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만 집중, 공동 응원 상관 안 해”…‘내고향’은 쌀쌀맞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북한 축구팀 방문
리유일 감독 “정치 질문 금지”…‘간판’ 김경영 “분위기 좋아”
지소연 영입한 수원FC, 홈서 내고향 넘으면 사상 최초 결승
“조별리그 땐 태클·욕설 난무…우리만의 축구로 강력 대응”
19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 사전 기자회견. 북한 여자축구 클럽팀 내고향여자축구단(내고향)을 취재하기 위해 1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렸다.
소란스럽던 기자회견장은 내고향 감독과 선수가 등장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입국 현장에서 보인 냉랭함은 아니었지만, 둘은 시종일관 딱딱한 표정을 유지했다. 이들은 경기에 대한 질문에만 짧게 답한 뒤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2012년 평양을 연고로 창단한 내고향은 2022년 군이 운영하는 북한 여자축구 전통의 강호인 4·25팀을 꺾고 창단 10년 만에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내고향이 20일 오후 7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대회 준결승에서 수원FC위민과 맞붙으면서 이들의 방남에 많은 관심이 집중됐다.
북한 선수가 한국에서 열린 스포츠 대회에 출전한 것은 2018년 12월 인천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에 차효심이 장우진(세아)과 호흡을 맞춰 혼합복식에 출전한 이후 8년 만이다. 축구로 한정하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이다.
내고향은 지난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현장에서는 시민단체 및 실향민 단체 관계자 50여명이 나와 “환영합니다”라고 외쳤지만 가벼운 미소나 손인사 하나 없이 그대로 지나쳐 버스를 탔다.

기자회견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전 11시45분에 맞춰 하늘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리유일 내고향 감독과 간판 공격수 김경영이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회견 진행을 맡은 AFC 직원은 “질문은 축구와 관련된 것만 해줬으면 한다”며 정치적인 질문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리 감독은 “비교적 (경기) 준비가 괜찮다고 볼 수 있다”며 “준결승에 오른 네 팀은 모두가 1위를 할 수 있는,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들이라 조별리그에서 만났다고 해서 누가 강하고 약한지를 말할 수 없다. 우린 그저 내일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내고향은 지난해 11월 조별리그에서 수원FC를 만나 3-0으로 이겼다. 김경영도 “중요한 경기인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 주장으로, 공격수로 승리를 위해 뛰겠다”고 짧게 답했다.
뒤이어 나온 응원단과 관련된 질문에 대한 리 감독의 답은, 경직된 남북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낸 한마디였다. 20일 내고향-수원FC전에는 통일부 지원하에 대북 시민단체로 꾸려진 3000여명의 공동 응원단이 현장을 찾아 응원할 예정이다. 전체 7000석 중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이에 대해 리 감독은 “응원단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지 모르겠지만, 우린 철저히 경기를 하러 여기에 왔다”며 “내일 경기와 앞으로 있게 될 경기에만 집중할 것이다. 응원단 문제는 선수단과 감독 모두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리 감독은 2024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 취재진의 ‘북측’이라는 표현에 대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정확히 부르지 않으면 질문을 안 받겠다”고 예민하게 반응한 인물이다.
취재진의 계속된 질문 요청이 있었지만, 리 감독은 통역을 바라보고는 질문을 한 개만 더 받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김경영에게 ‘선수단 분위기가 어떤가’라는 질문이 던져졌고, 김경영이 “선수단의 분위기는 좋다. 부모·형제들의 믿음과 기대에 화답하기 위해 우리는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답한 뒤 기자회견은 종료됐다.
AWCL는 2024~2025시즌부터 정식으로 출범한 아시아 지역 최상위 여자클럽 축구대회다. 박길영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수원FC는 2024시즌 WK리그에서 14년 만에 우승을 차지해 처음으로 아시아 클럽 대항전 출전 자격을 얻었고, 이번에 내고향을 넘으면 한국 팀 사상 최초로 결승에 오르게 된다.
두 팀은 지난해 11월 미얀마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만났다. 남북 구단이 AFC 주관 대회 사상 처음으로 만난 역사의 현장이었다. 결과는 수원FC의 0-3 참패였다. 슈팅 수 4-17이 말해주듯 수원FC가 내고향에 완벽하게 압도당한 경기였다. 내고향(2승1패)은 일본의 도쿄 베르디 벨레자(2승1무)에 이은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수원FC(1승1무1패)는 조 3위 중 상위 2개 팀 안에 들며 간신히 8강에 올랐다. 그러나 수원FC는 올해 초 한국 여자축구의 ‘전설’ 지소연을 영입한 데 이어 국가대표 수비수 김혜리와 공격수 최유리까지 가세하며 전력이 크게 향상됐다. 그 결과 지난 3월 대회 8강에서는 지난 시즌 우승팀인 우한 장다(중국)를 4-0으로 완파했다.
박길영 수원FC 감독은 “안방에서 지지 않으려 많은 준비를 했다. 이제는 다를 것”이라며 “조별리그 때도 전력과 전술의 대결보다는 심한 태클에 욕이 난무한 경기였다. 이번에는 우리만의 축구를 보여주면서 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소연도 “한국에서 하는 대회라 마음이 남다르다. 내고향은 북한 축구대표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력이 좋지만, 우리도 지난해와는 다른 멤버다. 최선을 다해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수원 |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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