 소통하고 최적의 ‘팀워크’를 구현해야 하는 부안무자라는 직책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이 동반된다. 그가 생각하는 팀워크는 “같은 목표를 향해 힘을 합쳐 달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본도 없고 악보가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떤 게 정답일지도 모를 그 길을 가면서 갈등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현재의 생각이다. 목표를 대하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또 모두 선의를 갖고 목표로 향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갈등이 싹튼다. 오해도 많이 생긴다. 그는 “어려운 숙제이며, 아직도 정답을 찾아가고 있고, 또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결국에는 답을 찾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면서 “계속 소통하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안무자로서 박성식의 고민은 늘 예술감독을 보좌하면서 ‘인천 시민에게 어떤 작품을 선보여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는 “도시를 상징할 수 있는 ‘시그니처 대표 브랜드 작품’이 반드시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타 지역 사람들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인천에 왔을 때, ‘인천에 가면 이 공연은 무조건 꼭 봐야 해! ’라고 말할 수 있는 공연을 선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가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작품의 제목이나 화려한 홍보 문구를 보고 공연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박성식의 작품이래’라는 말 한마디에 공연장으로 발길이 향하는 안무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름 석 자만으로 관객에게 온전한 신뢰를 주는 ‘믿고 보는 안무가’가 되는 것, 그것이 제 오랜 꿈이자 마지막 지향점입니다.”

■ 박성식 부안무자는?
▲ 1979년 7월 서울 용산 출생
▲ 2006년 용인대 무용학과 졸업
▲ 2012년 용인대 무용학과 대학원 졸업
▲ 2006년 4월 인천시립무용단 입단
▲ 2009 PAF‘s 올해의 춤 연기상 수상
▲ 2014,15년 인천무용제 대상
▲ 2014년 제24회 전국무용제 은상
▲ 2024년 3월 인천시립무용단 훈련장
▲ 2026년 3월 인천시립무용단 부안무자
■ 주요작품
▲ 2014 <세번째 통증> 안무·연출
▲ 2015 Dancebrid with the TIME <망아> 안무·연출
▲ 2021 Inside Out <꼰대 ft. the classic> 안무·연출
▲ 인천시립무용단 정기공연 <호두까기인형>,<풍속화첩-춘향>,<만찬-진오귀>, <워터캐슬-토끼탈출기>등 다수 주역무용수 활동

/김성호 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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