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동의 없이도 ‘토큰 테슬라’ ‘토큰 엔비디아’ 발행(종합2보)
의결권-배당 없이 주가만 추종하는 일종의 합성상품 성격
투자자 보호 미흡, 주식시장 분절화 등 우려 목소리도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김상윤 뉴욕특파원] 앞으로는 테슬라로부터 동의를 받지 않고도 테슬라 주가에 연동해 가치가 정해지는 ‘토큰 테슬라’를 발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이른바 ‘제3자 토큰주식’이라는 새로운 투자상품이 등장하는 것이지만, 시장에서는 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흡하고 주식시장이 분절화될 수 있는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SEC가 이번에 허용을 검토하고 있는 제3자 토큰주식은, 상장사 또는 상장사를 대신해 기존 주식을 토큰화하는 토큰주식과 달리, 상장사 동의가 없어도 직접 관련 없는 제3자가 해당 기업의 주식을 토큰화해서 발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테슬라나 엔비디아, 애플과 전혀 무관한 가상자산 사업자가 토큰 테슬라나 토큰 엔비디아, 토큰 애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거래할 길을 터줄 수 있다.
물론 이런 제3자 토큰주식은 상장사가 직접 발행한 것이 아닌 탓에 해당 기업으로부터 배당을 받거나 기업의 주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의결권을 가질 수 없다. 오로지 상장사 주가에 따라 토큰주식의 가치가 정해지는 일종의 합성상품으로, 보통 주식에 비해서는 투기성이 더 크다.
이 때문에 SEC는 제3자 토큰주식을 허용하더라도 전통적인 증권거래소나 중앙화된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이를 상장하지 못하고 탈중앙화된 디파이 플랫폼에서만 거래할 수 있게 허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파이는 투자자들이 자동화된 코드로 작동하는 프로토콜을 통해 가상자산을 거래하고, 빌리거나 빌려주는 약 1300억달러 규모의 가상자산 영역이다.
실제 최근 들어 주식과 채권, 부동산, 사모대출 등 전통자산을 블록체인 상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토큰화하는 실물기반 토큰화자산(RWA)은 가상자산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흐름 중 하나가 됐다. 이는 24시간, 365일 내내 거래가 가능하고 거의 즉각적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특성 상 시장 효율성을 높이고 투자자에게 새로운 이점을 제공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번 제3자 토큰주식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앞서 지난주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는 획기적인 디지털자산 시장구조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클래리티법’은 가상자산 산업의 상당 부분에 대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를 주된 규제기관으로 세우는 한편, SEC는 디지털 증권 감독 권한을 유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폴 앳킨스 SEC 위원장 체제에서 SEC가 가상자산 산업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미국 주식시장들은 토큰화되고 24시간 거래되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 초 전 뉴욕증권거래소 사장 톰 팔리가 이끄는 가상자산 거래소 불리시는 명의개서대리기관인 에퀴니티를 42억달러에 인수했다. 명의개서대리기관은 주식 소유권을 추적하고 배당 지급을 지원하는 등 증권거래소의 장부 관리 역할을 한다.
뉴욕증권거래소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토큰화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를 거래할 수 있는 장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 2위 증권거래소인 나스닥은 상장기업들이 토큰화된 형태의 자사 주식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토큰 설계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SEC의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공정한 가격 형성, 투명성, 투자자 보호를 보장하는 상장주식과 별개로, 제3자 토큰주식은 규제 틀 밖에서 거래되는 일종의 병행시장으로 작동하게 될 전망이다. 결국 이런 시장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는 향후 수년 간에 걸친 가장 중대한 규제 실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3자 토큰주식 도입이라는 SEC의 실험에 대해 벌써부터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토큰주식 거래를 디파이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 주식시장 분절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론적으로 동일한 기초 주식에 연동한 토큰 자산이 여러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동시에 거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SIFMA)는 “토큰화 주식시장에 시장 간 연계성과 가격 투명성 같은 표준 요건이 부족할 경우 시장이 분절되고 무질서해질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SEC 거래·시장국장을 지냈던 브렛 레드펀 시큐리타이즈 사장도 “발행사가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3자가 애플이나 아마존을 토큰화할 수 있다면 같은 기업을 기초로 한 상품이 동시에 얼마나 많이 존재할 수 있는지 한계조차 없다”며 “이는 시장 분절화를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키울 수 있고 투자자들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실제 가치를 어느 순간에도 확신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제3자 토큰주식은 일종의 합성투자상품이라 고객확인(KYC)과 같은 규제장치가 미흡하고, 시세 조작이나 가격 변동성 확대를 촉발시킬 수 있는 리스크를 사전에 제어하는 투자자 보호 규제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아울러 올 들어서도 여러 디파이 플랫폼이 해킹 공격을 받아 수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아직 초기 단계인 기술에 취약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를 의식해선지 SEC 측은 “그동안 수백명의 시장 참가자들과 만나 새로운 유형의 거래에 맞춰 규정을 어떻게 조정할지 폭넓은 의견을 구해 왔다”면서 조만간 발표할 혁신 면제 방안도 아직까지 공식 확정된 것이 아니고 의견 수렴 과정에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future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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