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주찬우 기자 2026. 5. 1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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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넘은 스타벅스 5.18 마케팅 참사
역사적 비극 조롱한 테러로 규정해

하루가 지나도 대중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머그컵을 깨고, 망치로 텀블러를 박살 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며 과감히 사표를 던진 매니저도 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상에는 회원 탈퇴와 환불 인증이 이어지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 데이' 논란을 자초한 스타벅스코리아에 대한 분노가 거세다. 18일 스타벅스는 텀블러 프로모션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컬러풀 탱크 텀블러 세트'와 '탱크 듀오 세트'를 선보였다. 스타벅스 앱에 올라온 홍보물에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와 함께 5월 18일을 두고 '탱크데이'라는 문구가 함께 표기됐다.

46년 전 그날의 광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장면이다. 가장 쓰라린 상처인 5.18에 '탱크'라는 단어를 내세우고, '책상에 탁'이라는 공안통치의 상징적 언어로 온 국민을 기망했다.

독재자 전두환을 지칭하는 '전땅끄(탱크)'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역사적 비극을 조롱거리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치 성향을 떠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 눈물이 흐르고, 영화 <1987>를 보면 억눌렸던 양심이 끓어오르는 게 국민 정서다.

이례적으로 이재명 대통령도 SNS에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런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당일 손정현 대표를 전격 경질하고,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한 담당 임원도 해임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19일에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직접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 회장은 사과문에서 "이번 사안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오신 모든 분들의 고통과 희생을 가볍게 여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며 "대한민국 공동체의 역사적 아픔에 대한 그룹 전체의 역사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기업 내부의 검증 시스템 부재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다. 단순한 실수나 우연으로 가장하기엔 너무나 기형적이다.

스타벅스 같은 초대형 브랜드 프로모션은 실무자의 아이디어 제시부터 수차례 회의, 중간 관리자의 몇 단계에 걸친 결제, 리스크 담당 부서의 검토를 거쳐 세상에 나온다.

이런 거대한 조직에서 누구도 위험을 감지하고 브레이크를 밟아 줄 최소한 장치도 없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 1위였던 스타벅스는 이제 하루아침에 단절해야 할 대상이 됐다.

생일 등 경조사 답례품을 보낼 때 선물리스트에서 아예 스타벅스 쿠폰을 빼버리자. 주는 사람의 선의가 받는 사람의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기업이나 관공서는 특히 유의해야 한다. 괜히 참가 경품으로 스타벅스 쿠폰을 제공했다간 국민 정서 파악 못 하는 혹은 국민 밉상이 될 수 있다.

대중의 분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스타벅스를 보며 세련됨이나 고급스러운보단 천박한 역사 인식을 떠올릴 건 분명해 보인다.

장사를 하려면 최소한의 눈치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슬픔을 조롱거리로 삼았다면 이건 분명한 테러다.

/주찬우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