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김경수는 드루킹, 박완수는 야당이라 그닥…”
● 창원 김경수 ‘메가시티’, 박완수 ‘실무 능력’ 기대
● 전통시장은 주식시장 활황과 대조되는 실물경제에 표심 냉랭
● 산업단지는 원전·방산 활기…경제 활성화할 행정 전문가 바라
● 마산 40년 토박이 상대적 박탈감 “마산엔 껍데기만 남았다”
● 김해 강한 보수세 한풀 꺾인 전통시장 “예측하기 힘들 정도”
● 양산 3040세대 “정당보다 실용주의…실익 택하겠다”
● 도민의 가장 큰 열망,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현재 경남의 가장 뼈아픈 현실은 2030 청년세대의 수도권 이탈이다. 창원, 거제 등 과거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던 산업도시들이 노후화하면서, 문화·정보기술(IT)·콘텐츠 등 청년들이 선호하는 신산업 일자리가 부족해졌다. 이에 따른 고령화 가속화와 군 지역의 인구 마이너스 성장은 고스란히 지역 소멸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경남 경제의 버팀목인 조선, 항공우주, 기계, 방위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 고도화가 시급하다. 지역 간 인프라 격차도 조속히 해결할 과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5월 12일과 13일 찾은 경남의 표심은 한마디로 '시린 겨울'과 '안개 정국'이 교차하는 형국이었다. 코스피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한다는 소식이 무색하게, 경남 도민들이 체감하는 실물경제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창원 상남시장과 가로수길, 김해 내외동 먹자골목과 봉하마을, 양산 물금읍의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 등 지역마다 분출하는 요구와 기대가 다양했지만, 정치권을 향한 원성은 어디나 비슷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가 민생을 구하지 못한다"는 냉소가 깊어지는 가운데, 차기 도정을 이끌 적임자를 향한 지역별 민심을 밀착 취재했다.
창원 | 김경수 '메가시티', 박완수 '실무 능력' 기대
5월 12일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가장 먼저 당도한 곳은 경남 도정의 핵심인 창원시청 인근 상남시장이다. 창원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임에도 손님으로 보이는 이가 많지 않았다. 여기서 7년째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시장 경기를 묻는 질문에 손사래부터 쳤다. 그는 "요즘은 실제로 주머니를 열어 돈을 쓰는 사람이 드물다"며 "오늘처럼 장날이 아닌 때는 손님이 한두 명에 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가지수가 7000포인트를 넘었다고 연일 난리인데, 그건 우리 같은 서민에게는 눈속임 같은 착시일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창원시 아파트 가격이 8억~9억 원이라 집을 살 엄두를 못 낸다"며 "주식 투자하라고 부추기지 말고 집값이나 잡아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또 다른 시장 상인은 "이재명 대통령의 추진력이 마음에 든다"면서도 "경제가 어려운데 정부에서 주식을 사라고 부추기는 게 정상인지 모르겠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주식 투자를 하려 해도 여유자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자에게 반문했다.아직까지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도 적지 않았다. 창원시 성산구 가로수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호주산 소고기 가격이 너무 올랐는데 메뉴 가격은 그대로여서 손해가 막심하다. 물가안정과 경제활성화가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그에게 어느 후보를 찍을지 정했는지 묻자 "고심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여당도 야당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물과 공약만 보고 투표할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창원시장과 가로수길에서 만난 시민 중에는 그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이 많이 밀집한 창원시 성산구 창원국가산단 입구로 발길을 옮겼다. 저녁 무렵, 주간 교대를 마친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쏟아져 나왔다. 최근 K-방산 수출 호조와 정부의 원전 생태계 복원 정책에 따른 낙수효과로 산단 분위기는 사뭇 활기차 보였지만, 바닥 민심은 여전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산단 내 협력업체에서 20년째 근무 중이라는 50대 최모 씨는 박완수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최 씨는 "박 지사가 부임하고 나서 원전이나 방산 쪽 일감이 늘어났다. 우리 같은 현장 사람들한테는 정치가 시끄러운 것보다 일거리를 꾸준히 주고, 도정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행정 전문가가 최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창원시장 시절부터 검증된 실무 능력이 산단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의창구 창원대 근처에서 만난 청년들의 시선은 사뭇 달랐다.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이모 씨는 김경수 후보의 공약을 언급했다. 이 씨는 "박 후보가 창원대를 과기원으로 바꾸겠다고 공약했지만,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졸업하고 지역에 남을 만한 일자리"라며 "김 후보의 '남부권 판교' 공약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의견을 냈다.
또 다른 재학생 서모 씨는 "우리 부모님은 박 후보의 공약이 더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김 후보가 예산 확보 면이나 추진력에서 앞설 것으로 기대한다"며 "IT 중심의 메가시티 비전도 희망적"이라고 평가했다. 대학가에서 만난 청년들 중에는 "정치에 관심도 없고 취업 준비하기 바빠 투표할 생각도 없다"는 이가 적지 않았다. "취업을 위해 창원을 떠날 것"이라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
마산 | 40년 토박이의 박탈감 "마산엔 껍데기만 남았다"
마산회원구 마산역 앞에서 만난 시민 정모(64) 씨를 통해 냉랭하게 식은 마산 표심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마산합포구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는 마산 토박이라고 소개한 정 씨는 과거 통합 창원시 출범 이후 마산 지역이 겪은 소외감을 특유의 사투리로 토로했다."옛날에 마산이라 카면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거대 도시였거든예. 그런데 통합하고 나서 함 보이소. 대기업들하고 굵직한 공공기관들은 다 창원이나 딴 데로 가삐리고 마산에는 껍데기만 요래 남았다 아입니까. 개발한다 어쩐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싸치, 정작 마산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밤에 잠도 안 와예."
