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 현장] "힘내라 내고향" 3000명 공동 응원단 무안하게...北 여자축구 리유일 감독 "우리가 신경 쓸 일 아냐, 경기만 집중"

조용운 기자 2026. 5. 1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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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 기자회견에 내고향여자축구단 리유일 감독과 김경영 선수가 참석했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수원, 조용운 기자] 열렬히 환호하는 인파를 향해 차갑도록 꼿꼿하게 정면만 응시했던 경직된 태도가 공식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남측 시민단체들이 뿜어내는 뜨거운 환대 열기와는 대조적으로 정작 당사자들은 단 한 마디의 사의나 미소조차 내비치지 않은 채 극도의 냉기만 풍겼다.

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오는 20일 오후 8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수원FC 위민을 상대로 2025-26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결승행 티켓이 걸린 외나무다리 단판 승부를 펼친다.

우승 보너스 100만 달러(약 15억 원)와 함께 아시아 축구의 정점이라는 명예가 통째로 걸린 절체절명의 길목이다. 운명의 한판을 단 하루 앞둔 19일 오전 두 팀의 사령탑과 간판 스타들은 전장인 수원종합운동장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서늘한 긴장감이 감도는 출사표를 던졌다.

평양에 둥지를 튼 내고향은 지난 2012년 출범한 북한의 대표적인 강호다. 북한 내 유명 소비재 브랜드인 '내고향'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을 받는 보기 드문 기업형 구단으로, 자국 리그 왕좌를 여러 차례 차지한 탄탄한 전력을 자랑한다. 이번 대회 8강 무대에서도 베트남의 호치민 시티를 3-0으로 가볍게 완파하며 압도적인 파괴력을 대륙 전체에 과시한 바 있다.

▲ 19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 기자회견에 내고향여자축구단 리유일 감독과 김경영 선수가 참석했다.   ⓒ연합뉴스

국내 관심이 집중된 이들은 지난 17일 한국 땅을 밟은 첫날부터 이튿날 훈련장으로 이동하는 순간까지 모든 동선마다 엄청난 취재 열기를 몰고 다녔다. 이러한 분위기를 앞두고 정부 부처인 통일부 역시 민간 주도로 조직된 3,000여 명 규모의 초대형 응원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남북협력기금 3억 원을 전격 지원하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나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도 북한 선수단은 공항, 숙소, 연습장을 불문하고 철저한 묵언수행과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취재진의 질문에는 일절 함구령을 내렸고, 심지어 의무 사항인 공식 미디어 데이와 전술 훈련 공개마저 전면 거부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축구계 안팎에 돌기도 했다.

하지만 대회를 관장하는 AFC의 강력한 규정 탓에 내고향 측도 리유일 감독과 핵심 골잡이 김경영을 대표로 단상에 세우며 마침내 남측 언론 앞에 목소리를 들려주게 되었다.

취재진의 질문 세례 속에 먼저 마이크를 잡은 리유일 감독은 "내일 치러질 대결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극도로 정제된 한마디만 남겼고, 동석한 김경영 역시 "내일 경기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라며 짤막하게 답변을 마쳤다.

▲ 19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 기자회견에 내고향여자축구단 리유일 감독과 김경영 선수가 참석했다.   ⓒ연합뉴스

이미 조별리그에서 수원FC를 3-0으로 제압했던 이들이기에 결승 길목에서 만난 재대결에 여유가 있을 법도 했다. 그러나 리유일 감독은 "준결승 무대에 생존한 4개 클럽의 전력은 누구나 정상에 오를 만큼 강력하다"며 "예선에서 한 번 겨뤄봤다고 해서 누가 강하고, 약하고는 없는 것 같다. 오직 내일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남측 시민단체 3천여 명을 포함해 경기장을 가득 채울 대규모 원군이 본인들을 응원한다는 소식에 대해서도 냉정한 선긋기가 이어졌다. 리유일 감독은 어떠한 감정도 없이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철저하게 축구 경기를 하기 위함"이라고 못 박으며 "응원단 문제는 감독이나 우리 선수들이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입장을 전했다.

내고향의 창끝을 책임지는 에이스 김경영은 지난 2017년 북한 여자 축구를 아시아 최정상으로 이끌었던 17세 이하(U-17) 아시안컵 우승의 주역이다. 현재 성인 국가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활약 중이며, 지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한국의 골망을 가차 없이 흔들었던 위협적인 존재다.

수원FC 수비진이 가장 먼저 봉쇄해야 할 타깃인 김경영은 "선수단을 이끄는 주장수이자 최전방 공격수로서 내일 오직 팀의 승리 만을 바라볼 것"이라며 "인민들과 부모, 형제의 기대에 완벽히 보답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라고 매서운 의지를 피력했다.

▲ 2025-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전에서 수원FC 위민을 상대하는 내고향여자축구단이 17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가운데 자주통일평화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축구단을 환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외 열기는 대단한 수준을 뛰어넘었다. 이날 치러진 회견장에는 무려 125명에 달하는 대규모 미디어 인파가 취재 허가증을 발급받아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국 기자만 100명을 훌쩍 넘어섰고, 일본 등 외신도 두루 참여해 남자대표팀 A매치 메인 매치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통상적으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현장에는 원정팀 구단 소속 미디어나 극소수의 인원만 참석했던 전례와 비교하면 엄청난 격변이다. 수원FC 구단 역사는 물론이고 국내에서 개최된 역대 클럽 대항전을 통틀어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대륙 총괄 기구인 AFC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혹여나 발생할지 모를 정치적 노이즈를 극도로 경계하는 AFC는 대한축구협회에 경기장 내 유입되는 정치적 구호나 자의적 해석을 전면 차단하라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하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 19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 기자회견에 내고향여자축구단 리유일 감독과 김경영 선수가 참석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당일에는 축구 외적인 특수 취재진과 정부 유관 부처 관계자들이 현장에 대거 몰릴 것으로 예고되면서, 매끄러운 경기 운영을 두고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냉랭했던 공식 인터뷰를 마친 내고향축구단은 이날 오후 4시부터 수원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미디어에 단 15분만 문을 여는 엄격한 통제 속에서 마지막 전술 점검 훈련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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