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있다, 전국에 잇다]산청 남사예담촌
산청 남사예담촌은 첫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다른 관광지와는 다르다는 걸 느낀다. 민속촌처럼 말끔히 정비된 것도, 테마파크처럼 동선이 잘 짜인 것도 아니다. 그냥 마을이다. 돌담이 있고, 고택이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산다. 700년 넘게.
마을 초입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라는 문구가 서 있지만, 처음엔 선뜻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건물도, 탄성을 자아낼 만한 풍경도 불쑥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걷다 보면 묘하게 익숙하고, 묘하게 편안하다.
그 정체를 알아채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돌담에 낀 이끼, 기왓장 너머로 삐져나온 나뭇가지, 대문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생활의 소리들. 그것들이 조각조각 스며들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마을이 살아 있다는 감각이 온다.
그래서 남사예담촌은 무언가를 열심히 봐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 편이 낫다. 천천히 걷고, 멈추고, 별것 아닌 것들을 오래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 마을과 제대로 만나는 방법이다.

◇담장 안, 살아 있는 마을
그 방법대로 골목 안으로 접어들면 발밑부터 감각이 달라진다. 아스팔트 대신 포근한 흙과 돌이 발걸음을 받아내고, 걸음 소리는 절로 낮아진다. 황토와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토담이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길 위에서, 담장 사이로 고택의 처마 끝이 하늘을 향해 살짝 들려 있다.
그 고택들에는 긴 역사가 깃들어 있다. 고려 말부터 최씨·하씨·이씨 등 여러 성씨가 이 땅에 뿌리를 내렸고, 수백년동안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이웃으로 살아왔다. 나란히 선 고택들은 그 세월의 증거다.

마을 이름에도 그 가치가 담겨 있다. '예스러운 담장으로 이름난 마을'이라는 뜻과 함께, 담장 너머 옛 선비들의 기개와 예의범절을 오늘에 되새기자는 바람이 교차한다. 2006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담장들은 납작한 돌을 기초로 쌓고 그 위에 황토를 이겨 올린 것으로, 구간마다 저마다의 빛깔을 띤다. 세월을 머금은 담쟁이넝쿨이 가득한 구간이 있는가 하면, 최근 보수를 마친 듯 흙빛이 선명한 구간도 있다. 그 불균일한 차이조차 이 마을이 가진 솔직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발걸음을 늦추고 골목을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 대문 안에서 정겨운 사람 소리가 들리고, 처마 아래 빨랫감이 바람에 흔들린다. 마당 한켠에 널브러져 있는 농기구들, 한가로이 드러누운 강아지는 낯선 방문객이 지나쳐도 고개만 살짝 돌릴 뿐 이내 다시 눈을 감는다.
수백 년 된 유적과 지금을 사는 사람의 온기가 같은 골목에서 공존하는 것. 그것이 남사예담촌을 다른 관광지와 구별 짓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다.


◇골목마다 다른 시대의 이야기
볼거리를 쫓는 방식으로는 이 마을의 깊이를 느끼기 어렵다. 골목 하나, 고택 하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다 보면 시대가 다른 여러 사람들의 자취가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 중심부에는 1920년대에 지어진 근대한옥인 '최씨고가'(경남도 문화유산자료)가 자리한다. 'ㅁ자형' 구조를 갖춘 사대부가로 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솟을대문 위 거북 형상의 나무 빗장에는 오가는 이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100년 세월이 흐른 빗장 하나에서도 삶을 대하던 선조들의 태도가 고스란히 읽힌다.


도로변으로 나서면 1700년대에 건립된 남사예담촌의 명소인 '이씨고가'(경남도 문화유산자료)가 나타난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이 목조 한옥 앞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부부회화나무 두 그루가 서로를 향해 X자 형태로 맞닿아 있다. 이 나무 아래를 부부가 함께 지나면 백년해로 한다는 전설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의 유구한 역사는 다른 나무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하씨고가 마당의 감나무 한 그루는 1300년대 후반 조선 세종 때 재상을 지낸 하연 (1376~1453)선생이 심은 것이다.
토종 반시감의 원종이자 산청곶감의 뿌리로 여겨지는 이 나무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해마다 실한 열매를 맺는다. 사람이 살아 숨 쉬는 마을답게 나무 또한 생을 이어가는 중이다. 봄이면 수령 700년의 원정매를 비롯한 여덟 그루의 매화나무인 '남사 8매(梅)'가 향기를 퍼뜨린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시절 하룻밤 머물렀던 이사재 앞에 서면 임진왜란의 기억이 겹쳐온다. 관직을 내려놓고 남쪽으로 향하던 장군이 몸을 누인 이 공간은, 마을이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함께 호흡해 왔음을 말해준다.
조선 후기 유학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양정사, 아버지를 향한 칼날을 몸으로 막아낸 효자를 기리는 사효재, 전통 교육 공간이었던 이동서당(경남도 문화유산자료)도 저마다의 서사를 뿜어낸다.
이 땅과 연이 닿은 인물들의 자취는 고려 말 문신부터 개국공신, 항일 독립운동가까지 시대를 관통한다. 태조 이성계가 개국공신 이제에게 내린 국보 '개국공신교서'의 원문을 새긴 비가 마을 안에 있고, 마을 동쪽 유림독립운동기념관에는 3·1운동 당시 전국 유림 137인이 서명한 파리장서 자료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천천히 걷는 사람에게만 속을 보여주는 마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수식어는 방문객의 기대를 높인다. 하지만 그 기대만큼 완벽하지는 않다. 빛바랜 이정표와 낡은 안내판, 일부 고택의 정비 상태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주민이 거주하는 관계로 출입이 통제되는 고택도 있고, 생활 공간과 관광 동선이 뒤섞인 마을 구조는 방문객 입장에서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남사예담촌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찾는 이를 맞는다. 발 밑의 흙, 담장의 온기, 처마 끝의 곡선, 그리고 어디선가 나는 밥 냄새. 남사예담촌은 그렇게, 천천히 걷는 사람에게만 속을 보여주는 마을이다.

천천히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은 넉넉한 시간이다. 마을 안에 소규모 숙박 시설이 있어 하룻밤 머물며 이른 아침 고요한 골목을 걷는 경험도 가능하다. 여정의 마무리는 마을 북쪽 다리 건너편의 기산국악당이 제격이다. 매주 토요일 상설 국악 공연이 열리는 이곳은 대숲과 고택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서 전통의 소리를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다.
고택 골목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기산국악당에 들러 국내 최대 크기의 북인 태평고를 직접 두드리며 마음속 소원을 담아보는 경험은 남사예담촌 여행을 완성하는 울림이 될 것이다.
임명진기자·취재 도움=산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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