그는 박완수 후보에 대해 "통합 창원시의 초대 시장을 지내 마산 지역의 문제를 잘 알긴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정이 뚝 떨어진다. 자기들끼리 매일 싸우느라 바쁜 야당 도지사가 무슨 힘으로 마산을 다시 살려내겠느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마산 주민 김모 씨는 김경수 후보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여당 후보니까 힘은 있겠지만 과거 여론조작 사건으로 옥살이까지 하고 나온 사람을 어떻게 다시 믿느냐. 홍준표, 김두관 전 지사가 대권 나간다고 중간에 하차해 도정 공백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김경수 후보는 중앙 정치에 야심이 큰 인물 아닌가예. 그런 전력이 마산 사람들에게 '우리를 발판으로만 쓰는 것 아니냐'는 깊은 의심을 심어놨지예. 아직까지 누구에게 투표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투표는 꼭 할 생각입니더. 마산을 진정으로 발전시킬 사람을 뽑을라꼬예."
김해 | 강한 보수세 한풀 꺾인 전통시장
"예측하기 힘들 정도"
같은 날 저녁, 김해시 내외동 먹자골목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현금성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이재명 정부가 제공한 민생지원금과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바라보는 도민들의 시선은 극명하게 평행선을 달렸다. 골목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일 하나는 추진력 있게 잘한다. 민생지원금이 지역에 풀리면 골목상권에 온기가 돌고 영세 가계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야당에 강한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현금성 살포에 대한 거부감과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먹자골목의 또 다른 상인은 "나라에서 돈 좀 그만 뿌렸으면 좋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국가부채가 이렇게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 결국 그 무거운 빚은 지금의 젊은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미래의 부담이 된다. 국가경제 전체의 거시적인 안정 측면에서도 완전히 역행하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인근 전통시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중동발 리스크로 인한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두고 "이것이야말로 표를 얻기 위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거칠게 쏘아붙였다. 그는 "이번 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상위 30%가 더 크게 입었는데, 하위 70%에게만 집중적으로 돈을 뿌리는 것이 맞느냐"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좋지만 세금 거둬 돈 뿌리는 정책은 제발 멈춰달라"고 항변했다.
야당을 향한 반감도 여당에 못지 않았다. 한 30대 상인은 "이재명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도 않고 온전히 신뢰하지도 않는다"면서도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뒤흔드는 국민의힘은 더 싫다. 결국 최악을 피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결정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보수우파라는 70대 상인은 "국민의힘이 꼴 보기 싫어서 투표를 안 하려고 했는데 민주당이 다수의 힘으로 나라를 멋대로 주물러서 견제가 필요하다"며 박 후보를 지지했다.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상인은 "내외동도, 이곳 전통시장도 보수세가 강했는데 이재명 정부 들어 기류가 바뀌었다"며 "이번 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라고 전했다.
다음 날 아침 찾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위치한 김해 봉하마을에서는 김경수 후보 지지세가 압도적이었다. 친문·친노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김 전 지사는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휴가를 내고 가족과 함께 봉하마을을 방문한 직장인 김모 씨는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전 대통령보다 싫지만, 노무현 정신을 온전히 이은 진짜 민주당의 적통 후보이기 때문에 김경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양산 | 3040세대 "정당보다 실용주의…실익 택하겠다"
5월 13일 오후에는 양산시 물금읍 신시가지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수도권의 신도시 못지않게 잘 정비된 물금읍은 경남에서도 젊은 층의 유입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3040세대 유권자들은 철저히 '실용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한 30대 주부는 "당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우리 동네 교통 문제를 해결해 줄지가 핵심이다. 김경수 후보는 여당이니까 이재명 정부랑 손잡고 부산과 양산을 잇는 30분대 광역교통망을 빨리 완성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하지만 드루킹 이미지가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 교육적으로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찜찜하다"고 말했다.빵집을 운영하는 30대 자영업자 신모 씨는 박완수 후보의 행정력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박완수 후보는 창원시장 때 검증된 행정력을 보여줬으니 확실한 안정감은 있다. 다만 힘없는 야당 후보라는 게 못내 걸린다"고 했다. 그는 "야당 지사가 중앙정부와 사사건건 각을 세우면 공약한 국책사업과 핵심 공약들이 다 뒤로 밀리는 것 아니냐"며 "정부 지원을 얼마나 이끌어낼지가 미지수"라고 우려했다.
이틀간 현지에서 접한 경남 민심은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번 선거의 승패는 소속 정당이 아닌 '인물과 실익이 되는 공약'을 보고 냉정하게 움직이는 합리적 중도층과 부동층의 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주식시장의 화려한 숫자 뒤에 숨은 서민들의 시린 마음을 더세심하게 녹이는 후보가 누굴지 지켜볼 일이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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